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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Dec 26. 2023

150일 만에 인생 역전

새 집과 가족과 이름이 생겼습니다.

 샵의 주인장은 나를 데려가려거든 얼마를 지불해야 하고 또 여러 가지 애견용품이 필요하다며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깁스를 칭칭 감은 언니는 한쪽 다리도 성치 못한 상태이면서 나를 한 번도 땅에 내려놓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가족의 끈으로 묶였던 것처럼 나를 귀하게 여기는 가족들의 손길에 점차 긴장이 풀렸다. 사장님의 이상한 조언에 휩쓸려 온갖 쓸데없는 애견용품을 쓸어 담는 엄마와 작은 오빠의 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저 돈으로 맛있는 간식을 사 주시지는...' 가족들이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나자 드디어 "잘 가렴." 하는 작별인사가 들려왔다.

 애견 샵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유리 감옥살이를 벗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넘치는 기쁨도 잠시 인간들의 세상은 꽤나 복잡했다. 차를 타기 위해 처음 보는 이동장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떨어지기 싫어요. 무서워요.' 오들오들 몸이 떨렸다. 이동장 문이 철컥 잠기자 가슴이 옥죄고 속이 울렁거렸다. 유리 감옥 생활로 인해 폐쇄공포증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가 네 가족이야.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수시로 들려오는 언니의 목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었다.


 "집에 다 왔다!" 드디어 이동장의 철장 문이 열렸다. 하늘색 셔츠를 입은 큰 오빠가 나를 얼른 보듬었다. 그런데 가족들이 선뜻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땡볕에서 비상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유니야. 일단 네 강아지인 척 해." 아빠께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내용의 회의였다. 예비 사위인 큰 오빠에게 기대를 걸어야 했다.

 든든한 오빠 품에 숨어서 부모님 댁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어쩐지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였다. 아빠가 큰 오빠와 나를 번갈아 보시면서 의아한 눈초리로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웬 강아지냐?" 그때였다. 눈치도 없이 참고 있던 토사물이 올라왔다. "끅. 끅. 끅. 우웩." 깜짝 놀란 가족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헉. 어디가 안 좋은가? 건강이 나쁜 건가?"

 "그러게. 건강 문제면 어떡하지?"

 일동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아빠의 비장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개는 키우는 거 아니다. 얼른 다시 갖다 놔라." 반박할 말을 잃어버린 가족들과 나를 거부하는 아빠 사이에서 낑낑 거리며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 애원했다.

 이게 아닌데. 집에 온 첫날부터 약해빠진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내가 불란의 씨앗이 돼 버린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내 의지와 달리 야속한 구토가 또 발발했다.

 멀미와 더불어 샵 주인이 이별 선물로 먹여 준 블루베리 간식이 문제였다. 블루베리가 응축된 간식만 생각하면 자꾸 속이 뒤집어졌다. 내가 블루베리와 상극이라는 사실을 나조차도 몰랐다. 여태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심각한 표정의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별수가 없었다.


 작은 오빠가 밤새 나를 간호하며 건강 상태를 살폈다. 내 컨디션이 빠르게 회복하자 모두가 마음을 놓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작은 오빠는 상생을 위해 내게 다양한 훈련을 시켰다. 그 시절의 나는 사료 한 알만 있으면 훈련은 물론 가시덤불에도 뛰어들 정도로 먹는 것이 좋았다. 콩알만 한 간식을 얻어먹기 위해 앉아, 엎드려, 기다려, 파이팅, 돌아, 배변 훈련까지 모두 척척해냈다. 가족들이 박수를 치며 내게 밤낮으로 사랑을 퍼부었다. 아빠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셨는지 귀가 후면 은근슬쩍 나를 찾기 시작하셨다.


 "자, 이제 강아지 이름을 뭘로 하면 좋을까?" 큰 언니가 며칠에 걸쳐 신중하게 내 이름을 모색했다. "치킨, 호두, 행복, 사랑, 꿈이." 어떤 이름에도 심드렁한 모습을 보이는 나를 가족들이 별안간 자두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큰언니가 여름 과일인 자두와 만화 캐릭터 자두를 매우 좋아하는 데다가 우리가 여름에 만났기 때문에 내 이름은 자두가 되었다.

 "오메. 세상에. 자두는 또 뭐냐. 부르기 민망하다." 아빠께서는 자두라는 이름을 몹시 낯간지럽게 여기셨다. 이미 마음을 굳힌 언니는 내 이름을 온 식구들에게 공표하며 "자두야." 하고 나를 부를 때마다 간식을 하나씩 줬다. 처음엔 자두라는 이름이 나 역시 낯설어서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꾸 간식을 받아먹다 보니 자두라는 이름 두 글자가 들릴 때마다 꼬리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족이 생겼다.

 넓은 집이 생겼다.

 이름이 생겼다.


 쇄국정책을 펼치시던 아빠가 외출 전후로 가장 먼저 나를 찾기 시작하셨다.

 "야."

 "개."

 "자두야. 우리 자두."

 아침에 눈을 뜨면 유리 감옥이 아닌 포근한 침대 위에 내 몸이 뉘어 있었다. "일어났어? 맘마 먹을까? 밥?" 스프링이 튀듯 일어나 "앙. 앙!" 하고 짖으면 가족들이 방 문을 열고 나와 밝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이젠 간식이 아니라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면 불구덩이에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을 것 같다. 150일의 유리 감옥 생활 끝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강아지가 되었다. 빙글빙글 돌고 폴짝폴짝 뛰며 기쁨의 포효를 해 본다. "왈! !" 미쳤다. 개 좋다.

이거 꿈 아니죠? 눈이 번쩍 뜨이는 행복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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