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여름을 제외한 구 개월이 우기라는 밴쿠버에도 간혹 화창한 겨울날을 맞이하는 일이 종종 있다. 오늘이 바로 그 행운의 날 중 하루였다. 평상시에는 비가 오거나 구름이 잔뜩 끼어 우중충한 날이 많기에 간간이 날씨가 맑으면 상대적으로 하늘은 더 푸르고 공기는 더 상쾌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가을 하늘처럼 높은 파란 하늘과 찬란하게 내려쬐는 햇살을 보고 있자니 집에서 시간을 보내려던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 날에 무례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바람을 쐬며 머리도 비울 겸 나가기로 마음을 먹자, 이제는 추위가 걱정이다. 스웨터, 카디건, 재킷에 목도리까지 둘러메고 집 근처 공원으로 나섰다.
햇살이 잘 드는 벤치에 앉는 순간, 내 코를 의심했다. 어디선가 달큼한 향이 콧구멍을 통해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그 향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아직 새순도 돋지 않은 상태였고 꽃이 열리지 않은 침엽수만이 초록이라는 생명의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나의 마음이 착각을 불러왔나 싶어서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향기는 여전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추운 겨울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느라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잊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이 몹시도 혹독한 겨울이었지만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지나가고 있었다. 봄은 향기로 벌써 내 곁에 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데도 나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봄이 온 것을 믿지 못하고 형상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들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자기 앞만 볼 수 있는 경주마처럼 좁은 시야 속에 갇혀 있었다. 눈을 감고 향긋한 꽃내음에 나를 맡기자 이리도 아름다운 향기가 둘러싼다. 상상 속에서 나는 꽃밭에 드러누워 내 마음도 쉴 수 있도록 내려놓았다.
2019년, 1월 29일. 입춘이 오려면 아직 6일이나 남은 겨울의 끝자락. 그리도 어둡고 춥고 외롭던 겨울이 이 아름다운 향에 뒤덮여 곧 끝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건 단지 향에 취해서가 아니라 이제 봄이 올 때가 되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