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감옥을 빠져나오며
카즈베기 도착한 지 3일째 날씨가 좋아졌다. 눈으로 덮인 산은 아름다웠다. 얼른 준비하고 밖으로 나갔다. 숙소 문을 열자 비현실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카즈베기 마을 전부가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있다. 말로 어떻게 다 표현이 가능할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아름답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혼자 감탄에 젖어 열심히 셀카를 찍었다.
그러던 중에 한국인 두 분을 만났다. 이틀 동안 방에 갇혀있다가 오늘 막 나오셨다고 한다. 폭설 감옥에 갇혀 있다가 막 출소한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인지 더 반가웠다. 얘기를 나누다가 목적지가 같아서 같이 갔다.
오르는 길마다 예뻤다. 내 눈높이만큼 눈이 쌓여있었다. 솔직히 혼자 왔었으면 무서웠을 것 같다. 좋은 분들을 만나서 운이 좋았다. 등산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는 약속을 남기고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에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갔다. 거기에는 먼저 와 계신 다른 한국인 한 분이 계셨다. 그들과 여행 얘기, 갇힌 얘기, 생활 얘기들을 했다. 어렵게 와서 고생하셔서 그런지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다.
특히 한국에서 휴가 내고 오신 분 이야기가 기가 막혔다. 여름 휴가 때 쉬지 않고 일하다가 겨우 휴가를 내고 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인천에서 비행기가 연착하고, 경유지인 카자흐스탄에서 또 연착해서 숙소에서 하루 묵고 카즈베기로 오신 것이다. 미니 버스 타고 올 때 눈이 많이 내려서 도착하자마자 도로 폐쇄. 산도 못가고 방에만 계셨다고 한다. 여행할 때마다 사건이 생겨 뭐가 있는 것 같다고 하신다. 그래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시고 계셔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다 같이 차차라는 독주를 계속 마셨다. 주인아주머니가 또 마시냐며 고개를 흔드신다. 눈이 계속 오면 혼자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한국분들 만나면서 안심이 됐나 보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은 이상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