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 건의 소개팅을 주선했다. 사람관계에 매우 신중하고 소심한 나로서는 이번 해가 최다의 소개팅을 주선한 셈이다. (겨우 세 건인데?) 어쩌다 한 번 주선하는 소개팅 자리에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아주 괜찮은 두 남녀를 앉힌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조용히 소식을 기다리면서 설레기도 하고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들이 잘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한 커플이 탄생하는 기쁨을 미리서 상상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세 건의 선남선녀소개팅은 모두 어그러졌다. "좋은 사람 만나게 해 주셨는데 죄송해요. 정말 괜찮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 이성으로서는 끌리지가 않았어요.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팅을 주선했던 상대는 모두 달랐지만 내게 전하는 지인의 소감은 거의 비슷했다.
대체무엇이 문제였는지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직업도 괜찮고, 그만하면 외모도 준수하고, 성품도 좋기로 자자한 사람을 연결해 줬는데 이성으로서 끌리지 않았다니.
그들의 속이야기를 들어보니 소개팅의 성공 여부와 그 자리에 나갔어야 하는, 혹은 나가지 말았어야 하는 상대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키, 몸매, 나이, 피부 색깔 등. 보정이 들어가 있는 한 장의 사진으로는 판별하기가 어려운 외모 조건이 만남에 큰 걸림돌이 됐던 것이다.
사실 그들에게 이성을 볼 때 어떤 면이 가장 중요한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소개팅을 주선한 것이었기에 조금은 허무했다. 착하고 쑥스러움이 많은 나의 지인들은 "이상형 같은 건 따로 없어요."(사실 명확함), "이성을 볼 때 중요한 것은 딱히 없고 성격이 가장 중요해요." (성격도 중요함), "착하면 좋아요." (가장 어려움)
이렇게 답했기에 그대로 믿었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애초에 알았다면 가능성이 희박한 소개팅을 주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또 그들대로 돈과 시간을 쓰면서 불편한 자리를 견딘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쑥스러워하며 넌지시 속내를 비추는 그들의 의견은 이러했다.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키를 중요시 생각해요.
날씬한 사람이 아니면 끌리지가 않아요.
세 살 연상은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성공하는 소개팅은 역시나 이상형에 걸맞은대상이 나올 때라야 가능한 것이다. 소개팅 주선자가 조금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이상형과 기준을 정확하게 언급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절차이다. 노력을 해도 도통 마음이 열리지 않을 만큼 이상형과 거리가 먼 상대를 만나러 가는 것은 자신에게도, 소개팅 주선자에게도, 자신을 만나러 나온 사람에게도 아쉬움만 남긴다.
이성을 보는 기준을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때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없다.소개팅 주선자를 비롯하여 주변 이들에게 당신은 이미 검증된 괜찮은 사람이기에 자리를 만들어 드리는 것이니 일단 원하는 기준을 명확하게 알리면 될 일이다. 끌리지 않으면 거부하는 것 또한 당신의 자유이다.
"나이는 동갑 혹은 한두 살 연상까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목소리가 좋고, 앞머리를 올렸을 때 이마와 눈썹이 멋진 훈남이면 좋겠어요. 부모님께 교육을 잘 받은 착한 사람이면 좋겠고 욱하는 성격은 절대 안 돼요. 물론 교회도 다녀야 하고 신앙생활도 잘해야죠." 매일 밤 이렇게나 콧대 높은 내 이상형의 기준을 예수님께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거의 십 년 넘게 똑같이 두 손 꼭 모아서 꼬박꼬박 기도했다.
이런 기준을 말했다간 지인에게 절교를 당했을 수도 있기에 소개팅 경험은 거의 없다. 어디까지나 콩깍지 낀 내 기준이지만 이상형에 부합하는 지금의 남편을 교회에서 만났고 소개팅의 주선자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저녁 기도를 들으셨던 예수님이었다.
만일 지인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면 매우 정제된 이상형을 단 한 문장으로 이렇게 설명했을 것이다.
"사진좀더 보여 주세요..."
이상형: 그냥 뭐 크게 바라는 건 없고요. 이런 외모를 가진 우리 나라 사람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