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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Sep 24. 2024

화장품 가게에서 산 우양산

정가: 16,000원, 감정가: 14,000원

 번거롭단 이유로 양산 이용을 꺼려왔다. 지글지글 타는 듯한 불볕더위 허구한 날 갑자기 쏟아지는 비. 구 월 중순까지 지속된 무더위는 기후변화를 실감케 했다. 변화무쌍한 여름 날씨는 체력 소진의 주범으로 전락했. 열기를 잔뜩 머금은 아스팔트 위를 걷고 나면 진이 다 빠지면서 팔다리가 주욱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피부에 작은 점이 여러 개 생겨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우양산!


 튀지 않는 단색상에 가벼우며 비와 햇빛을 잘 가려줄 수 있는 우양산을 원했다. 온라인으로 구매하려니 크기와 무게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겁거나 접기 불편한 제품일 경우 방치만 될 게 빤하므로 구매 보류. 여러 가게를 둘러보아도 딱히 끌리는 제품이 없었다. 그렇게 구매를 미루던 찰나 드디어 내게 딱인 우양산을 발견했다. 쇼핑몰에도 없던 우양산을 발견한 곳은 바로 화장품 가게였다.


 1만 6천 원이라는 적합한 가격에 저채도의 색상. 무게는 가볍고 빠르게 접히는, 게다가 다양한 옷차림에도 두루 어울리는 우양산이었다. 연보라 색상과 푸른색을 두고 고민하다가 블루 계열을 선택했다. (마음 같아선 두 개 다 구매하고 싶었다.) 기쁜 마음으로 결제를 하고 나와서 우양산을 활짝 펼쳤다. 내게도 이제 개인용 그늘이 생겼다.

 신중하게 구매한 나를 좀 칭찬하려는데 정체불명의 고릿한 냄새가 겨왔다. 응? 왜 우양산에서 말린 오징어 냄새가 난담? 햇빛에 바짝 말리면 사라지겠거니 하고 며칠 베란다에 두었다. 오산이었다. 여전히 양산에선 건어물 냄새가 풍겼다. 소재 자체에서 나는 냄새인 듯했다. 아주 심각한 수준은 아니기에 눈 꼭 감고 쓰기로 결정. 다만 양산을 펼칠 때 남들이 내 냄새로 오해할까 민망하다.


 우양산을 달간 사용한 후기는 이러하다. 일단 날이 궂어도 마음만은 든든하다. 해가 쨍쨍하든 구름이 끼든 '내겐 우양산이 있잖아.' 하면서 안심한다. 이걸 이제야 샀나 싶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이젠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어서 좋다.

 외출 전엔 필수로 신발장 고리에 걸어놓은 우양산을 챙긴다. 작고 가벼운 우양산이 가방에 쏙 들어가면 이게 뭐라고 든든한 안정감이 든다. 파스텔 블루 양산을 활짝 펼칠 때마다 '사길 참 잘했어.' 하며 뿌듯.

 하지만 견고성이 떨어져서 조그만 바람에도 눈치를 살펴야 한다. '나 뒤집어진다?' 하고 협박하는 녀석을 어르고 달래며 외줄 타기를 하듯 바깥을 거닌다.


 우양산을 사용하면 번거로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막상 양산을 사용해 보니 이게 몇 배나 더 편하고 유익하다. 지글지글 끓던 두피와 피부가 덕분에 좀 숨을 쉰다. 어딘지 모르게 엉성한 우양산을 보며 나와 닮은 점을 셈해본다. 제 몫을 잘 해낸다 싶으면서도 어설프고 나약한 성질 나와 우양산의 공통분모이다. 냄새만 빼면 우린 참 많이 닮았다. 화장품 가게에서 만난 우양산. 다음 여름에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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