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 여름방학 때 기획팀 인턴으로 활동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스펀지처럼 배움을 흡수하는 새내기의 나날들이었다. 점심 식사 중에 타 부서 여직원 한 명이 처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내가 몇 살 같아 보여요?" 그때의 나는 순수하고 당돌한 청년이었다. 동안이 좋은 것인 줄도 몰랐던 사회 초년생은 질문의 의미를 순수하게 해석하고 보이는 그대로 답했다.
"스물일곱? 이십 대 중반처럼 보이세요." 질문했던 여성은 깔깔 웃으며 이렇게 되물었다.
"어머. 지금 뻐꾸기 날리는 거예요?" 묻는 말에 그대로 대답했는데 웬 뻐꾹? 당시의 내겐 스물일곱도 대선배의 연륜처럼 느껴졌기에 그녀의 반응이 몹시 의아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그녀의 선배님께서 멋들어지게 한 마디를 던지셨다. "뻐꾸기를 날린다는 표현이 무슨 뜻이죠? 좋은 말 사용하세요." 방방 들떠있던 여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마저 식사를 했다.
초면에 본인이 몇 살처럼 보이냐며, 나이를 알아맞혀 보라고 원치 않는 퀴즈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약간의 나르시시즘이 섞인 그 질문은 언제 들어도 별로다. 질문한 사람의 얼굴에는 원하는 답을 기대하는 긴장과 기대가 서려 있다. 달갑지 않은 질문이지만 상대가 어려운 사람이거든 적당히 사회적 처세술을 펼친다. 뻐꾸기 날린다는 소리를 면할 정도로 나이를 낮춰서 대답한다. 그리 대처했는데도 성에 안 차는 기색을 보이면 기가 쭉쭉 빨린다. (업다운 게임으로 갈까요?) 서로 간의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상대에 대한 관심보단 자신의 얼굴 나이를 묻는 이들을 보면 마음 문이 닫힌다. 때때로 "음. 어떻게 대답해 드리면 돼요?", "잘 모르겠어요." 하고 선을 긋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속이 개운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도 내가 몇 살처럼 보이는지 궁금한 걸 보면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눈치 없이 그런 질문을 해대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내 얼굴 나이가 궁금할 때면 민낯으로 거울 앞에 서서 대화한다. "거울아. 거울아. 내가 몇 살처럼 보이니?" 염치없는 물음은 스스로 해갈해야지 뭐.
이십 대 후반까지만 해도 "동안이세요."라는 말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조건은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함부로 하대하거나 첫 만남에 반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적잖이 만났기에 나도 얼른 나이가 차기를 바랐다. 내 나이의 앞자리가 이에서 삼으로 바뀌었을 때 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좋아했을 정도다. 인생 선배님들은 동안 소리를 싫어하는 내게 이렇게 충고했다. "더 나이 들면 알게 될 거야. 어려 보인다는 말이 얼마나 듣기 좋은지." 그렇게 팔팔했던 시간을 지나 삼십 대 중반이 돼 보니 민망하게도 동안 소리가 고프다.
사돈의 팔촌까지 따지면 친척 아닌 사람이 없다는 대한민국 사회는 참으로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감놔라. 배놔라. 애 낳아라." 강요를 받을 때면 피로감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나이, 결혼, 직업, 집, 월세, 전세, 배우자의 직업, 아이 유무 등등. 너무나 당연하게 호구조사를 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딱 한 가지가 묻고 싶어 진다. '그대 혹시 친구 있어요?'
언제부턴가 상대에게 나이를 묻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먼저 물어오거든 대답하면서 겸사겸사 되묻거나 내 나이만 언급하고 만다. 그럼에도 아래와 같은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몇 살이에요?
어머. 나이가 그렇게 되는구나.
결혼은 했고?
애는?
어쩐지 어려 보인다 했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얼른 애 낳아야지!
몇 살처럼 보이냐는 질문에 알랑방귀를 뀌느라 고생했던 시기를 어느 정도는 벗어났다 싶었는데 나이를 밝히면 새로운 문제로 훈수를 당하는 국면을 맞았다. 몇 살처럼 보이냐는 질문 혹은 몇 살처럼 보인다는 말보다는 정신연령이 통하느냐가 중요하다. 마음이 맞으면 나이 불문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 궁금한 것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사람보다 천천히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는 사람이 반갑다. 마음에는 양식을 쌓고 얼굴도 말끔히 관리하면서 속과 겉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싶다. 몸은 날씬하게 마음은 후덕하게 말이다. 한결 더 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몇 살처럼 보이냐는 질문에 계속 뻐꾸기를 날리는 전략도 괜찮을 것 같다. 앞으론 고심할 것 없이 육십 대 어르신들까지는 전부 내 동생처럼 보인다고 답해 버려야겠다. 아. 이건 뻐꾸기가 아니라 독수리를 날리는 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