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라는 낯선 도시에서 삶을 시작하게 된 나에게 온 가장 큰 변화는 주변 인물이었다. 이 곳에서는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인연이었다. 한국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거리와 시차로 인해서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연락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몸이 멀어지니 마음이 멀어지는 건 당연지사. 실제로 얼굴을 보면 예전과 같이 편안함을 느낄 거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에 가지 못한 상태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과 같은 맥락은 아니었다. 타지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에게만 의지하는 연약한 존재로 남고 싶지 않았다. 밴쿠버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나의 공간에서 나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알게 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과의 관계가 회사 밖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만의 사회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고 새로운 일원인 내가 그 안에 끼기는 어려웠다. 간혹 마음을 터놓는 동료가 생기긴 했지만 한국에서 허물없이 지내던 친구들과는 달리 벽이 느껴졌다.
하지만 밴쿠버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그가 있었고, 나의 새로운 가족이 된 그의 가족들이 있었다. 그의 가족은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매 달 최소 한 번씩은 누군가의 생일이 돌아왔고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때로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수시로 만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게다가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그리고 가족 휴가까지 함께 지내다 보니 외로움을 느낄 시간조차 없었다.
시작은 우리 둘 뿐이었지만 결혼이란 제도는 다른 인연들을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인연들 역시 사랑으로 얽혀있는 줄 알았다
그와 나의 이별을 듣고 가장 먼저 연락을 한 사람은 그의 누나였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날, 나는 집에서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약 40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갔다. 약속 장소인 시내로 가려면 교량을 건너야 했다. 교량 위에 다른 보행자는 보이지 않았고 눈 앞에 설치된 대형 속도계는 차들이 시속 50km로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닿을 수 없는 속도. 교량 위에서 온전히 혼자가 된 나는, 중력이 뒤로 작용해 몇 배는 무거운 듯한 다리를 질질 끌며 걸었다.
그 교량은 평상시에도 보행자가 많지 않기에 내가 산책을 핑계로 종종 걷던 곳이었다. 걷다가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면 시선의 끝에는 걷던 길 대신, 넓게 뚫린 하늘과 바다로 가득 찼다. 그 밑에는 높지 않은 빌딩이 시야를 가리지 않고 위치해 있었다. 물가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는 끝없이 이어지고, 빌딩과 산책로 사이에는 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간혹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바다를 향해 항해를 시작하는 보트도 볼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나는 착각에 빠졌다. 그 착각은 나도 모르게 미소를 불러오곤 했다. 하지만 이 날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서는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이 들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여 울었지만 탁 트인 교량 위에 올라서자 내 가슴도 따라 열렸다.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여유로움이 필요할 때마다 바라보던 하늘은 더 이상 같은 하늘이 아니었다. 다리 난간을 꽉 잡고 하늘과 바다를 향해 슬픔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을 토해냈다. "아!!! 아!!!! 으아!!!!" 한참을 목놓아 울다 보니 나를 짓누르던 무언가가 울부짖음과 눈물을 타고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그녀를 만나도 울지 않을 수 있겠구나.’ 안심하며 조금 더 가벼운 마음과 발걸음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도착하지는 않을까, 문이 열릴 때마다 내 신경은 온통 새로 들어오는 손님한테 향했다. 약 15분이 지난 후, 문을 통해 낯익은 사람이 들어왔다. 그녀는 살짝 늦은 게 미안했던지, 아니면 나의 상황이 안타까워서였던지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 꼭 껴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그녀의 눈물 앞에서 나의 의지는 바로 무너졌다. 이별을 맞이한 후 처음으로 ‘누군가의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의 마음이 살짝 풀어져 있었나 보다. 우리는 차마 서로를 바라볼 수 없어 바닥만 보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녀의 눈물은 나의 아픔을 공감하고 있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한참을 울던 그녀는 나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
“내 동생이 너무 미워. 너를 이렇게 아프게 한 걸 믿을 수가 없어. 하지만 걔는 내 동생이니까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렇다고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비록 너희가 헤어졌지만 너는 내 영원한 가족이야. 나는 너를 사랑해.”
이제 불과 일 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더 이상 나와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는다. 간혹 연락이 와서 답장을 보내더라도 그에 대한 회신은 없다. 그 당시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녀의 그 마음이 영원하지 않았고, 소중한 가족이라는 그녀의 말을 믿었던 나는 결국 또 다른 상처 받게 된 것뿐이다. 그의 관계와는 별개로 나는 그들을 사랑했고, 우리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의 새로운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가족이었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길게 연결되지 않았다.
결혼으로 알게 된 인연들이 결혼이 끝났을 때 유지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자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를 떠났다. 모두를 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욕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