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프랑세스 순례길을 걷다 다친 무릎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큰거릴 때가 있다. 날씨나 걷는 양의 변화가 없을 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통증은 이유를 알고 있을 때보다 더 강하게 신경을 건드린다. 미미한 증상이지만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전제는 확대 해석으로 이어지고 밤새 나를 괴롭힌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꿈속에서도 고통을 느끼다 잠에서 깬다.
지난 사랑의 흔적도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분명 지난 사랑에 대한 감정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아무런 매개체 없이 머릿속을 덮어버리는 기억은 놀람을 넘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사랑은 과거일 뿐이라고 치부하여도 가끔씩 떠오르는 단상까지 막기는 역부족이다. 그 단상이 머리에 차오르면, 현재의 나는 과거 속의 나와 겹쳐지며 그 날의 상황이 더 뚜렷하게 떠오른다.
기억 속의 모습이 옛사랑과 절절히 사랑하던 시간은 아니다. 무의식 중에도 그가 더 이상은 내 인연이 아님을 인정했다는 뜻이려나. 베란다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마시던 커피의 향긋한 향과 그 위로 쏟아지던 찬란한 햇빛이 눈부시던 일요일 아침. 흥분으로 고함을 지르던 사람들로 가득한 펍에서 2008년 월드컵을 시청하며 맥주를 들이켜던 찰나. 그리고 내 옆에서 함께 있는, 이십 대의 앳된 옛사랑. 당시에는 많은 소리와 움직임이 있었다는 걸 알지만 기억 속의 모습은 항상 모든 게 멈춰있고 고요하다. 마치 정지한 시간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그 상황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 선명한 색감과 촉감 그리고 후각은 십여 년이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재현된다.
아련한 추억 속에 잠길 때면 헤어진 그가 그리워 나도 모르게 불러오는 기억이 아닌가 싶어 두려워진다. 지난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어 울며 지샜던 수많은 밤들, 슬픔에 침식당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쓰며 아픔을 토하던 시간이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라면... '나도 모르게 현사랑을 옛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공포는 지금 곁에 있는 T를 내가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곰곰이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그리움의 사전적 의미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다. 감정을 사전의 뜻으로 칼같이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인가, 아닌가를 알아보기엔 적절한 정의였다. 연거푸 나의 심정을 꼬집어 보니 보고 싶은 마음과 애타는 마음 중 어느 것도 헤어진 그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오히려 옆에 있는 T에게 맞아떨어졌다. 순간 불편했던 마음이 서서히 누그러졌다. 과거가 쌓여 지금의 나를 있게 하였고, 가끔씩 떠오르는 단상은 그리움이 불러오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려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그 시간 속에 잠기는 건, 이런 사소한 일들이 나중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걸 상기시켜주기 때문이 아닐까.
옛사랑이 아닌 현사랑과 함께 마시는 커피의 향과 내려 쐬는 햇살, 스쳐가는 바람의 온도, 그리고 주위에 울려 퍼지는 청량한 새소리. 지금 내가 즐기는 이 순간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억 안에 저장해둬야겠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들어가 지금의 행복을 다시 만끽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