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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Oct 20. 2020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사랑을 하고 싶었지만 아픔까지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기에 '다시 사랑을 한다면...'이라는 가정이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 사랑을 한다면,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해야 할까 아니면 덜 표현해야 할까'

'다시 사랑을 한다면, 어떻게 상대방을 더 이해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을 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상대방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각의 물레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가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나의 과실로 이혼이 성립되었다는 관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는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니라 두 사람의 노력으로 쌓을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다시 반복되는 자기 비하는 지난 관계가 수많은 잘못과 착오로 이루어졌음을 말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앞서 준비해야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사랑할지에 대한 방법을 찾기보다 '우리'가 함께 사랑을 쌓아가는 방법을 찾는 게 순서였다. 그에 앞서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부분이 분명하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 속에서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되리라고 판단했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지키고 싶은 세 가지. 내가 원하는 걸 알아야 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일반적으로 결정을 위해 고려하는 조항은 세 가지 조건이다. 셋 중 둘만 달성해도 과반수라는 결과를 토대로 긍정적으로 검토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도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타협을 한다는 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희생을 요구하는 것임을 경험으로 배운 터였다.


'다시 사랑을 한다면, 대화를 할 거야. 서로에게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겉치레가 아니라 확실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의 이해를 구하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만날 거야.'

'다시 사랑을 한다면, 사소한 것까지 상의하고 같이 결정할 거야.'

'다시 사랑을 한다면, 사랑을 꿈꾸는 사람과 마음껏 사랑에 빠질 거야.'


T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한 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이상적인 관계를 가지기 위한 세 가지 조건으로 대화가 연결되었다. T에게 상대방에게 바라는 목록이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 주제에 대해 편하게 말을 이어나갈 수 있음이 이미 첫 번째 조건인 의사소통을 충족하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나의 바람대로 우리의 세 가지 조건은 완벽하게 일치했다.



어느덧 T를 만난 지 일 년 반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항상 대화를 한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은 단순히 식사를 하는 시간이 아니다.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는 나에게 일상이란 한결같음에도 불구하고 T는 언제나 나에게 물어본다.

"오늘은 뭐 했어? 책을 읽었구나. 어떤 책을 읽었어?"  

이런 질문들은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 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거구나.'라는 생각에서 ‘사랑받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으로 바뀐다.


서로의 하루에 대해서 세세히 이야기를 하고 종종 농담을 하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때로는 이런저런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 알아가고  이해해 간다. 가끔은 소소한 주제로 시작된 대화가 논쟁으로 커지기도 하지만 그 시간도 상대방을 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기에 T와 함께 하는 저녁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T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은 한 시간으로 턱도 없이 부족하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저녁을 먹고 나서도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모두가 각자만의 세 가지 조건이 있다. 누군가에는 권력이나 부가 첫 번째로 간주될 수 있고, 누군가에는 사랑의 표현이나 함께 하는 시간이 첫 번째가 될 수도 있다. 나와 같은 조건이 우선순위였던 T를 만난 것에 다시 감사하며, 오늘 밤에는 우리가 첫 데이트 당시에는 순위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순위에 들을지도 모르는 다른 세 가지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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