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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Dec 17. 2023

잠자는 남편에게 냅다 뽀뽀한 이유

일어나라. 경기할 시간이다.

 온통 캄캄한 침실. 안간 잠이 깨서 뒤척이다가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이강인 선수의 파리 생제르맹 FC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올빼미형 인간인 내가 그처럼 이른 시간에 일어나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잘까. 말까. 무슨 소리야. 경기 봐야지.' 이강인 선수를 향한 뜨거운 팬심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었다. 이미 전반전이 시작 상황인지라 문자 생중계부터 확인했다.

 고요한 거실로 나와 TV를 켜긴 켰는데 뭘 어떻게 해야 이강인 선수를 볼 수 있지? 남편이 채널을 틀어주면 옆에서 1+1으로 경기를 시청했던 나였기에 경기를 보는 방법 자체를 몰랐다. 인터넷에 '파리 생제르맹 경기 보는 방법'을 검색했더니 일단 쿠팡플레이에 접속해야 한단다. 남편과 남동생이 해외 축구 경기를 볼 때마다 쿠팡플레이 이야기를 자주 하던데. 스마트 TV로 얼른 앱을 켜 보니 아뿔싸 로그인이 안 되어 있다. 흠. 이젠 어떻게 아이디와 비번을 알아낸담?


 다시 슬그머니 침실로 갔다. 함께 경기를 보네 마네 했던 남편은 무아지경 단잠에 빠져 있었다. 깨면 안 되는데. 아니. 제발 일어나. 당장에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마음이 조급했던 나는 잠든 남편의 손등에 냅다 뽀뽀를 질러 버렸다. "으? 어? 므...어...!?" 나의 뽀뽀를 받은 남편이 파리를 쫓아내는 듯한 신음 소리를 내며 도대체 무슨 상황인고 한쪽 눈을 떴다.

 "여보. 이강인 선수 경기 안 볼 거예요?" 면목이 없던 나는 안 쓰던 존댓말까지 해 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이름을 지긋이 부르며 혼자 보라는 남편. "그런데 나 경기 보는 방법을 모르겠어." 다시 잠들기 직전인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쿠팡 플레이로 보면 돼." 아악. 나는 소리 없이 절규했다.


 축 처진 어깨로 도둑고양이처럼 거실로 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남편이 잠에서 깨어나길 기대했다. 뭔가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은데? 그러나 키스를 갈기면 잠에서 벌떡 깨어나는 마법은 동화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법. 그의 코 고는 소리만 들려오는 현실이었다. 마음을 접고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어리바리한 꼴로 헤매는 사이에 전반전이 종료 됐다. 이대로 물러날 순 없지. 이번엔 만만한 남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쿠팡

비번

아냐?


 한 줄로 쓰면 끝날 메시지를 굳이 네 개로 나서 전송했다. 양아치 누님의 꿀잠 방해 공작이었다. 어지간해선 이강인, 김민재, 손흥민 선수의 축구 경기를 모두 챙겨 보는 남동생이지만 역시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우린 그날 늦은 시각에 영화관에 가서 심야 영화를 감상하고 왔었다. -기다리던 답장은 오후 세 시가 넘어서야 받을 수 있었다. 고맙기도 하지.-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은!? 잔머리를 열심히 굴린 끝에 낮은 자세로 기어실 협탁에 다다랐다. 그리곤 남편의 핸드폰을 훔쳐 왔다. 그의 폰에 설치된 쿠팡플레이 앱을 켜 보니 다행히 로그인이 돼 있는 상태였다. 아싸. 핸드폰으로 경기를 재생한 후에 스마트 뷰 기능을 이용해 TV로 화면을 공유했다. 드디어 성공이다. 직관도 이보다 복잡하지는 않겠다. 어렵사리 경기를 보게 된 나는 꼬르륵 소리를 참아 가며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듯 PSG 배 낭트 전을 관람했다. 잠을 포기한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잘생긴(?) 경기를 보여준 이강인 선수. 슛돌이 시절부터 이강인 선수를 좋아했던 내 기준에서는 언제나 훌륭하고 자랑스럽고 십 점 만점에 십 점 그 이상다. 어느덧 슈퍼사이어인으로 멋지성장한 국민 슛돌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듯한 마음으로 경기를 보고  맞이한 주일 아침. 경기 잘 봤느냐고 묻는 남편에게 얼마나 복잡한 방법으로 파리 생제르맹 경기를 시청했는지 설명했더니 막히다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남편 역시 일어나자마자 이강인 선수의 경기 내용을 확인했단다. 이제 쿠팡플레이를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으니 어설픈 뽀뽀 공작을 펼칠 필요가 없어졌다.

 또다시 새벽 다섯 시. 눈을 비비고 TV 앞에 앉았는데 어째서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도르트문트와 파리 생제르맹의 경기가 중계되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무엇 하나 척척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한탄하며 남동생에게 연락했다. UEFA 경기는 쿠팡플레이로 볼 수 없으니 다른 채널을 통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덕질도 영특하고 정보력이 있어야 가능한 세상이구나 싶었다.


 모르는 일이 생기면 귀찮은 마음에 스스로 발품을 팔기보다는 주변에 쉽사리 손을 뻗는 나. "저기요. 여보. 동생아. 엄마. 아빠." 이러한 편의가 몸에 익니 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치면 '어휴. 귀찮아. 이게 맞나?' 하는 조바심과 의구심이 든다. 점점 더 나를 믿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는 방식을 최고 여기 다.

 이런 나를 두고 소노 아야코 작가의 글따끔하게 책망한다. 바로 그런 행동이 사람을 게 만는 것이라고. 더 늦기 전에 지혜롭게 나이 드는 방법을 실천해야겠다. 나이 듦을 늦추는 방법 하나, 내가 할 일은 직접 한다. 둘, 타인의 친절을 기대하지 고 대가를 지불한다. 덕질을 통해 아주 귀한 깨달음을 획득했다. 이번 경기 일정은 새벽 4시 45분. 아아. 벅차다. 미라클 싸커 모닝.

찐 남매 부록: 예의 및 인사는 모두 생략하고 요건만 말한다. 아홉 시간 만에 받은 답변은 발가락으로 썼는지 오타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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