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녀가 되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내 나이 26살이었다. 이제 막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첫 직장을 다니고 있던 사회 새내기. 새로운 역할이 낯설지만 세상에 나서는 게 두렵지 않았던 이십 대 중반. 직장인이라는 위치에 적응하는 게 나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그때, 연애는 나에게 너무도 먼 이야기였다.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채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나를 소모할 여유가 없었다. 내 인생에 사랑은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시기에 그는 내가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물론 그를 만나기 전 나에게도 사랑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사소한 것에 웃고 헤어질 때 가슴이 저렸던 순간들을 분명히 기억한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나의 옛사랑은 사랑이 아니게 되었다. 지난 연인들과의 기억들은 추억이 아닌 그저 과거가 되었고 한 때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지인으로 치부되었다.
드라마처럼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것 아니었다. 클럽에서 따라오는 남자를 피하기 위해 그의 인사를 받아준 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딱히 마음에 드는 외모도 아니었으며 캐나다인이어서 영어로 이야기해야 하는 어려움마저 있었다. 게다가 이상한 남자가 따라오던 그 클럽에서 만났으니, 오죽했으랴. 맹세코 이야기하건대 거기서 남자를 만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말이 잘 통했다. 시끄러운 클럽에서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한다는 게 가능하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그랬다. 취미 생활과 가족, 그리고 좋아하는 책과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순간 음악이 멈추고 어두웠던 클럽이 환해졌을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서로를 보며 웃었다. 클럽에서 영업시간이 끝났다며 나가라고 해서야 연락처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때도 그를 다시 만날 생각은 없었다. 그가 삼 주 동안 날마다 데이트 신청을 하기 전까진.
그는 내가 꿈꾸던 연인과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자라온 문화, 사용하는 언어, 겉모습 심지어 국적마저 나와 달랐다. 음악 취향이 유일한 공통사였다. 전혀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조금씩 만남을 이어갔고 어느 순간 연인이 되어 있었다. 너무도 서서히 변했던 우리의 관계에 언제부터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번에 걸쳐 느꼈던 거대했던 감정의 물결을 나는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처음 그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던 순간,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던 순간. 심장박동이 너무 커서 내 온몸이 떨리고 있구나라는 착각까지 들었던 그때를 나는 아직도 아주 또렷이 내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다.
내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던 눈부시게 반짝거리던 다이아몬드 반지는 나의 로맨틱한 사랑의 증표였다. 낯선 남자가 말을 걸면 난 일부러 그 반지가 더 잘 보이도록 손을 움직였다. 간혹 사람들이 반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는 행복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와 그의 첫 만남부터 연애, 헤어짐, 재결합 그리고 아름다웠던 프러포즈를 거쳐 국제결혼으로 매듭지은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조잘거렸다. 거기엔 내심 내 사랑은 마치 영화처럼 특별했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유치한 속마음이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래, 난 이 사랑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가진 적이 없었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했을 때, 절반의 사람들은 낯선 곳에서 살아갈 나를 걱정했지만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은 그와 함께 할 걸 알았다며 박수를 보냈다. 심지어 캐나다에 있는 그의 가족들도 내가 캐나다에 왔을 때 제일 먼저 한 이야기가 나와 그가 서로에게 동반자가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고 했다.
분명히 지난 십 년 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이런 결말을 상상하지 못한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있을 거라고, 그 사람만이 내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확신은 생각도 하지 않은 방법으로 산산조각 나곤 한다.
만난 지 십 년째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36살의 이혼녀가 되었다. 그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가슴에 간직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