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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닭 Sep 11. 2018

내 시선, 한국소설

무정 - 이광수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누가 나에게 고등학생 이후로 고전부터 근대 소설까지 하나라도 제대로 읽어본 적 있어? 라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시험을 위해 교과서에 나온 것만 읽었고 그마저도 선생님 말씀따라 의미와 의도를 하나하나 해석하느라 어려웠다. 이번에 대학교 과제를 하기 위해 가볍게 읽어보니 그 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책을 그대로 느끼는 것. 이것만 달라졌을 뿐인데 한국 소설이 좋아졌다. ‘이전시대’라는 단어에 편견을 가진 어려운 소설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나와도 무관한 한 사람의 이야기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됐다. 작가, 소설 전반적인 부분, 주요 등장인물에 대해 하나씩 풀어나갈 것이다.


  이광수 작가는 1915년 일본에서 철학과를 수학했다. 공부를 하면서 전통적 윤리에 반대한 자유결혼과 근대적 자아가 각성 되었다. 1937년 독립운동 단체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였다. 풀려난 후로는 친일활동을 해왔다. 창씨를 개명하고 친일문학을 작성하는 등 활발히 활동 했다. 일제 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폭넓게 창작활동을 하였으며 그 시대 최고의 선구적인 지식인이자 작가로 불리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개척단계에 있다 보면 그 분야에 대해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무언가를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급격하게 신뢰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실력은 금방 깨지기 마련이다. 이광수 작가가 일제 강점기 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먼저 생각해내고 그 시대의 문제점을 깨우치고 글을 썼다는 점은 정말 대단하다. 지금 시대에서 읽어봐도 전혀 옛 소설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오히려 비슷한 상황도 꽤나 있는 것 같다. 그의 소설은 현실적인 시각을 잘 반영하여 꾸미지 않은 문체로 썼지만 끝은 다소 몽상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 이유가 그도 그 시대의 사고방식이 고리타분하고 낡다는 것을 깨닫고 선구적인 사고방식을 쫓았지만 그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 확신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


  사실 어쩔 수 없기는 하다. 모두가 ‘네’라고 외칠 때 혼자 ‘아니오’를 외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굳은 결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설득을 잘해서 ‘아니오’를 밀고 나가다가 자칫 잘못하면 책임은 온전히 그에게로 가 버린다. 또한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잘 살지 못해 현실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보면 초기에는 잘못된 것을 바꿔 보겠다는 강한 마음과 의지가 있어도 끝까지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다. 또한, 무언가가 바뀌려면 시간이 다소 필요한데 그의 소설은 그 시간까지는 못 간 것 같다. 그래서 끝부분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작가가 바라는 희망으로 끝을 내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다. 계몽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완전하지 않은 것. 무언가가 정말로 단시간에 바뀌고 그의 계몽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면 그는 단순히 소설가가 아닌 위대한 위인으로 대접해드려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까지 가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가 가진 불안정한 마음을 잘 보여준 것 같다. 그의 시대와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 현실적인 소설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중요한 역할은 공감을 잘 못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면을 여과 없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다가 도저히 못 읽고 마음이 저릴 정도로 말이다. 만일 나였어도 그 시대에서 아무리 계몽을 외쳐 봐도 모두가 모르고 있는데 그 의지를 핍박 속에서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인 이형식이라는 인물도 작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형식은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영어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형식은 스스로 깨어있는 사람이라 지칭하지만 정작 본인도 말을 하면서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영채와 선형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말은 기가 막히게 잘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소설 속에서 영채와 선형 사이에서 누구와 결혼 할지 저울 재듯 재다가 후에는 선형을 선택하게 된다. 사실 이형식이라는 인물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디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초반에는 감정에 빠져들어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현실을 깨닫고 나서야 정신 차리게 된다. 하지만 이형식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소극적인 면이 있었다. 영채와 선형을 누구보다 걱정을 많이 해서 찾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적극성을 보이지만 거기까지다. 그 이상으로 문턱에 막히면 포기하고 돌아서버린다.


  김선형이라는 인물은 목사의 딸로 부잣집에서 살고 있다. 보통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해봐야 자신에 대해 잘 알 수 있기 마련인데 그녀는 고생이란 것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선형은 선형에 대해 잘 모른다. 형식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것인지, 정말로 미국으로 가고 싶은 건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고민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래도 심성은 착해서 형식이 영채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것과 결혼하고서도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형식과 결혼을 이어간다. 김선형은 정말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난 사람의 모습인 것 같다. 아무것도 몰라도 충분히 현명하게 판단을 할 수 있는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몰라 형식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다소 강한 것 같다. 그래도 형식, 영채, 우선, 병욱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보기 좋았다.


  박영채는 원래 부잣집 딸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인 김장로의 봉사생활로 집 안의 가세가 기울어진다. 아버지와 오빠를 위해 어린 나이에 사회로 나왔으며 이 때부터 온갖 고생을 하면서 지낸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와 오빠는 그녀를 알아주지 못하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기생으로 7~8년 살면서 뜻하지 않게 정절을 잃게 되어 죽을 결심을 한다. 하지만 죽으러 평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김영욱을 만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이다. 김장로도 계몽적인 인물을 길러내기 위해 집 안 재산을 다 쏟아 부을 정도로 열심히였는데 김형식 하나 나오고 집 안이 망했다. 옳고 깨어있는 생각을 가진 길을 택했지만 그 끝은 가난이였다. 영채도 스스로가 아닌 가족을 위해 택한 길이였지만 단지 기생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외면 당하고 아무 준비 없이 나온 사회에서도 그녀는 힘듦을 많이 겪었다. 그와중에 순수했던 그녀의 모습이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녀를 보면서 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인생을 사는 것에 적극적이였기에 어떤 일을 해도 잘해낼 것이라 생각한다.


  김병욱은 이 시대에서 가장 깨어있는 신여성이다. 그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조선 여성들보다 앞서 나가 있었다. 머리도 짧게 자르고 그녀가 하고 싶은 공부는 여자라는 시선을 뿌리치고 바로 실행으로 옮긴다. 그녀가 선구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 유학도 있지만 가정환경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오빠도 유학생활을 해서 그녀를 여자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막지 않는다. 다른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그녀의 부모도 그녀가 무엇을 하든 크게 간섭하지 않고 끼어들지 않는다. 어릴 때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더라면 그녀는 지금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우선은 글을 쓰고 있는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공부도 많이 하고 하는 일에서도 명예를 많이 얻었지만 아이 같은 모습이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이끄는 본능대로 바로 행동을 하기에 늘 기생과 어울려 놀기 바쁘다. 하지만, 그는 이형식과 가장 친한 친구사이이다. 이우선보다 지혜가 더 깊은 이형식의 말을 계속 듣고 영채와 선영을 만난 후로 그는 완전히 바뀌게 된다. 글을 집필함으로써 국민들에게 깨어있는 사고방식을 갖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살짝 답답한 인물이지만 오히려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이 많이 있어서 그렇게 나쁜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그 시대 다른 남성들처럼 평범했던 것 같다. 그는 적극적이기에 금방 생각이 깨어지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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