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마음을 크게 다치고 속을 끙끙 앓아 본 적이 있는가. 몹시 실례가 되는 말을 툭 던지고서 능구렁이처럼 유유히 상황을 피해 가는 사람들이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살이 되어 날아온 한마디는 듣는 이의 마음을 광속도로 관통한다.
억! 장난으로 던진 말인가? 별 뜻 없이 한 말이겠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이해와 분노가 전투를 치르는 동안 가슴이 들끓었다가 차가워졌다가 그 끝에 무기력을 느끼기도 한다. 타이밍을 놓치고서 뒤늦게 무슨 뜻으로 한 말이냐 묻기도 뭐 하고. 해명을 듣는다 한들 어색함과 찜찜함만 남을 것 같아서 혼자 분을 삭인다. 지금쯤 발 뻗고 편안히 누워서 쉬고 있을 그 사람과 대조된 모습으로 깊은 밤을 보내는 자신이 바보 같고 또 억울하다.
실언을 밥 먹듯이 하는 무례한 사람과 자주 엮이는 상황이라면 미리 대처법을 마련해 두는 게 좋다. 마음의 상처가 반복되면육체의 병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너무 늦지 않게 나를 적극적으로 지켜내야 한다.
무심한 표정으로 "그게 무슨 뜻이죠?" 하고 묻거나 "요즘에 그런 말씀하시면 큰일 나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닌데?"라는 식의 촌철살인으로 방지턱을 설치해 놓는 것이다. 상대가 덜컥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도록.
큰 상처가 되는 말을 한 사람이 힘 있는 상사, 어려운 어르신인 경우 직면한 상황에서 그때그때 대처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노력해도 감당이 되지 않는 선이라면 단도직입적 대화를 시도하자. 말을 빙빙 돌리기보다는 정중하되 직선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게 좋은 방법이다.
내 경우 남성 직장 상사가 임신방법을 조언해 주겠다기에 "어우. 괜찮습니다. 전 듣지 않겠습니다."라는 식으로 거절 의사를 전했다. 입이 근질근질한 그는 내 눈치를 살피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때론 지나간 사건이더라도 어떤 부분 때문에 불편했는지 설명하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상대의 몫이다. 나는 나대로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했다면 그걸로 되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고 용서를 구하거나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이도저도 힘든 경우라면 가장 먼저 상처받은 내 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품어줘야 한다. 그리고 나를 화나게 만든 그 한마디에 앞뒤 정황을 붙여 보는 것이 좋다. 맥락을 통해 말의 속뜻을 이해하면 오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분통 터지던상황이 맥락 속에서는 얼추 이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앞뒤가 뚝 잘린 몇 초짜리 움짤을 통해 단편적 상황만을 기억할 게 아니라전체적인 맥락을 통해 진의를 파악해야 한다. 이게 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나를 위해서.
착한 사람의 마음을 들쑤시는 사람들이 어딜 가나 꼭 한 명씩은 있다. 질량 보존의 법칙, 또라이 만물설이 인간관계에서 불변의 공식처럼 등장하는 세상이다. 무해한 사람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며 사시길 권면한다. 불의를 꾹꾹 참고 무시만이 해답이라고 주장하는 풍조는 또 다른 희생자를 양상 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누가 강제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라는 말씀도 있다. 이는 무작정 당하고 사는 약자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비폭력적인 저항을 통해 무례한 상대를 당황시키고 잘못을 알려주며 살라는 진리이다. 담백하고 우아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를 지키며 살아봅시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