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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Dec 11. 2024

주인 없는 옷을 발견했다

작고 소중한 너의 흔적

 겨울을 맞아 베란다 수납장에 보관했던 두툼한 패딩을 꺼냈다. 우리 부부의 옷 사이에 껴있던 무언가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두 뼘도 채 되지 않는 자두의 작은 옷가지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두가 잘 입던 옷들인데 이젠 입을 이가 없다.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자두의 흔적 끌어안았다. "자두야. 너무 보고 싶어." 하늘나라로 떠난 자두의 이름을 가만히 불렀다. 군데군데 보풀이 일어난 옷을 쓰다듬었다. "더 좋은 옷을 사서 입힐 걸 그랬어." 혼잣말은 눈물이 되어 양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옷을 입자마자 산책 나가자고 흥분하던 자두의 모습, 스웨터를 입고 눈을 헤집던 신나는 걸음. 다신 볼 수 없는 그리운 모습들이 눈앞에 피어올랐다. 자두 없이 맞는 첫눈과 겨울은 유난히 더 시리게 느껴졌다. 추억이 가득한 옷을 붙들고 울고 나니 기진맥진. 든 자리, 난 자리가 모두 너무나 큰 반려 가족인지라 이따금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터진다. 괜찮은 날과 괜찮지 않은 날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 삶의 이치라 생각한다.


 자두가 숨을 거뒀던 2024년 5월 29일은 정말이지 하루가 천 년 같았다. 오직 버티는 게 목표였던 몇 달의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원망스러울 만큼 더디게 흐르던 날들이 모여 어느덧 연말이 되었다. 자두가 없는 자두의 생일과 기일을 맞게 된다.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릴 걱정이 앞서지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리움을 멈출 수는 없지만 견뎌 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이 땅의 시간을 하늘나라의 시계로 계산하면 삼 일이 채 되지 않는다고. 그러니 천국의 시계로 그저 하루 정도 울고 그리워하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너무 힘들 땐 이런 가정이 제법 힘이 된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나니 별것 아닌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특별하다. 실랑이를 하며 입혔던 자두의 옷마저 이토록 슬픈 걸 보면 곁에 있는 내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단 다짐이 선다. 자두와 함께 했던 팔 년의 시간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두고두고 큰 용기가 돼 줄 것이라 믿는다.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건 다 옛말이다. 떠난 자리에 사랑을 남기는 자야 말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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