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별 선고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온갖 화력으로 무장하고 쳐들어온 군대와 같았다. 그의 말은 화살이 되어 나의 가슴에 꽂혔고 감정이 사라진 차가운 눈빛에 나의 온몸은 돌처럼 굳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장비를 가지고 나를 방어하고 그를 공격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몸이 서서히 녹아 땅에 흡수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먹고 자는 가장 기본 욕구를 해결하기에 그렇게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어느 날 내 인생에 불쑥 등장했던 것처럼 그의 퇴장 또한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그와의 관계가 가족에서 타인으로 바뀌는 것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다. 그 고집이 나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그가 나에게 이별을 고했음에도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났던 그 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던 하늘과 맑고 투명한 햇살은 세상의 모든 색상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마치 공기 중에 모든 색감을 극대화시키는 필터가 적용된 마냥 뚜렷하게 보였다. 늘 집 안에만 있다가 간만에 바깥에 나와서 였을까, 눈이 시려 의도치 않게 눈에 자꾸 눈물이 맺혔다.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었지만 나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이 전의 만남과 다른 건 없었다. 나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미소로 맞이했다. 그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최선을 다해 환영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만신창이였지만 그 앞에서만큼은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강인한 전사가 되어야 했다. 내가 나약해질수록 그는 강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의 밝은 목소리에 그 역시 웃으면서 대답하길,
“누나가 그러는데, 네가 나에게 계속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시 노력해보자고 말하는 건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래. 이혼이 두려워서 그런 거래.”
십 년의 시간을 알고 지냈는데 그는 나보다 그의 누나의 말을 더 신뢰하고 있었다.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나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들의 눈에 비춰진 나는 똑똑하고, 젊은, 미모의 여성이었다. 굳이 떠나겠다는 사람을 붙잡고 늘어질 이유가 없어 보였나 보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서 결혼은,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옆에서 그를 사랑하고 지켜주겠다는 의미였다는 것을 몰랐던 게다. 그의 앞에서 짓고 있었던 나의 웃음은 잘 지내고 있어서가 아니라 잘 지내기 위해서 온 힘을 쥐어짠 근육의 움직임이라는 걸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이혼을 동의하지 않았던 건,
그와의 과거를 쉽게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고,
이혼 과정의 복잡함에 혼란스러웠기 때문도 아니었으며,
이혼 후의 삶이 두려워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그를 사랑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