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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Jan 29. 2024

은수저를 입에 문 며느리

글수저가 된 은수저

 시댁에 갔더니 시어머니께서 "이리 와서 잠깐 앉아 봐." 하시며 식탁을 탁탁 치셨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 듯 함박 미소를 지으시는 시어머니께 얼른 다가가 마주 앉았다. 어머님께서는 앞머리를 오른쪽으로 쓰윽 쓸어 올리시더니 흰색 종이가방 하나를 건네셨다. "이거 너희 생각나서 샀어." 며느리가 무엇이냐 묻자 일단 선물 포장 된 빨간 상자부터 열어 보라고 권하. 조심스레 포장지를 벗겨내고 작은 함을 열자 은수저와 은젓가락 두 세트가 단아한 모습을 드러냈다. 묵직한 은수저와 온화한 시어머니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며느리는 과분한 사랑에 감격한 나머지 헛소리를 해댔다.


 "어머님. 정말 감사해요. 저 오늘부터 은수저로 신분 상승했요. 평생 잘 간직할게요. 은수저는 진열용으로 집에 두는 거 맞죠?" 스뜌핏... 뭐라는 거야.

 어머님께서는 며느리에게 "진열용이라니? 밥 먹을 때마다 부지런히 써야지. 이거 보면서 한 번씩이라도 내 생각해 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 하고 말씀셨다. 감복한 며느리는 꼭 그리 하겠노라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사랑받는 은수저다!'


 은수저 세트 외에도 색깔이 매력적 특별한 바구니와 손수 바느질을 떠서 만드신 퀼트 파우치를 두 개나 더 선물로 얹어주시는 시어머니셨다. 생일도 아닌데 이토록 소중한 선물을 척척 받는 독보적인 며느리가 어디에 또 있을까.

 "엄마가 너 생각해서 만든 거니까 아무도 주지 말고 전부 너 혼자 써." 애정이 듬뿍 담긴 대화와 귀한 선물에 마음이 부푼 며느리는 몇 번이고 끄덕이며 어린이처럼 기뻐했다. 바구니와 파우치는 디자인도 독특한 데다가 고리 부분까지 모두 며느리만을 위해 골라 제작된 것이었다. 정성과 진심이 깃든 선물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며느리는 푹신한 파우치를 옆구리에 끼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시아버지의 사랑은 더 커서 며느리의 손길이 닿는 물건마다 "가져가렴. 그거 너 쓸래?" 하고 물으신다. 일교차가 큰 날 이따금 시부모님의 겉옷을 빌려 입으면 "네가 입으니 예쁘다. 네가 가져가서 입어라." 하시며 모든 걸 내어주시려 한다. 우리 부모님의 고정 멘트를 시부모님을 통해서 들었을 때 마음이 아릿했다. 다함없는 어르신들의 내리사랑 앞에 거듭 태어나는 존재가 된다.

 과분한 사랑을 받는 아내를 지켜보는 남편. 그는 항시 이런 광경을 봐왔으나 좀처럼 왈가왈부하는 법이 없다. 우리 부모님이 너를 얼마나 아껴 주시는지, 너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베푸셨는지 단 한 번도 계산하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배우자 기도를 무려 십오 년 동안 했던 여자는 이렇게나 확실하게 기도 응답을 받아버렸다. 곤고한 날도 기쁜 날도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며느리도 그들에게 복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불공정한 사랑은 이미 충분히 독식한 것 같으니 진해서 빚을 갚아나가야 할 때다. 사랑보다 완벽하게 사람을 바꾸는 건 없다. 적어도 나를 보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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