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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Aug 27. 2024

오 년 일기를 쓰다 인생을 배웠다

정가: 22,000원, 감정가: 17,000원

 2024년 1월 1일부터 오 년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오 년 다이어리는 다섯 해 동안 같은 페이지에 기록을 더하도록 구성된 수첩이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품은 채로 금박 일기장을 펼쳤다.

 '늘 비슷한 일상이라 딱히 쓸 것도 없지만 일단 써 보자.' 평온하고 특별할 것 없는 나날을 기록하며 오 년 후 이맘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다. 오 년 동안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이벤트에 대해서도 상상해 보았다. 사십 대가 돼 있을 나와 여전히 건강할 가족들의 청사진을 그렸다.


 상반기가 다 가도록 일기장에 기록되는 감정과 내용들은 거기서 거기였다. 운동, 음식, 반려견 자두 이야기, 가족 모임... 그저 "행복했다, 즐거웠다, 좋았다."로 마무리되는 원초적 수준의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가 웃기고 민망했다. 또한 감사했다. 초등학생일 때도 이보다 천진하진 않았던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도가 최상인 삶이었다.


 2024년 오 월 중순까지의 일기는 그러했다.

행복으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일기장의 좌우 높낮이가 평평하게 자리를 잡아가던 즈음에 나의 인생 그래프는 지하 밑으로 다이빙했다.


 2024년 5월 29일 자두가 세상을 떠났고 일기장의 분위기는 180도 변했다. 자두의 죽음은 내게 비통한 가족상이나 만찬가지였다. 오 월 끝자락부터는 온통 슬픔, 눈물, 그리움, 비통함의 심정만이 일기장을 빼곡히 메웠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첫 해에 여덟 살 자두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게 될 줄이야. 매일 저녁 책상 앞에 앉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가며 어떻게든 일기를 써냈다. 큰 슬픔 가운데에서 일기를 쓰는 행위는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나를 걱정하는 남편, 같은 슬픔을 이고 가는 가족들, 위로의 손길을 더하는 지인들, 나의 목숨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볼펜으로 다시 수놓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차 회복되었다. 그렇게 일기장을 딛고 일어섰다.


 일기를 쓰다 보면 장 수가 한쪽으로 치우쳐 영 쓰기 불편한 지점이 있다. 마치 우리네 인생 같다. 한쪽으로 심히 치우쳐 중심을 잡기조차 힘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우리의 삶 말이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에겐 직진이 아니라 멈춤이 필요하다. 일기를 쓰면서 매일 저녁 일시 정지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를 돌아보고 내면을 정리하는 쉼을 일기장이 가져다주었다. 불편하고 어색했던 일기 쓰기가 이젠 식사처럼 중요한 데일리 루틴이 되었다. 나만이 보는 편안한 일기장에 꾸밈없는 문장을 더하며 불편심(不偏心: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간구한다.


 꼬박꼬박 일기를 쓴 지 팔 개월이 되었다. 작은 실천이 자신감을 불어넣고 마음을 충만케 다.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일수록 일기를 쓰자. 지친 하루 끝에서 자신도 몰랐던 보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 년, 줄이라도 매일매일 일기를 쓰겠다. 처음처럼. 지금처럼.

미세스쏭작가 일기장: 과자 봉투를 잘라 일기장에 슬쩍 붙였 다. 세상에 하나뿐인 기적의 세일러문 일기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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