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내 경계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 빙수집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같이 잠깐 일했던 분이 저 말을 했던걸로 기억한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내 선을 분명히 한다 이런 내용이였던 것 같다. 그 후로 저 단어가 오랜시간 머물다 갔는데 요즘 들어 다시 저 단어가 생각난다.
내 경계선은 희미하게 있다. 내 중심이 강해도 타인을 강박적으로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게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좋은 사람, 예의바른 사람, 착한 사람, 피해주지 않는 사람 같은 이미지로 맞추려고 했다. 결핍이 이유가 될 수 있고 특히 어릴 때부터 영문도 모른채 날 대놓고 비난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반응을 신경썼던 것 같다. 그 시기 중에 나와 친하고 유일하게 친구의 엄마와 우리 엄마하고도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를 잃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좋고 모두가 좋으면 그만 나의 감정은 감추기에 바빴다. 내 모습도 상황에 따라 그럴듯하게 꾸며낸다. 남들이 보는 나는 대게 좋은 이미지일 것이다. 항상 상대에게 기준을 두니까. 스트레스, 화 등이 켜켜히 쌓였다.
내 생각을 말해야하는데 누군가가 생각한 것을 내 것인양 말하기도 한다. 누가 뭘 좋아한다 하면 나도 그걸 좋아해버린다. 누가 안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마저 내 것으로 가져온다. 안 좋아도 그저 좋다고만 말한다. 그게 편하고 날 드러내는게 어렵다. 단순한 영향을 넘어 내 내면은 타인이 많은 부분을 자리잡고 있다. 어디까지가 타인이고 나인지 구분이 안 가기도 한다. 깊은 내 마음속엔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것들이 모여 곪아있다. 말하다 갑자기 울먹이고 잘 지내다가도 슬픈 생각이 나는게 그것의 연장선일까.
어떤 것이 옳다는 확신, 내가 원하는 것을 알지만 상대와 내가 속한 무리가 극도로 중요했다. 문제는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나와 만나고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버린다. 그는 날 싫어하지 않겠지, 이런 모습을 보여도 이해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가까운 사람에게만큼은 그게 진짜 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들은 다 꾸며낸거라고. 내 울타리가 희미하니 다른 사람이 힘들게 만들어 놓은 곳에 들어가 좋다고 안 나오려고 한다. 내 울타리 안은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피곤하기만 하고 행복이 없으니까. 그도 타인인지라 좋은 감정 하나로 그의 한계를 넘어 날 이해해보려다가 질려서 떠났다. 여러 사람이 날 떠났고 잘못된 줄은 알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계속 그대로 지냈다. 똑같은 실수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이대로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내 자신이 희미해져서 결국 내가 나를 놓게 될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몰라서 그런줄 알았다. 분명하게 발견했지만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보는 것. 희미하더라도 놓지 않고 보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 할 것이다.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내 마음을 자세히 보고 하나하나 꾸준하게 기록 해야한다. 나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보일 때까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내 생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