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만 되면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쉬이 잠들지 못했던 내가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드는 사람으로 변화된 계기 중 하나가 생각의 전환이었다는 글을 쓴 바 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잘보이려 애쓰지 않는 것, 그러거나 말거나 적당히 무시하는 연습을 하는 것은 마음에 여유와 평안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따금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상대의 말보다 내가 뱉은 말이었다. ‘내가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을까?’ 이불을 팡팡 발로 차면서 칠흑 같은 저녁을 후회로 물들이던 날들이 있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매 순간 구분하게 해 주세요. 말을 해야 할 때 하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지혜를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어떻게 하면 내 말이 나와 타인에게 득이 될지 거듭 고민했다. 대인관계의 리스크를 줄이고 내 마음이 편안하기 위해 시작한 것은 이름하여 ‘한마디 다이어트’이다. 이 방법을 통해 대인관계가 놀랍도록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건강한 대화 습관인 한마디 다이어트를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실천했다.
첫째, 한마디를 덜한다.
열 마디의 좋은 말을 건네는 것보다 한마디를 덜 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하는 이와 듣는 이의 입장이 서로 다르고, 열 마디의 좋은 말을 한다 해도 한마디를 실언하면 부정의 파급력이 긍정의 말을 삼켜버린다. 한마디를 삼가는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 수년 간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 대화 습관으로 거의 체화 되었다. 하나의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 오 년이 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으니 항상성이 생겼다고 봐도 무방할까.
언어 습관은 말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을 배웠고 한마디 다이어트를 통해 내 입을 속박함으로써 더 큰 자유를 얻었다.
마지막에 하려다가 말았던 그 한마디는 어떨 때 보면 아주 사소한 말이기도 했고, 때론 몹쓸 말이었다. ‘그 말을 안 하길 참 잘했다.’ 아찔함과 동시에 안도하며 가슴을 스르륵 쓸어내릴 때 한마디 다이어트의 중요성을 더욱 체감한다. 대화 당시에는 별 것도 아니게 느껴졌던 말인데 돌이켜 보면 내뱉지 않길 잘했다 싶은 게다.이제는 심혈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있는 이 습관 덕분에 후회와 자책이 줄었고 이불킥은 내가 아닌 건조기의 몫이 되었다.
둘째, 상대방이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게 만든다.
대화를 끝내야 하는 시점이라면 되도록 마지막 말은 상대가 하도록 양보한다. 상대방에게 마지막 발언권을 주고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하고 상황을 정리하면 된다. 이는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하는 개운한 대화 방법이다. 서로 충분히 의사를 표명했다면 마지막 한마디는 꼭 내가 덧붙이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한 번 더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음으로써 신중하게 대화 내용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벌 수도 있다. 말실수를 줄이며 사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사사건건 가르치려 들고 아주 사소한 것에도 목숨을 걸고 대화에 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나는 더욱이 ‘아. 그렇군요.’, ‘아하.’ 이런 추임새만으로 대화를 마무리해 버린다. 그들과 설전을 벌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기 때문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편안한 상대와 이야기 나누는 경우라도 중간중간 ‘오해가 없을 말인가?’, ‘어떻게 대답하는 게 가장 좋을까.’ 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 노력한다. 화살기도를 하듯이 찰나의 지혜를 구하고 역시 한마디를 덜 하고 한마디를 더 듣는 대화 습관을 유지하는 것. 이러한 태도와 습관은 사람 간에 신뢰와 애정을 쌓는 중추 역할을 한다.
포만감이 있는 건강한 대인관계를 위해 마지막 한마디를 상대방에게 양보해 봄이 어떨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마디를 적게 하는 습관을 들이자. 한마디는 아무리 삼켜도 제로 칼로리. 그저 한 마디를 삼킴으로써 많은 문제가 미연에 예방되는 경험을 했기에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한마디 다이어트는 여러모로 명약인 대인관계의 처방전이다. 한 입 덜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한마디를 덜 하면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