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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Apr 15. 2024

부자의 조건

아버지의 피아노

내가 여덟 살 정도 되었을 때이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가 말했다.


'너 어떤 사람이 부자인 줄 알아? 침대, 차, 피아노를 가진 사람이 부자야.'


그 아이의 조건에 따르면 우리 집은 부자였다. 침대, 차, 피아노를 다 가지고 있었으니.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부자에 속하는 우리가 자랑스러웠다.


침대는 딱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차와 피아노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두 번째 부자의 조건인 차는 1987년 산 프라이드가 충족시켰다. 중고로 샀던 차는 아마 누가 헐 값이 팔았을 것이다. 길에서 볼 때마다 '어떤 사람이 저런 색의 차를 살까' 늘 궁금해하던 차의 색이 30년도 전에 아버지께서 타시던 차의 색이었다. 누런 샴페인 색. 인기가 없던 색만큼 가격도 더 낮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첫 차였던 샴페인 색의 프라이드를 소중히 대하셨다. 처음으로 차를 받아 오셨던 날, 아버지는 집 앞 공터에서 우리를 차에 태우고 빙글빙글 도셨다. 창문을 열고 들어오던 살랑거리던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날려 올리고, 나는 손을 창 밖으로 내밀어 손가락 사이에 흘러 지나는 바람을 느꼈다. 아버지는 뒷좌석에 앉은 오빠와 나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으셨다. 아버지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걸레와 물통을 준비하시고 차를 닦으러 가셨다. 그의 손길로 누런색은 그만의 오묘하고 부드러운 금빛으로 윤이 났다. 아버지는 깨끗하게 관리된 애마를 몰고 우리를 산으로, 바다로 데리고 다니셨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험하게 운전하고, 장시간 운전에 피곤하시더라도 아버지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의 평안한 기운이 머물고 있어서였을까, 오래된 차였지만 새로운 기능이 장착된 차 못지않게 승차감은 최고였다.

아버지, 오빠와 나



그리고 부자가 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이었던 피아노.


피아노를 사러 영창 대리점에 갔던 날이 어슴푸레하게 기억이 난다. 많은 피아노가 진열되어 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내가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 하셨다.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노가 우리가 쉽게 낼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피아노를 샀지만 친구가 말했던 부자는 결코 아니었다.


집에서 피아노를 연습할 때마다 아버지께서 환하게 웃으셨다. 연주가 아닌 재롱에 불구한 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시던지. 아버지에게는 '딸의 연주'라는 필터가 귀에 달려있었나 보다. 수년 동안 매 달 갚아야 하는 카드빚은 긴 시간 청구서를 보냈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버지께서 지셔야 했던 무게는 조금 가벼웠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말을 줄이셨다. 그러다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그동안 막아둔 물꼬가 틔였던지 입에서 줄줄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 수많던 날 중 어느 날 들은 이야기는, 우리 집이 부자로 선정되었던 마지막 조건이었던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머니께서는 피아노를 구매한 날에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한 아버지를 발견하셨다고 한다. 내가 자라 결혼할 때 저 피아노를 가져갈 걸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훔치셨다는 아버지. 당시 고작 만으로 여섯 살인 어린아이였던 나와 멀어질 날에 벌써 마음 아파하시던 나의 아버지.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어렸던 내가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보인다. 그만큼 아버지의 부재에 마음이 시리다.


부자의 조건을 나열하고 보니 우리가 부자였음이 틀림없다. 물질 부자는 아니더라도 사랑 부자.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이제야 깨달은 아버지께서 주신 사랑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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