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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Jan 12. 2024

아빠의 수술이 남긴 느낌표

다시 내 편과 만나다

 아빠의 귀 밑에 생긴 몽우리는 그저 일시적인 상이 아닐까 추측했다. 갑자기 불쑥 나타난 작은 혹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거나 소염진통제로 치료가 가능하다고도 들었다. 많은 원인들 가운데 그저 피로누적으로 인한 단발적 현상이기를 바랐다.

 아빠는 혹을 발견하자마자 집 근처 병원으로 가셨다. 의사 선생님께선 극 초기에 신속하게 내원하신 아빠를 칭찬하셨다. 가시적 위치도 아니고 매우 작은 혹이라서 발견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시며. 인지하지 못하거나 방치하여 병을 크게 키워 오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신 송아빠는 내과 선생님의 칭찬과 더불어 대학병원 진료를 권유받으셨다. 간단한 문제이기를 염원하며 대망의 정밀검사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빠께서는 이하선 종양 판정을 받으셨고 결국 수술대에 오르셔야 했다. 동생들은 대학병원과 유명 의원의 장단점을 조사한 후 아빠가 빠른 수술을 받으실 수 있도록 이하선 종양 수술 전문 의원을 권했다. 동생들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고 든든한 나날들의 연속이.


 아빠의 수술이 있는 날 아침. 서둘러 서울에 있는 전문 병원으로 갔다. 옅은 녹색의 환자복을 입고 병실 침 위에 누워 계신 아빠를 보니 마음이 찡했다. 아빠의 침대 옆으로 가서 가만히 손을 잡았다.


 감동의 물결이 일기 삼 초 전.


 아빠께서는 경기를 일으키시며 놀라셨다.

 "어? 누구여? 아니! 우리 딸이여?" 효년 중의 효년 큰딸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하신 게 분명했다. "피곤한데 편히 쉬지 뭐 하러 힘들게 왔냐." 맨날 쉬는 게 일인 딸이 고작 두 시도 안 되는 시간을 할애하여 아빠를 보러 왔건만 애타는 표정으로 나부터 챙기셨다. 게다가 수술복을 훤히 열어젖히시더니 맨살 위에 내 차가운 손을 올려놓으셨다. "아이고. 손이 왜 이렇게 차냐. 얼른 녹여야겠다." 진정으로 안타까워하시면서. 대체 누가 수술대에 오지 분간이 안 가는 상황이었다. 부모의 사랑이란 이토록 종잡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큰 딸 놈은 한 시간 정도 아빠 곁에 머물다가 시내버스 타고 오느라 멀미(...!?)를 했다며 아점을 먹으러 가겠다 말씀드렸다. 공복에 시내버스를 고작 한 시간 타고서 속이 뒤집히는 멀미를 했다. 망언을 하는 딸에게 금식 중이신 아빠께서 얼른 카드를 건네셨다. "아빠 카드로 사 먹어라." 손을 휘휘 저으며 아빠를 뒤로한 채 병실을 나왔다.


 금식 중인 아빠를 생각하니 죄송하기도 하고 통 맛도 안 느껴졌지만 배는 또 몹 고팠다. 오후 한 시에 서둘러 첫끼 식사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오니 병실 분위기가 부산했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수술실로 향하시는 아빠께 기도하듯 말했다. "아빠. 이게 살면서 받는 마지막 수술이야. 우리 앞으로는 건강하게만 살자!" 아빠는 걱정 마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빠가 수술실로 들어가시고 텅 빈 침대 곁에 앉아 두 손 모아 주님께 간청했다. "의사 선생님 능력을 주세요. 모든 종양이 깨끗하게 제거되게 해 주세요. 수술 부작용 없도록 도와주세요." 주사위가 던져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도뿐이었다.


 삼십 분 가량의 수술 후 아빠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한 모습으로 걸어 나셨다. 그런 아빠를 보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내 편을 다시 찾은 기분이 들었다. 긴장이 풀린 아빠께선 애써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편히 누울 수 있는 시간을 고대하셨다. 한 시간 동안 깨어있어야 한다고 주의를 받았으나 약기운에 자꾸만 잠드셨다. 그런 아빠를 십 분 간격으로 깨우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침대를 탁탁 치며 "아빠. 지금 잠들면 안 돼." 하고 말할 때마다 얄미운 교관이 된 것 같아  민망했다. 살이라곤 거의 없는 아빠의 팔에 꽂힌 여러 개의 바늘을 보니 세상에 쉬운 수술이란 절대 없구나 싶었다. 그의 손등에 핀 야속한 검버섯이 세월의 빠름을 토로했다.


 얼마 전 지인의 어머니께서 아주 간단한 수술을 받다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 누구도 상상조차 않았던 황망한 결과였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이건 수술도 아니니 병원에 올 것 없다. 내가 끝나고 전화하마." 하시며 극구 동행을 거절하신 듯했다. 가족들은 각자 삶의 최전선에서 열심히 일하며 곧 결려 올 어머니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리운 가족들을 남겨둔 채 당신 홀로 여행을 떠나셨다. 하루아침에 어머니를 잃은 지인의 참담한 소식을 듣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가족들의 마음감히 헤아릴 길이 없었다. 사람 일은 모른다는 게 익숙한 진리이면서도 때론 잔인하다. 우리의 만남은 짧고 헤어짐에는 예고가 없다. 그렇기에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고 그 곁을 온기로 채울 수 있다면 복 받은 삶이다.


 아빠의 수술을 앞둔 전 날 저녁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때론 서로 도끼눈을 하고 전력을 다해 싸우는 우리지만 아빠는 내게 애애애애애증의 존재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무화과와 곶감을 보면 자동으로 지갑이 열리고 웃긴 일이 생기면 얼른 재잘재잘 들려드리고 싶다. 종양 제거의 수술을 딛고 다시 건재한 내 편과 마주한다.

 어려서부터 내가 속상한 일을 겪으면 엄마는 항상 배려와 양보를 먼저 가르치셨다. 반면에 아빠는 "우리 딸 괴롭히는 있으면 전부 데려 와. 가만 안 둬." 살벌할 정도로 확실하게, 늘 내편을 들어주셨다.

 친아버지, 시아버지, 남편. 세 장정은 아주 소한 사안에서 내 편을 들어주시는 존재들이다. 그 힘으로 내 기가 살고 또 내가 살아간다.

 막중하고 심각한 일 앞에서는 나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내 편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큰일보단 자잘한 에 속상함을 느끼고 위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겨우, 고작, 별것도 아닌 순간에 내게 힘을 실어주시는 존재. 그중 첫 번째로 만난 내 편.

 그런데 정작 나는 아빠 편이 되어 애틋한 딸 노릇을 한 적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아빤 앞으로 내게 숱한 기회를 주셔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 부지런히 해결할 과제다. 이젠 내가 그대의 편이 될 테니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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