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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Dec 04. 2023

시끄럽게 통화하던 사람이 알려준 것

신경 켜기의 기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피로감을 느낄 때면 '소노 아야코' 작가의 책 제목 떠오르곤 했다. '타인은 나를 모른다' 단 여덟 글자만으로도 받아들여지는 듯한 위로감들었다.  꼬이고 익숙했던 관계가 버겁게 느껴지는 날도 뇌리에 짙게 남은 작가의 문장은 긴 시간 나와 함께 했다.

 유독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며 일방적인 이해를 강요당하던 날들이 있었다. 역시 타인은 나를 모른다며 냉소적인 한숨을 다. 소노 아야코 작가는 그런 의도로 글을 쓰지 않았지만 내 방식대로 위로를 취하고 나면 답답함이 어느 정도 해갈 됐다.


 삼십 대 초반 무렵 타인에게 향해 있던 관심과 체력을 모두 회수하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복잡하면서도 간단했다.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 편안히 살고 싶어서.

 미성숙한 인간인지라 타인과 나 사이에서 균형을 는 게 어려웠다. 타인의 뜻 모를 눈빛과 스치는 한마디에도 휘청이던 나는 조금 다. '단 며칠만이라도 남에게 관심을 끄고 나만 생각하면서 살 순 없을까?' 무관심과 무념은 예민한 나로서는 도무지 취하기 힘든 특성이었다. 그러나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은 참이었다. 방법을 몰라 시작이 어려웠을 뿐 의식적으로 습관을 들이니 '나도 이렇게 사는 게 가능한 사람이었구나'  정도로 타인과의 분리가 가능해졌다. 잉크가 투명한 물에 번지듯 조금씩 나의 사고와 시선도 변해 갔다.


 나는 나. 너는 너!

 인생은 독고다이.

 남은 남일뿐. 그러든지 말든지.


 타인에게 무심하게 지낸 요 몇 년. 복잡했던 내 마음 무사태평해지고 매우 단순해졌다. 나부터 잘하자는 신념이 점차 나만 잘살면 되는 거 아닌가는 식으로 변질되는 것 같아 우려 지만 전에 비하면 너무나 편했.

 다시 균형을 잃어버린 나는 타인에게 조금도 곁을 내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내 영혼은 이따금 굶주림을 토로했다. '너 혼자만 잘 살면 정말 그걸로 끝이야?' 남이야 그러든지 말든지라는 논리가 맞는 때가 있고 그를 때가 있건만 마음이 부르기 시작하니 좀체 시선이 밖을 향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도 마치 언택트 거래를 하듯 마음의 접촉을 지양하는 는 애초에 무미건조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대로 가면 영영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새로운 근심이 생겨났다.


 한 달 전쯤에 었던 일이다. 가족들과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인근에 시끄럽게 통화하는 아줌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그녀는 식탁을 치고 손짓을 해 가며 전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억울함을 토로했다. 사람들이 이따금 힐끗힐끗 그녀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가지러 갈 때까지도 그녀의 격정적인 통화가 계속됐다. 음식도 주문하지 않고 크게 떠들기만 하는 이상한 손님. 중앙에서 홀로 떠드는 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빈 그릇을 반납하기 위해 아주머니의 곁을 지나치는데 소란스러운 모습에 자동적으로 눈이 갔다. 그때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그녀와 통화를 하고 있던 사람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여성의 핸드폰은 잠들어 있었고 귀에는 어떤 이어폰 꽂혀 있지 않은 상태였다. 여전히 테이블을 두들기며 손을 높이 올렸다 내렸다 바쁘게 혼잣말을 하는 그녀를 보자 내 마음 파도가 일어났다.


 '나야말로 타인을 모른다.'


 정신 분열 증상을 겪고 있는 그녀를 나는 어떤 식으로 판단했던가. 예의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쉽사리 단정 짓지 않았던가. 반면 녀의 이야기를 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인내심을 발휘하는 고상한 사람이라 여겼다.

 그 성을 만나고 무관심이라는 투명 망토에 가려져 있던 실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인이 나를 모르는 것만큼이나, 나 역시 타인을 모른다 사실은 보다 중요한 문제다. 자와 후자 모두 어느 정도의 노력과 이해를 요한다. 좁은 도량으로 읽은 책 한 권의 메시지가 비로소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대저 사람의 관계에는 너른 이해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타인을 함부로 안다고 착각하고 나의 판단 기대 않으려 한다. 타인이 없는 세상에선 나다움이란 것도 의미가 없을 테니까.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세상에서 타인을 배제하는 못난 만족을 누렸던 나는 다시 어려운 숙제를 시작다. 오로지 게로만 했던 관심과 시선을 다시 골고루 나누며 곁을 내어주며 살아 보련. 숙제가 맘처럼 풀리지 않는 날도 있겠지만 부대끼며 발현하는 나다움이야 말로 가치 있. 타인 나를 모르고 나도 타인을 모른다. 그렇기에 오래 보고 신중히 다가가면서 남들과 사랑 속에 거해야 한다. 그날그날 주어지는 분량의 과제를 이전보다는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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