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뼈에 두부살'이라는 속담이 있다. 뼈가 몹시 가늘고 두부처럼 연약한 살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내 발의 피부가 그러하다. 여차 하면 상처를 입는 살갗 때문에 신발 고르기가 여간 쉽지 않다. 좋은 신발, 예쁜 신발, 유행하는 신발 등을 두루 거쳐 내게 맞는 신발을 열심히 찾다가 '지네'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자고로 신발은 다다익선이라고 주장했던 때가 있었다. 까다로운 발을 지키기 위해서 자주 지갑을 열기도 했다. 그런데 고르고 골라 산 신발이 매장을 벗어나는 순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했다. 반품도 처분도 못한 채 쌓인 신발이 한 트렁크인지라 내 속도 신발장도 미어터지기가 일쑤였다.
"가죽이라서 신다 보면 발에 맞게 늘어나요.", "처음엔 조금 불편해도 신을수록 편안해요."라는 판매원의 말에 속아서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도 옴팡지게 했다. 내게 잘 맞는 신발, 좋은 신발의 기준을 스스로 정립하지 않았던 대가였다. 가게에서 신었을 때 조금이라도 불편한 구석이 있다면 당장 벗어던져버릴 것. 아무리 예뻐도 실용성이 떨어지면 사지 말 것. 신발을 살 때 다른 건 몰라도 이 두 가지만큼은 꼭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두부살에, 평발에, 불편한 것 역시 못 참는 내게 안성맞춤인 신발이 있기나 할까. 어떤 신발을 신어도 두어 시간만 지나면 다리에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어 괴로웠다. 쇼핑몰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별생각 없이 신발 가게에 들어갔다. 주르르 진열된 신발 중 한 켤레를 골라 착용해 보았다. 뉴발란스의 '4E W480'인가 뭔가 하는 신발이었다. 무난한 디자인과 착용감이 마음에 들어 일단 결제를 하고 가격표까지 떼버렸다. '이번엔 과연 신을만하려나.' 살짝 의심이 앞섰지만 이미 엎질러진돈이었다. 그렇게 산 운동화를 신고 출근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장시간 산책도 했다. 운동량이 많은 날이면 새로 산 운동화부터 착용했고 그러면서 자연히 깨달았다. '어라. 나 얘랑 엄청 잘 맞네.'
게다가 신발 예쁘단 소리를 매우 자주 들었다. 재킷, 원피스, 운동복 차림 등에 골고루 걸쳐도 같은 칭찬을 받게 되자 콧노래가 흥얼흥얼.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편한데 예쁘고 가격까지 합리적이라니. 결국 같은 라인에 색깔만 다른 신발을 세 켤레씩이나 샀다. 우리 집 신발장 노른자 땅을 뉴발 삼총사가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베이지, 블랙, 그레이. 같은 디자인의 운동화를 여러 켤레 장만하면서 '너무 욕심내는 건가. 이게 맞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뽕뽑템에 등극하고도 남았으니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
'좋은 신발은 사람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라는 말이 있다. 한때 나는 좋은 신발을 그저 비싼 신발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된 시발점이다.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산 구두 때문에 발이 아플 때면 '다음에는 더 비싼 신발을 사야겠다.'라는 미련한 생각을 했다. 유명하고 비싸다고 해서 반드시 좋으리란 법이 없거늘. 합리적인 가격에 산 신발이야 말로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었다. 내 발에 잘 맞는 편안한 신발은 굳은 땅, 가파른 경사, 사람이 붐비는 곳도 곧잘 헤쳐나가도록 도왔다. 이로써 양질의 경험과 멋진 추억을 축적할 수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어지간히 신경 쓰던 때가 있었다. 물집이 맺히는 구두를 신고도 예뻐 보이면 그만이라 생각하며 피부에 생채기를 냈다. 약국에 가서 밴드를 살 줄은 알았어도 나의 편안함을 우선으로 여길 줄은 몰랐다.
이젠 신발이건 사람이건 간에 나를 아프게 하는 존재는 멀찍이 거리를 둔다. 진땀을 흘리면서까지 나를 깎아가며 맞춰야 한다면 어차피 오래 공존할 수 없다. 물건도 사람도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해서 절로 안락해지는 건 아니다. 한 번 아픈 신발은 두고두고 발을 불편하게 하는 것처럼 좀처럼 내게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땐 내 노력의 부족을 탓할 게 아니라 헌 옷 수거함 같은 구멍을 찾아야 한다. 내게 잘 맞는 대상을 더 가까이 두고 사랑하는 건 편법이 아니라 지혜이다. 또 한 번의 여름을 보내고 신발장을 정리하면서 마음도 가지런히 정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