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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Jun 18. 2024

여름 여행 갈 때마다 챙기는 것

정가: 59,000원, 감정가: 60,000원

 "둘이 하나씩 입어." 가끔 아무런 이유 없이 선물을 툭툭 건네는 남동생의 존재는 사랑이다. "이게 뭐야?" 소재가 좋아서 잘 팔리는 조거팬츠란다. 역시나 가격표부터 확인했다. "헤엑. 뭐 이렇게 비싸!" 그땐 몰랐다. a사 바지를 무려 네 개나 더 사서 쟁이게 될 줄은.

 처음 입었을 때 a사의 조거팬츠는 그럭저럭 편하고 가볍고 보기에 비해 비싼 바지였다. 이 바지의 진가를 깨달은 건 동남아를 여행할 때였다. 무더운 태양을 느끼며 이곳저곳을 누비는데 유난히 몸도 기분도 쾌적했다. 분명 어제와 같은 날씨인데 무언가 한참 다르게 느껴졌다. '이상하네 뭐지?' 날엔 반바지를 입었는데 맨살 여기저기에 닿는 느낌이 싫었다. 이튿날은 더위를 무릅쓰고 긴바지를 입은 상태였다. 반바지보다 긴바지가 훨씬 편안하고 쾌적할 수 있단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땀에 젖은 상태로 카페에 들어가 잠깐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왔는데 어머나. 습한 기운이 모두 사라진 채 바지가 아주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었다. 마치 새 바지로 갈아입은 듯 기분이 산뜻했다. 신선한 충격을 받은 나는 가족들에게 이 바지는 요술바지라고 외쳤다.

 "이거 진짜 물건이네? 바지 때문에 오늘따라 기온이 다르게 느껴졌나 봐."

 "내가 좋다고 했잖아." 막둥이의 대답은 간결했다.


 여름철 여행 시 특히 비행기를 탈 때면 나는 고민 없이 a사의 조거팬츠를 입는다. 행의 필수템이 된 이유는 이러하다. 발목 부분이 밴딩 처리 되어 밑단이 끌리지 않아 위생적이고 무엇보다 편안하다. 오래 앉아 있어도 어느 곳 하나 조이는 부분이 없으니 하체 부종이 예방된다. 맨살에 자외선과 에어컨 바람이 닿지 않는 점도 좋다. 내 몸이 선호하는 옷을 입으면 몸도 기분도 웃는다. (내 지갑만 운다.)


 이십 대 땐 유행하는 옷 내 몸을 끼워 맞췄다. 하루 종일 스키니진을 입고 다니다가 집에 오면 퉁퉁 부은 다리가 숨 좀 쉬자 항의했다. 몸에 꽉 끼는 옷을 입고 겉으론 여유롭게 웃으면서도 속으론 '아따. 죽겄네.' 혀를 내두른 건 나만 아는 비밀. 불편한 옷과 신발 때문에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젠 불편한 옷으로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리지 않는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인내해야 할 일들은 얼마든지 있니까. 여행 갈 때에도 사진을 위한 옷이나 신발 같은 건 따로 챙기지 않는다. 예쁘고 불편한 옷보단 편안하고 평범한 옷이 훨씬 좋다. 갑갑한 걸 못 견디는 나로서는 높은 하이힐, 신축성 없는 옷 하나로 하루를 날려버리기 십상이다.


 여름용 조거팬츠를 색깔 별로 구비하면서 미니멀라이프는 망했다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도 사길 잘했다는 게 내 결론이다. 여행 갈 때는 물론 필라테스나 달리기를 할 때에도  입고 있기 때문이.


 여행의 바람이 솔솔 부는 계절이다. "이번엔 어디로 떠날까?" 남편이 여행 이야기를 꺼내 조거팬츠를 챙길 계획부터 짠다. 말괄량이 소녀처럼 살고 싶은 아줌마에게는 이만한 팬츠가 없다. 예쁘면 장땡이라는 말을 소화하지 못하는 요즘 즐거운 여행은 편안한 착장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남편 역시 애슬레저의 편의에 풍덩 빠졌다는 후문을 전하며 내돈내 조거팬츠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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