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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Oct 09. 2024

윗집에 쪽지를 붙이고 초인종이 울렸다

천 번의 고민 끝에 붙인 쪽지

 텅 비어 있던 윗집에 누군가 와서 망치질개시했다. 밤 열한 시. 어디서 많이 듣던 발망치 소리와 재채기 소리 들다. 몇 년 전에 이사 갔던 윗집 남자의 쓰리 콤보 재채기 소리다. 늦은 밤인 데다가 욕실에서 시공을 하고 있었기에 소음이 여과 없이 전달됐다. 남편과 나는 머리를 감싸며 "설마. 설마."를 외쳤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간질에 밤낮 거짓말에 보복 소음을 일삼던 그 원수들이 돌아왔단 말인가...


 근 파트 내에서 요란한 인테리어 공사가 시행됐다. 부수고 박는 소음이 몇 날 며칠 이어졌다. 큰 소음에 덜덜 떠는 자두(반려견)가 불쌍해서 부모님 댁으로 보내야만 했었다. 공사가 끝날 무렵 "드디어 자두를 데려올 수 있겠다!" 하는 계획에 설렜다. 그런데 자두가 급성 폐수종으로 사망했 가까이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게 한이 됐다. 미치기 직전의 슬픔을 꾸역꾸역 견디고 있었건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놈까지 돌아 걸!?


  남편은 관리실 직원 분께 소음 중재를 요청했다. 잠시 후 폰이 울렸다. "공사를 오래 진행하진 않았다던데요?" 남편은 되물었다. "시각이 밤 열한 시인데 답변을 그렇게 하던가요? 혹시 예전에 살던 그 집주인들이 돌아온 건가요?" 통화는 이렇게 마무리 됐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미궁의 도가니 속에서 윗집의 이사가 진행되었고 몇 달 동안 내리 소란스러웠다. 여름에 시작된 소음은 가을 문턱까지 계속 됐다. '정리할 게 많겠지.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럴 수 있어.' 새벽 두 시에도 참을 인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며 버텼다.

 몇 차례 엘리베이터 안에서 13층 사람들을 만났다. 다행히 과거의 그 빌런들아니었다. 우리 부부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눈길 한 번 지 않았다. 대화는커녕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몇 번의 기회를 흘려보냈다.


 밤늦은 시각의 층간소음이 반복되는 동안 갖가지 방법으로 마인트 컨트롤을 다. 내가 누군가. 존버의 달인 층간소음 일타 강사가 아니던가. 잠언 필사를 하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잔잔한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32dB짜리 이어 플러그도 갈아 껴가면서 버텼다. 귓구멍이 남아나질 않았지만 어떻게든 잠을 청해했으니까. 가장 효과가 컸던 방법은 피난이었다. 부모님 댁으로의 피신. 과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을까. 암담했다.


 윗집에 전달할 쪽지를 몇 번이나 썼다가 지우고 버리길 반복했다. 읍소하는 쪽지, 간결한 쪽지, 구구절절한 쪽지 등을 수 차례 작성했으나 전달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걸 붙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미련을 떨다가 시월이 되었다. 한밤중의 소음은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천장을 난타했다. 남편과 나는 뭐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결국 쪽지를 적었다. 또박또박 예쁘게 글씨를 쓰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내용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장모님 댁에 가서 자자는 남편에게 오늘은 우리 집에서 머무르자 다. 윗집 사람들이 쪽지를 보고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쯤 쪽지를 봤을까?

 괜히 싸움 나는 거 아냐?

 지금이라도 가서 떼 버릴까?


 날 밤 정말로 초인종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쪽지를 보고 찾아왔는데요." 그들의 표정과 말투는 딱 봐도 호의적이었다. 우리가 붙인 쪽지는 분쟁이 아닌 대화의 장이 되었다. 그들은 과일까지 사들고 와서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고충을 헤아려 주었다. 윗집 원수가 지니로 하는 법이 이뤄진 날이었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너무나 간절히 기다렸던 질문이었다. 나는 딱 하나의 소원만을 빌기로 마음먹고 윗집 지니에게 부탁했다.

 "발꿈치 소리가 가장 큰 문제인데 혹시 여건이 되신다면 슬리퍼를 착용해 주실 수 있나요? 만일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지니가 답했다. "네. 꼭 그렇게 할게요. 상황이 이랬단 걸 저희는 랐어요."


 어떻게 공동주택에 살면서 밤마다 이토록 자유분방할 수가 있냐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며 그들을 원망했는데 몰랐다니! 정말로 몰라서 그랬다니. 진작 대화라도 시도해 볼 걸. 그들을 원망하며 도망 다닌 만고의 시간들이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뭘 해 보지도 않고 '이럴 거야. 저럴 거야. 어차피 안 바뀔 거야.' 다 이런 식으로 상을 허비하지 으리라.


 남들에게 피해 주는 행위를 지양하는 것. 내 집의 소음이 아랫집에 흘러감을 인지하는 것. 공동주택에 살면서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과 개념이다.  간단한 이치를 두고 여태 기 입장만 앞세우는 사람들만 만나왔다. 상식이 통하는 이웃을 만난 건 처음인지라 감사 또 감사했다.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 일처럼 여기고

 서로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자.♬


 운동회 행차 때마다 힘차게 불렀던 동요이다. '서로서로 도와가며'라는 곡이다. 머리띠를 두르고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를 외치던 시절의 운동회 행진곡이라니. 강산이 몇 번 바뀌고도 남았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력 이토록 무섭다. 윗집이 발꿈치를 구르며 층간소음을 일으킬 때마다 이 노래조렸다.

 노래는 이웃의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살라고 권고한다. 이젠 일방적으로 인내며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된다. 노래 제목처럼 서로서로 돕는 이웃이 되었으니까.

 윗집 사람들에게 쪽지를 붙이고 배려라는 열매를 선물 받았다. 어떤 과일보다 달콤한,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귀한 답례품이다.

층간소음 일타강사 미세스쏭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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