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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Sep 17. 2024

꿩 대신 용이 된 가방

정가: 109,000원, 감정가: 110,000원

 어김없이 돌아온 명절. 시댁으로 떠나는 날 아침이 됐다. 몸상태가 좋지 않아 머리도 감지 못한 채 양치질과 세수만 겨우 끝냈다. 겨우겨우 외출할 채비를 하는데 걸을 때마다 골이 흔들흔들. 곁에서 나를 걱정하던 남편이 재차 시계를 보더니 초조한 듯이 외쳤다. "이제 진짜 가야 돼. 일곱 시 넘었어." 아악! 어렵사리 구한 기차표인 데다가 차편을 놓치면 답이 없는 상황인지라 황급히 옷방으로 달려갔다.


 '어떤 가방을 들고 가야 하지?' 수납장을 재빨리 둘러본 후 가장 위칸에 있는 나일론 토트백을 꺼냈다. 핸드폰, 텀블러, 화장품 파우치, 에어팟, 도서, 충전기, 세면도구를 몽땅 때려 박은 가방을 들고 부리나케 집 밖으로 나왔다. 무사히 역에 도착하자 내 손에 들린 가방의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작은 몸집에 물건이 넣는 대로 쑥쑥 잘도 들어간다. 휘뚜루마뚜루 백으로 마르고 닳도록 잘 사용해 왔는데 지금까지 흠집 하나 없다.


 값비싼 프라다 나일론 백을 사려다가 수납력 하나만 보고 구매한 이 가방의 이름은 '모데나 토트백'이다. 정가는 10만 9천 원인데 쿠폰을 사용하여 고작 6만 9천 원에 손에 넣었다. 가방을 이용해 보기 전까지만 해도 6만 9천 원이라는 금액마저 썩 내키지 않았었다. 이 가방을 스무 개 이상 사야 내가 사려던 가방 한 개의 가격이 나오는데 말이다.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구매한 가성비 토트백은 꿩도 닭도 아니요 진귀한 용이었다.


 바쁠 때, 일정이 빡빡할 때, 물건이 많을 때, 몸이 편하고 싶을 때 필연적으로 손이 가는 가방. 이로써 설명 충분.

 나는 전형적으로 짐이 많은 보부상 유형의 인간이다. 내가 바라는 가방은 상상 속의 도라에몽 요술 주머니나 다름없었다.

 일단 가볍고 편해야 하며, 물건을 찾으면 얼른 눈에 딱 보여야 하고, 실용적인 주머니가 여러 개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텀블러 마저 흔들림 없이 탄탄하게 수납해 내는 가방. 그런 제품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바로 이 가방을 직접 사용해 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기존에 텀블러 수납을 위한 가방을 여러 개 구매했으나 공간이 비좁아서 넣고 빼기가 도통 쉽지 않았다. 기타 수납공간이 헐겁고 빡빡해서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경우 부지기수. 꿩 대신 닭 대신 용 백은 텀블러 수납공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불편함을 겪은 적이 없다. 한 번 찔러 넣은 제품이 뒤죽박죽 섞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게 신기하다. 이게 다 절한 사이즈 덕분인 듯하다.


 가로: 22cm

 세로: 29cm

 폭: 13cm

 무게: 532g

 

 부담 없이 들고 는 게 가능한 크기와 무게이다. 도대체 누가 고작 7만 원대의 가격에 이런 괴물을 만들었을까? 가방 밑바닥에는 네 개의 금속 지지대가 박혀 있어 물건이 많든 적든 꼿꼿이 잘 선다. 유용한 수납공간이 무려 여섯 개나 되는데 뒷부분에는 큰 가죽 주머니가 붙어 있다. 이동 시 휴대폰 넣기에 안성맞춤이다. 똑딱이 자석이 입구를 야무지게 봉해 줘서 급히 달려도 분실 위험이 없다. 금속 지퍼가 달린 네모난 앞주머니수첩, 화장품, 립스틱을 넣어두고 그때그때 빠르게 사용하기에 딱이다. 가방 안 쪽에는 널찍한 지퍼 수납칸이 또 있다. 이곳은 현금과 에어팟 등을 숨겨두는 공간이다. 지퍼 주머니 맞은편에 두 개의 수납공간이 나란히 있는데 작은 액세서리, 영수증, 손 소독제 등을 넣는 용도로 쓴다. 대망의 메인 공간 텀블러, 책, 파우치 등등을 내키는 대로 쌓을 수 있다. 입구 크기는 조리개로 조절 가능하며 자석 단추는 역시 덤이다.


 꿩 대신 닭 대신 용 백을 사용한 지 삼 년 차. 이쯤 되니 진지하게 알고 싶다. "모데나 토트백아. 대체 네 어머님이 누구니?" 별 기대도 없이 구매한 가방 덕분에 불필요한 큰 지출을 막았다. 명품을 바라보는 기준도 재정립 됐다. 자꾸 손이 가는 옷과 가방, 게다가 삶의 질을 향상해 주는 아이템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명품 중의 명품이다.

 모데나 토트백을 검색해 보면 제품 정보도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가방을 이용해 보면 진가를 알 것이다.


 이런 는 이유는 콩고물도 떨어지지 않는 마당에 구매를 유도하기 위함 아니다.  역시 좋은 글을 생산하기 위해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사색한다. 글이 모데나 토트백인지 뭔지 하는 가방처럼 '어쭈. 요것 봐라?' 하는 매력을 지녔으면 한다. 기대 없이 나의 글을 접했다가도 '어? 글이 꽤 읽을 만하네. 미세스쏭작가 뉘야?' 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가방은 가방 역할을 하고, 글은 글의 역할을  것. 오늘도 키보드를 갈고닦으며 성을 들이는 이유이다.

너는 한 땀 한 땀. 나는 한 줄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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