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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Oct 20. 2020

경계와 선 넘기

행복하게 연애하는 방법에 흔히 언급되는 말이 있다.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둘 사이에 빈 공간을 유지하기’. 이 조언은 T를 만나기 전까지 가졌던 관계에서 내가 지키려고 노력했던 부분 중 하나였다.


공간을 가진다는 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욕구를 채움과 동시에 그 욕망을 존중하는 길이라고 이해했다. 또한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연인에게 이야기를 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으로 기대는 것은 뒤틀린 사랑의 방식이라고 여겼다. 현명하게 사랑하는 법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관계에 ‘성숙한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하지만 공간을 지켜주고 서로를 존중한다고 여겼던 행동은 오히려 불편한 대화를 피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거북함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결국 곪아 터진 관계를 겪어보니, 각자의 공간을 가지지 않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T를 만난 후, 내가 세운 경계가 무너졌다.


노을이 지는 하늘과 세일보트는 바다 위에서 겹치며 또 다른 절경을 자아냈다. 선명하게 선을 긋는다고 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T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말해주고 싶어 했다. 그는 일상뿐 아니라 감정의 변화에 대해서도 조근조근 이야기했다. 마치 내가 T 본인이 된 거 마냥 그의 하루를 엄청난 속도로 훑어보는 느낌이었다. T와 만들고 싶은 관계가 내가 알고 싶었던 영역이었지만 이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전화기가 전보다 더 바삐 울리고, 날마다 만나 대화로 시간을 보낼수록 내가 굳건히 지키던 나만의 공간이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공간이 모호해지고 어느새 서로의 삶에 온전히 물들게 되자 T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의 역할 모두를 충당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T를 만나기 전에는 연인과 친구 사이에서의 역할과 대화 주제는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연인에게 허용하지 않은 공간에는 친구를 초대했다. 연인을 만나고 싶은 만큼 친구를 만나는 시간도 필수였다. 하지만 한 사람이 연인과 친구의 배역을 모두 채우고 나니,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보다 더 많은 걸 공유하고 더욱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T는 연인 혹은 친구, 둘 중 하나만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소울 메이트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나의 소울 메이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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