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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Dec 23. 2023

유리 감옥 탈출기

계탔 개

 갈색 솜뭉치처럼 몸집이 작고 비쩍 말랐던 나는 2016년도 4월에 태어났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산품 찍어내듯 겨우 생명을 얻은 나는 생일도 모르는 채 애견 샵으로 옮겨졌다. 멀미 끝에 비몽사몽 눈을 떠보니 아주 작은 유리 상자 안이었고 땅까지의 높이 까마득했다.

 온통 시고 훤히 뚫린 공간 여기저기를 조심스럽게 두들겨 보았다. 차가운 파열음만 되돌아왔다. 부산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행적과 다양한 소음으로 인해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적응해야 했지만 그곳은 내게 너무나 갑갑하고 숨이 막히는 유리 감옥이었다.


 나는 오리를 사냥하는 것이 취미인 활동성이 높은 푸들이다. 그런 내가 유리 감옥에 갇혀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곤 두 뼘 길이의 산책하기, 뒷발로 서서 유리문 긁기가 전부였다. 소변 패드 한 장이 다 펴지지도 않을 만큼 좁은 공간이었던 그 집은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곳에서 맡았던 나의 똥오줌 냄새와 몸 냄새는 그야말로 고통의 끝이었다. 메테인 가스와 이산화탄소가 예민한 코를 찔러대면 삽시간에 두통이 발병했다.


 같은 자리에서 먹고 자며 150일의 시간 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털이 자라고 몸도 커지자 편협한 공간이 더욱 나를 옥죄는 것 같아 현기증이 났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호기심을 보일 때마다 '드디어 탈출할 수 있는 건가?' 하는 기대감이 솟구쳤다. 바깥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무작정 심장이 요동쳤다. 하지만 모두들 "어휴. 귀여워.", "진짜 조그맣다."라는 말을 끝으로 금세 시선을 거뒀다. 다른 친구들 역시 이쪽 생활을 청산하고 싶어 안달이난 상태였다.

 샵의 주인은 내게 밥을 줄 때마다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네가 여기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야. 최소한으로 먹으면서 작은 몸을 유지해야 돼." 돌아서면 배가 고픈 성장기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등뼈 마디마디가 가죽에 들러붙을 때까지 먹기를 자제했다. 볼품없는 앙상함은 복슬거리는 털로 감추면 그만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유리 감옥을 탈출하고 싶어서 딱 안 죽을 만큼만 먹었고 배가 너무 고프면 기면상태로 있거나 억지로 잠을 청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유리 감옥을 환히 비추던 여름날의 오후였다. 화창한 바깥 날씨와 달리 유리 감옥의 내부는 무료했다. 겨우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내 앞을 바삐 오갔다. 한 커플이 유리문으로 얼굴을 쑤욱 들이밀며 신나게 대화하는 소리 들다. "이 갈색 푸들도 귀엽다. 그렇지?" 늘 봐오던 광경이었다. 심드렁한 마음으로 보란 듯이 물병의 플라스틱을 깨물며 이갈이를 했다. 이래도 나를 데려갈 테냐? 엉? 그때였다.

 인상이 좋은 아줌마와 그의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조용히 내 곁을 맴도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런 말도 없이 몇 분 동안 내 주변을 서성이던 그들은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힐끗거리며 그들을 보다가 아예 대놓고 눈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혹시 저 사람들이 나를?' 내가 가족을 선택할 수만 있다면 제발 저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두근거림이 정신없이 나를 흔들었다.


 딸랑딸랑. 출입문의 종이 울렸다. 두 명의 젊은 남녀가 애견샵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앞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번쩍 손을 들고 그들에게 인사했다. 느낌이 좋았다. 이젠 무려 여섯 명의 사람들이 누추한 내 집 앞에 서 있었다. 모두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만. 내가 어젯밤에 무슨 꿈을 꾸었던가? 개가 계 타는 날이 바로 오늘인가.' 네 명, 두 명이 각각의 무리였다. 나는 죽기 살기로 네 명의 식구들에게만 매달려 보기로 결심했다. 그토록 진지한 태도로 나를 대하는 이들은 처음이었으니까. 나의 동물적인 직감을 믿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불타는 의지와 달리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처지가 애달팠다. 제발 새로운 견생을 살 수 있기를...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내 앞에서 서성거리자 샵의 주인이 들뜬 표정으로 다가왔다. 별안간 유리 감옥의 쪽문이 활짝 열렸다. 비닐장갑을 낀 점장의 손이 번쩍 내 몸을 들어 올렸다. 비닐장갑에서 여러 친구들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도대체 얼마 만의 바깥세상이야. 몸은 찌뿌둥하고 마음은 주체하지 못할 만큼 들떴다. 가만. 이럴 때가 아니지. 집중. 집중!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비닐장갑 우주선을 타고 젊은 커플의 손에 착지했다. 호들갑을 떨며 내게 손을 뻗치는 그들에게 냉소적인 반응을 보다. 여우 같은 나는 눈을 내리 깔고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휙 돌렸다. 몹시 위태로운 행동거지였지만 오늘만큼은 오리 사냥이 아니라 주인 사냥에 매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머?" 커플이 당황하며 어이가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드디어 네 명의 가족들 품으로 내 몸이 옮겨졌다. 그들은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나를 보듬고 쓰다듬으며 비밀을 나누듯 조용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는 낑낑거리며 제발 나를 데려가 달라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쥐어짜 교태를 부렸다. 오빠들의 손을 핥고, 엄마에게는 폴짝폴짝 깜찍한 댄스를 선보여 드렸다.

 "얘 좀 봐라? 얘가 우리를 택했네. 얘가 우리를 선택한 거야. 희한하다." 엄마의 웃음 섞인 말에 두 오빠가 더욱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을 살폈다.

 "얼굴 좀 봐. 눈코입이 다 예쁘게 생겼어."


 그런데 오른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던 언니는 자꾸만 다른 녀석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하얀 개를 키우고 싶네, 강아지를 키울 자신이 없네 하는 몹쓸 발언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언니. 그러지 말고 나 좀 봐줘요.' 오빠들이 내 눈물 자국과 건강 상태 등에 대해 점주에게 이것저것 상세히 질문했다. 샵의 주인은 설득하는 듯한 태도로 부지런히 답변했고 그사이 나의 불안함은 배가 되었다.

 진지한 대화가 오간 후에 샵의 주인이 문제의 언니 놈을 불러 세웠다.

 "언니 분도 한 번 안아 보세요. 이 녀석이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신기하네요." 드디어 언니의 두 손에 내 발바닥과 배가 가닿았다.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서 언니에게 콩닥거리는 작은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다. 언니는 이내 긴장을 풀고 짧은 감탄사를 뿜었다. 그리곤 점점 더 가까이 나를 품에 안았다. 언니의 손에 조금씩 힘과 결심이 들어가는 것이 나의 온몸에 그대로 전해졌다.


 잠시 후 내 인생을 바꾸는 한마디가 들려왔다.

"오늘 바로 데려갈 수 있나요?" 문제의 언니가 곧 실세였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벅차오르는 흥분과 기쁨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장님. 당장 데려가도 된다고 말해 주세요. 제발.

150일 동안 딱딱한 유리 바닥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따스한 인간의 품에 안겼다. 오빠 품은 침대를 넘어 과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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