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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Dec 08. 2023

자꾸 말 바꾸는 사람 때문에 고민이라면

바꿔 바꿔 모두 다 바꿔

 말을 자주 바꾸는 사람과는  교제하지 않는 편이다. 시시각각 말을 뒤집는 사람들의 특징은 크게  가지로 분류된다. 거짓말을 잘하거나, 우위에 서려고 한다거나, 혹은 본인이 한 말을 기억조차 못 하거나. 이유야 무엇이 됐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신뢰하기 힘들고 친구로서 매력이 없다. 사소한 말부터 중대한 말까지 내용을 바꾸거나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을 친구로 둔 적도 있고 상사로 모셨던 적도 있다. 말을 바꿈으로써 책임 소재를 전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상대하는 게 최선일까? 같은 문제에 오랜 시간 시달리며 세운 나만의 대처법이 있다.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은 나는 타인이 한 말을 매우 상세히 잘 기억하는 편이다. 정작 필요한 숫자나 길 따위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면서 인적 특징과 말은 사진을 찍듯이 명확하게 머릿속에 저장한다. 저장된 정보는 상대의 취향을 파악하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말을 바꿔치기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아니, 오히려 장애물로 만들어 버린다. 사소한 일상의 대화마저 왜곡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놓인 적이 여러 번 있다.


 "떡볶이 좋아한다고 하셨죠? 오늘은 떡볶이 먹으러 갈까요?"

 "내가? 나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저 떡볶이 별로 안 좋아해요."

 "어? 그때 사무실 원형 테이블에서 넷이서 식사할 때 떡볶이 엄청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나 아닌데? 다른 사람 말을 착각 하셨나 봐요."

 "아이쿠. 그런가요? 죄송해요. 제가 착각했나 봐요.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


 순박하여 세상의 때가 덜 탄 시절의 나는 상대방이 본인의 말을 기억조차 못 하는 상황을 몹시 기이하고 안타깝게 여겼다. 까마귀 고기를 먹은 인간의 기억을 환기하기 위해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며 줄줄이 설명까지 곁들였다. 화자가 어떤 때에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 말을 했는지, 장소가 어디였는지, 당시에 누가 누가 그 말을 듣고 있었는지 기타 등등.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러한 방법이 최선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상대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음. 내가 그랬던가?

 그래. 너 잘났다.

 내가 한 말은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지 않겠어?

 

 어떤 결과를 얻든지 간에 이겨 봤자 내게 득이 될 게 없었다. 천진난만한 청년 시절에는 기역을 기역이라고 말했다가 곁에 있던 사람에게 옆구리가 꾹 질리는 경우도 있었다.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구나. 말을 잘 바꾸는 사람이구나.' 얼른 상대를 파악하고 당신이 옳소 하고 넘겨 버리면 한결 편하다는 사실을 한 박자 느리게 깨달은 셈이다.

 이젠 쓸데없는 일들을 구분하고 구태여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불과 며칠 전엔 A와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가, 며칠 후에는 A와 잘 모르는 사이라고 말하는 줏대 없는 지인을 만나도 "아. 그렇군요." 하고 휘리릭 넘겨 버린다. 모자란 사람인 척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하는 척 무미건조하게 반응하지만 그런 사람과는 결코 깊게 지내지 않는다. 연기를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런 데는 영 취미가 안 붙는다.


 중대 사안을 두고 습관처럼 의견을 번복하는 상사가 있었다. 갑의 위치에 있지만 결코 갑이 될 수 없는 사람을 모시며 자주 곤란에 처했다. 기획팀 일원으로 일할 때 광고주와 영업 팀과 디자인 팀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전의를 상실했던 나는 그야말로 인간 샌드백이었다.

 무더운 여름철의 오후였다. 대표님이 주관하는 행사를 홍보할 포스터를 만들라는 임무가 내게 주어졌다. 대표님이 확고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여름이니까 푸르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포스터를 만들어 주면 좋겠어요." 최종 기획안을 대표님께 컨펌받은 후에 디자인 팀에 넘겼고 그녀의 원대로 푸르고 시원한 포스터 시안이 완성 됐다. 인쇄를 앞둔 시점에 대표가 별안간 의견을 싹 바꿨다. "빨간 배경을 사용해서 납량 특집 콘셉트로 임팩트 있게 만들어 보세요." 겨우 디자인 팀을 달래서 새로운 포스터를 얻었다. 다시 상사가 말했다. "너무 강렬해. 시원함과 강렬함의 중간이 좋지 않을까요?" 응. 좋지 않아.

  이런 일을 수차례 겪었던 나는 대개는 네네봇(무조건 "네" 하고 답함)처럼 행동했다. 일단 "네.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긍정적으로 반응한 후에 열심히 일을 하거나 일하는 척을 하며 기회를 살핀다. 그러고선 상사의 기분이 룰루랄라 좋은 시점에 달려가 최종 결재를 받아낸다. 요령이 없을 땐 최선을 다해, 최대한 빨리 수정안을 만들어 상사를 찾았더랬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상사일수록 일의 능력만큼이나 기분을 헤아리는 것 또한 중요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상사의 기분이 좋지 않은 때에 시안을 들이밀었다가 기획안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정되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본인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물을 들고 "내가 언제 이렇게 만들라고 했죠?" 우김질을 하는 모습은 흡사 떼쟁이 어린아이 같았다.


 말을 잘 바꾸는 사람은 마음도 잘 바꾼다. 같은 상황에서 어제는 내 편이었다가 내일은 네 편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말이 자주 바뀌는 사람과는 깃털처럼 가볍게 지내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당신의 지인이 일주일 전에는 연애를 쉬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가 오늘은 모태 솔로라는 고백을 하더라도 큰 의미를 두지 말고 가벼이 반응하면 그만이다. "그러시구나.", "오호~", "예히~"

 말은 언제고 바뀔지언정 사람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스치는 인연은 지나가는 대로. 실없는 말도 지나가는 대로 내버려 두자. 평생을 함께 하고픈 중요한 이가 아니라면 저 좋을 대로 살도록 자유를 주는 게 서로에게 편하다. 본인이 맞다고 철썩 같이 믿는 사람에게는 본인이 곧 종교와도 같다. 이 방법 저 방법 모두 써 봤던 나는 조연 연기를 선보인 후에 얼른 자리를 떠 버린다.


 SCENE 1.

 말 바꾸기 천재: 내가 기역 다음엔 니은이라는 말을 했다고? 나는 분명 기역 다음엔 히읗이라고 말했는데?

 미세스쏭작가: 앗. 그럼 제가 헷갈렸나 봐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거리를 둔다.)

사진 출처: 미세스쏭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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