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과 아랫집의 역사는 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쓰인다. 불편한 이웃과 엘리베이터를 타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안 간다. 내가 탄 것은 엘리베이터인가 굼벵이인가 대충 이런 느낌. 어색한 상황이 싫어 종종 계단을 이용했지만 그날따라 두 손에 짐이 가득했다. 엘리베이터를 눌러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떠들썩한 인기척이 들렸다. 흑. 윗집 사람들이었다. 층간소음 때문에 삼자대면을 했던 전적이 있기에 썩 편치 않았다. 윗집에 사는 세 식구와 나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바쁜 척 열연을 펼쳤다. 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우리 집과 윗집의 버튼을 모두 누르며 "십삼 층 분들 맞으시죠?"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나의 센스(...?)에 감탄하며 고맙다고 했다. 엄마 아빠 사이에 서 있던 아이에게도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아이 얼굴을 이제야 보네요. 아이. 귀여워. 안녕. 반가워." 고맙게도 아이는 초면인 아랫집 이모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해 주었다. 봉인해제 된 내가 소리를 내며 웃자 윗집 사람들도 덩달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모한테 인사했어? 참! 저희 이사 가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근처 새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인사가 절로 나왔다. "부럽네요. 하하. 아가. 건강하게 쑥쑥 크고 새 집에 가서도 잘 지내." 나와 아이는 다시 한번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저녁마다 소란스러워서 미안했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윗집 분들의 인사에 여운이 짙게 남았다. 그 짧은 인사로 우린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도 껄끄럽지 않을 진짜 이웃이 되었다.
윗집 아랫집의 끈으로 만난 지도 벌써 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사다난했던시간들을 뒤로한 채 그들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나저나 앞으론 어떤 사람들이 이사를 오게 될까? 그놈의 층간소음 분쟁에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고생깨나 했던지라 걱정이 앞섰다. 사다리 차가 와서 13층의 짐을 몽땅 싣고 동네를 떠났다. 세 식구가 이사를 간 후 한동안 고요한 집에 머물렀다. 어찌나 평화로운지 아파트가 아니라 독채 펜션에 머무르는 느낌이 들었다. 새소리와 매미 소리로 아침을 열고 잔잔한 저녁노을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오직 내 쉴 곳은 내 집뿐이리."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잘 준비를 하던 저녁이었다. 시곗바늘이 밤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야심한 시각에 "꽝꽝꽝. 윙윙." 하는 망치질 소리와 드릴 박는 소음이 귓전을 때렸다. "이 시간에 누구야?" 남편과 나는 일동 얼음이 되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 왔다. 망치질 소리만큼이나 큰 발꿈치 소음이 천장을 난타했다. 추후 아파트 채팅방에선 이 소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다. 신혼 초에 우릴 괴롭혔던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 거라면 어떡하지? 심장이 두근두근 머리가 어질어질. '피치 못 할 사정이 있나 보다' 하는 양지의 마음과 '밤늦게 왜 저래?' 하는 음지의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벌였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귀마개로 두 귀를 단단히 틀어막았다. 전쟁의 서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