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세스쏭작가 Jul 09. 2024

인생이 피곤할 땐 눈약이지

정가: 4,000원, 감정가: 6,000원

 사랑하는 나의 반려견 자두가 떠난 지 사십일. 단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다. 팔 년 동안 함께 산책했던 동네 구석구석에서 자두가 보인다. 자두를 향한 그리움은 나를 눈물의 여왕으로 만들었다.

 안구건조증을 앓고 있던  눈은 닳아 없어져 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왼쪽 눈에는 다래끼 두 개가 났고 양쪽 눈의 충혈은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다가 로인지 로인지 하는 눈물약을 손에 넣었다. 환율과 점포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고작 삼천 원 정도를 지불하고 이 제품을 샀다.


 일본 현지에서 낮은 가격으로 산 로토 안약은 면세 봉투에 봉인된 채 집으로 왔다. 정신없이 짐 정리를 하다가 문득 궁금다. '이 안약은 대체 왜 유명한 걸까? 뭐 조그만 효과라도 있을까?'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작은 상자를 개봉했다. 오렌지색 뚜껑에 마름모 모양의 독특한 디자인을 보니 안약이 아니라 장난감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구매했으니 사용해 봐야지.


 하던 일을 멈추고 양눈에 골고루 안약을 투약했다. 헉! 너 뭐냐. 지금 내가 넣은 게 눈약이여? 탄산수? 빛 부심은 배가 됐고 눈이 쉽사리 떠지지 않았다. 자자. 침착하자.

 약 성분이 골고루 퍼지도록 가만히 눈을 감고 천장 쪽으로 고개를 젖혔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안구에 청량감이 돌고 피로까지 확 씻겨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 '이야. 이거 물건이네. 더 사 올 걸 그랬나?' 역시 소비자의 마음은 갈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신선한 충격을 감상 중인데 TV를 시청하던 남편이 외쳤다. "치사하게 혼자만 넣노!"


 등지고 있던 나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숨기며 그에게로 돌아앉았다. "여보도 요즘 자두 때문에 눈이 많이 피로하지? 이거 넣어 줘?" 남편은 기대의 눈빛을 발사하며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소파에 누웠다. 나는 빠른 손놀림으로 그의 양눈에 안약을 투척했다. "악. 내 눈! 이거 뭐야." 남편 역시 처음 맛보는 안구의 청량감에 깜짝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혼자 짐 정리를 하느라 진땀을 빼던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아하하하. 눈약 맛이 어때?" 남편은 진지하게 되물었다. "내 눈만 이런 거 아니지?" 나도 처음엔 깜짝 놀랐다고 솔직하게 답했더니 그의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번졌다. "오. 이거 진짜 시원한데?"


 캐리어 두 개와 짐가방을 마저 정리하고 다시 깨끗해진 집을 마주하니 애써 외면했던 그리움이 폭발했다. '다 있는데 우리 자두만 없네.' 오늘도 울지 않고 버티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한바탕 눈물과의 전쟁을 치르고 여행의 여운이 깃든 눈약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눈약을 넣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그 짧은 시간이 위안으로 다가왔다. 눈 전체에 시원한 약이 번지면서 화한 느낌이 감돌 때면 잠시나마 설움이 씻기는 기분이 든다.


 개봉한 안약은 정도 사용이 가능하단다. 서른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속절없는 슬픔에서 조금 자유로워질까. 눈도 마음도 치유되어 건강하게 아물기를 기대한다.

 이제 침실 불을 끄려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눈약 어디 있어?" 적어도 지금은 우리에게 로토 안약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다. 물론 로또(lotto)의 도움이훨씬 더 좋지만.

내돈내산 로또 말고 로토
이전 11화 여름 여행 갈 때마다 챙기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