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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닭 Jan 12. 2019

폭설로 갇히다

침대와 한 몸이 된 날들

  카즈베기에서는 가장 저렴한 방을 썼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가는 길 자체가 험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데다 눈이 얼어서 오르막길이 미끄러웠다. 숙소로 가는데 계속 넘어져서 눈물이 났다. 겨우 도착해서 아주머니를 만나고 안도했다. 방 안내를 받고 화장실을 쓰려는데 너무 춥고 좁다. 다행히도 숙소 2층 전체를 나 혼자 쓴다. 비수기이긴 한가보다. 덕분에 나가고 싶을 때 편하게 나가고 방에서 이어폰 안 끼고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아침에는 주인아주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부엌은 1층에 있어서 내려가기가 귀찮다. 겨우 내려갔더니 한 상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저렴하고 맛있었다. 아주머니는 영어를 조금만 할 줄 아셔서 대화는 잘되지 않았지만, 정성은 굳이 말 안 해도 마음으로 다 느껴진다. 정말 감사했다.

  밥 먹고 방으로 올라와서 조금만 쉬고 나가야지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눈 떠보니 눈이 펑펑 내려서 산이 아예 안 보였다. 마침 하루는 방에서 쉬고 싶었던지라 종일 쉬었다.

  다음 날 역시 눈이 많이 내렸다. 이틀 내내 누워서 예능 프로그램 돌려보다가, 와인 마시다가, 경치보다가 자는 것을 반복했다. 저녁까지 그렇게 있자니 지루해졌다. 마침 배도 고프기에 밥 먹으러 나갔다. 나가는 문을 열자마자 눈이 소복이 쌓였다. 간신히 눈을 파헤치며 밖으로 나갔다. 눈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눈이 아프고 눈 뜨는 게 어려웠다. 겨우겨우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내려온 김에 마트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사고 다시 올라왔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추워서 세수만 겨우 했고 폭설 내린 날부터는 물이 아예 안 나왔다. 기내용 물티슈로 세수를 하고 마시는 물로 손을 씻었다. 드라이 샴푸를 가져와서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거지처럼 지저분하게 보였을 것이다.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수도가 끊긴 적은 없어서 많이 당황했다. 그래도 쉽게 겪는 일은 아닌지라 나름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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