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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Dec 11. 2023

케이크 대소동

맞춤 케이크 그리고 아빠의 공주 케이크

 맞춤 케이크는 내게 미지의 세계이며 인싸들만의 영역이었다. 조카 담이의 생일 선물로 무얼 해줄까 고민하다가 "이모가 옥터넛 케이크 선물해 줄까?" 하고 선포해 버렸다. 조카는 "네"를 무려 다섯 번이나 외치며 정말 좋다고 했다. 옥터넛이 뭔지도 모르는데 옥토넛 케이크를 대령해야 한다. 인터넷 창에 검색해 보니 맞춤 케이크의 가격과 디자인은 그야말로 휘황 찬란 가지각색이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나는 만 원짜리 네다섯 장이면 멋진 맞춤 케이크를 얻을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먼 곳까지 케이크를 가지러 갈 수 없어 집 근처 전문점에 문의했더니 크기, 디자인, 캐릭터 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7만 원 이상의 견적서를 받고 깜짝 놀란 나는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물었다.

 "맞춤 케이크 가격이 좀 이상해. 너무 비싸. 칠만 원 정도 한다는데 내가 잘못 알아본 건가?"

 "그 정도면 가격 괜찮은 편인데." 뭐시라고라? 이 돈으로 다른 걸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도 들었지만 이미 기대가 큰 조카를 위해 약속을 지켜야 했다.


 난생처음 도전 이벤트인지라 헤매는 부분이 많았다. 디자인, 크림 종류, 시트 맛과 모양, 크기 등등. 모든 것을 직접 고른 후에라야 온라인 주문 접수가 가능했다. 하나하나 여동생에게 물어가며 카카오톡 채팅창으로 주문서를 작성했다.

 "담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흰곰이랑 애꾸눈이랑 펭귄 맞냐?"

 여동생이 깔깔 웃으며 캐릭터이름을 알려 줬는데 너무 어려워서 도통 외워지지 않았다. 다시 검색 후에 원하는 이미지를 모아 사장님께 전송했다.  

  "사장님. 바닷속을 배경으로 해초와 무지개를 예쁘게 그려 주세요. 원하는 캐릭터는 바나클, 콰지, 페이소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생경하고 어려운 주문이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케이크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지, 뜻깊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인지 노심초사하며 조카의 생일을 기다렸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는데 가게가 정전 됐으니 예약 시간보다 늦게 찾으러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뭐지? 이 불길한 예감은.' 기다릴 테니 예쁘게만 만들어 달라고 무지개랑 주인공들 좀 잘 그려 주십사 요청드렸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케이크를 확인했는데 이게 도대체 케이크야 예술품이야? 전혀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진 작품이 완성돼 있었다. 케이크를 선물 받은 조카의 눈에서 기쁨이 가득한 하트가 쏟아지고 아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눈에서도 꿀이 뚝뚝 떨어졌다. 선물은 본래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기쁘다는 말을 체감했다. 갓 만든 케이크라 빵의 식감과 크림의 맛이 유명 베이커리에 뒤지지 않았다. 우리 모두 입술이 파랗게 물들도록 맛있게 먹었다.

옥토넛 맞춤 케이크! 아직도 이름을 외우지 못했습니다... (북극곰 바나클, 고양이 콰지, 펭귄 페이소.)


 다음 차례는 아빠의 생신었다. 고깃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케이크를 사러 가려는데 조카 담이가 함께 가겠다 했다. 오구오구. 귀여운 조카를 데리고 가까운 빵집에 들렀다. 그런데 케이크가 몇 개 남지 않은 상황인 데다가 제발 안 샀으면 하는 독특한 케이크가 눈에 딱 들어왔다. 담이가 작은 손가락으로 문제의 케이크를 가리켰다. "헤헤. 이거 진짜 이상하게 생겼어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렇지? 이모가 봐도 이상하다. 우리 저걸로 살까?" 하며 상단의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지목했다.


 "음. 저는 이거 사고 싶어요." 아니. 그거 이상하게 생겼다며! 슬픈 예감을 우릴 비켜가지 않지. 조카의 선택은 눈높이에 위치한 공주 케이크에서 요지부동이었다.

 "사장님. 쥬쥬 시크릿 케이크 주세요."

 "아이가 몇 살인가요?"

 "육십칠 세요. 아버지 생신이라서..."

 "네? 아! 네." 사장님께서는 당황한 손놀림으로 결제를 진행하고 초를 챙겨 주셨다.


 아빠 생신에 시크릿 쥬쥬 케이크라니. 상자를 들고 부모님 댁으로 향하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밤하늘에 뜬 초승달도  눈처럼 보였다. 조카보다 들뜬 나는 가족들의 반응을 상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떤 케이크 사 왔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 가족들에게 나는 소리 높여 말했다.

 "케이크 보고 안 웃는 분이 계신다면 제가 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큰딸의 농담에 가족들이 이미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짜잔~!" 깜찍한 드레스를 입은 여신 케이크가 상 위에 오르자 온 가족이 깔깔거리며 나뒹굴었다. 쥬쥬 시크릿 공주님의 가녀린 허리둘레에 여러 개의 초를 꽂으며 다짐했다. 부모님의 다음 생신날에는 혼자 케이크를 사러 가겠노라고. 큰 웃음을 선사해 준 조카에게는 무척 고맙지만 담이의 할아버지는 역시 고구마 케이크나 생크림 케이크가 취향에 맞으신 듯하다. 호탕하게 웃으시며 촛불을 끄신 아빠는 버터크림 케이크에는 손도 대지 않으셨다는 후문이다. 아빠. 그래도 즐거운 추억 만드셨죠? 하히후헤호.

플라스틱을 뽑으면 호박 마차로 변신하는 시크릿 쥬쥬 케이크... ...

 

우리 아이(?) 연세는 육십칠 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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