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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Dec 18. 2016

꼼데가르송과 이상의 「날개」#1

문학과 패션을 해체하다.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왜소했다. 155㎝ 정도 키에 40kg도 안 돼 보이는 몸집, 젓가락처럼 마른 손가락, 눈썹을 민 창백한 얼굴. 일자로 자른 단발머리와 고양이처럼 쏘아보는 눈매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 Chosun Biz, 2011년 2월 19일 레이 가와쿠보에 대한 기사


처음 보는 이상의 보헤미안 타잎의 풍모風貌와 시니칼한 우슴과 기지機智 환발煥發한 스피-치에 나는 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수없었읍니다.

- 최재서, '문학과 지성' 인문사, 1938(원문 발췌)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1942~)의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에서 이상李箱(1910~1937,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의 작품 「날개」 읽을 수 있었다. 하트 로고의 귀여운 옷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꼼데가르송. 교과서, 책, 수능 문제에서 자주 보았던 작가 이상의 「날개」.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꼼데가르송은 하트 로고의 옷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파리 컬렉션에서 *안티 패션anti fashion 성격의 의상으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브랜드다. 이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레이 가와쿠보. 그녀의 옷들은 201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Metropolitan Museum에서 전시회를 개최 예정이다.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이 보이는 대목이다.  


*안티 패션Anti Fashion : 반 패션이란 것으로, 획일화된 기업 사이드에서의 강압적인 패션을 거부하는 태도를 말함. 개성적인 패션, 자유화된 패션 등으로도 불린다.



꼼데가르송이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지만, 우리 문학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상과의 맞닿은 부분이란 건 어찌 보면 개인적인 해석, 감상에 지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근본에 흐르는 해체주의 사상과 기존 체제에 대한 전복은 찾아보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교과서를 통해 한 번쯤을 봤을 법한 「날개」와 지나가면서 봤을 법한 '꼼데가르송'. 둘 다 잘 알고 계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하나씩 따라가면서, 「날개」를 통해 꼼데가르송의 패션 철학과 의식을 함께 그려보고자 한다.


목차

1. 이상의 「날개」는 어떤 작품? 

2. 꼼데가르송은 어떤 브랜드?

3. 이상과 꼼데가르송의 해체주의




1. 이상의 「날개」

#모던보이 #현대문학 #난해


1936년 9월, 이상은 조광朝光을 통해 단편소설 「날개」를 발표한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그의 이름과 작품.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그의 위대한 업적만큼이나 많다. 화려한 기교와 수사학의 대가, 시인이자 소설가, 위트와 패러독스의 작가, 광인이자 모던보이, 현대문학의 상징 등.


이상은 1910년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화가를 꿈꾸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한다.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일을 하면서 필명 '이상李箱'으로 작품을 연재한다. 폐결핵으로 건축기사를 그만둔 후 1933년 서울 종로에 다방 '제비'를 운영한다. 이후 문인 모임 '구인회'의 회원이 되며 작품을 기고. 1936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작품을 준비하다 1937년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다. 지병이었던 폐결핵은 더욱 악화되고 그 해 4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모던보이 이미지의 이상李箱

여기까지는 우리도 교과서에서 봐왔던 이상의 흔적. 


좋고 어려운 말들은 많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난해한 문학, 수능에서 나올까?,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되지? 라는 의문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다. 일단 어렵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에 나온 문학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문체와 과감함은 우리가 교과서 공부를 하면서도 흥미를 느꼈던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시와 소설 작품은 많지만 그중 가장 백미로 일컬어지는 「날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내놓았던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작가 본인인지, 가상의 극 중 인물인지 헷갈릴 정도로 본인 삶의 궤적과 비슷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작품의 첫 문장이다. 1900년대 초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의 우리에게도 임팩트가 센 도입이다. 발표 당시 본 작품이 실린 '조광' 잡지의 원문에서 굵은 선의 상자 안에 서두의 짤막한 머리글이다. 스토리와는 별개인 작가의 말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작가의 말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마치 극 중 인물이 아닌 본인 이야기인 양. 

 

다양한 기법들과 철학이 녹아들었지만 그건 꼼데가르송과 함께 엮기로 하고. 일단 스토리를 따라가 보려 한다. 오랜만에 다시 이상의 「날개」를 더듬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야기를 간략하게 적어본다면 이렇다.



일인칭 독백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나’는 바로 작가 이상 자신, 철저하게 고립된 자아와 내면의 고독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고 있다. 이야기 속 주인공 ‘나’는 아무런 의욕도 없이 골방 속에 틀어박혀 있는다. 아내의 화장품 냄새를 맡아보거나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면서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고 권태롭게 보낸다. 
많이 알고 있는 꼼데가르송의 하트 로고 옷과 이상 소설 전집



이런 남편이 자신의 매춘 행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 아내. 그녀는 그를 ‘볕 안 드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남편이 아픈 것을 빌미로 아스피린을 주는 척하며 수면제를 주기 시작한다. 아내가 하는 짓을 나무랄 뜻이 따로 없었지만, 아내의 방에서 수면제인 아달린을 발견한다.

그동안 먹었던 약이 아스피린이 아닌 아달린일 것이라 생각한 '나'는 집 밖을 나가 헤맨다. 아달린 6개를 한 번에 먹고 일주일이 지난다. 공상을 지속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매춘을 직접 목격한다. 도망치듯 나와 미쓰꼬시 백화점에서 아래를 바라보다가 나서며 ‘나’는 문득, 날개가 돋아 현실 세계를 박차고 단 한 번만이라도 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학교를 다니면서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내용은 기억나지만 쓰였던 기법이 난해했던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게 꼼데가르송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용적 측면보다 다면적 해석을 통해 패션과 함께 보려고 한다. 




2. 레이 가와쿠보의 '꼼데가르송'

#일본패션디자이너 #하트로고 #아방가르드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꼼데가르송을 들어봤을 것이다. 하트 로고. 우리가 가장 많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브랜드의 이미지다. 티셔츠, 가디건, 신발등 단품 위주로, 연인들의 커플룩으로도 많이 입곤 한다.


이름부터 살펴보자.

꼼데가르송. 이름이 뭔가 말랑말랑 하면서 기분이 좋다. 그 기분은 맞다. 꼼데가르송은 프랑스어로 ‘소년들 같은like boys’이라는 뜻으로, 뭔가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것 같아 보이지만 프랑스어의 어감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채택된 이름이었다. 역시 예술가적 발상의 네이밍이다. 브랜드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꼼데가르송의 간략한 브랜드 소개.

본능적 혁신자, 레이 가와쿠보가 고전적인 스타일링과 거리를 두며, 실험적 실루엣과 독특한 레이어링,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룩을 실현한 꼼 데 가르송.
가와쿠보는 미완성의 헴 라인, 너덜너덜한 솔기, 구겨진 옷감, 비대칭과 비조화, 입는 방법이 정해지지 않은 옷 등을 통해 혁신적인 스타일의 아름다움을 제시하며, 앞선 감각의 마니아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 삼성물산 패션부문 브랜드 소개
센 누나 스타일의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

현업에서 나는 꼼데가르송 담당이었지만... 브랜드에 대한 이해 없이 브랜드 소개 문구만 보면 무슨 옷인가 싶다. 패션의 말글은 일반 시선으로 보기에는 난해하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패션의 글들을 속칭 *보그체라 부르듯 말이다. 다시 소개 문구를 좀 더 주목해보자면, '실험적 실루엣', '독특한 레이어링', '비대칭과 비 조화'로 꼽을 수 있겠다. 이런 표현들은 컬렉션 옷들의 사진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보그Vogue체 : 패션산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문체로 영어나 프랑스어, 때로는 이탈리아어를 멋으로 집어넣고 수동형 문장으로 바꾼, 허세를 부추기는 무의미한 만연체 문장을 뜻한다.



꼼데가르송의 수장 레이 가와쿠보의 약력을 살펴보자.


1964년, 화학회사 아사히 카세이Asahi Kasei 광고부 입사

1967년, 스타일리스트로 독립

1973년,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설립

1975년, 도쿄 여성복 컬렉션 출품

1981년, 외국 디자이너 최초 프랑스 파리 컬렉션 초청 컬렉션

1993년, 프랑스 문화훈장 슈발리에장장Chevalier dans l‘ordre des Arts et Lettres 수여

2012년, 미국 패션협회CFDA 국제상


그녀의 시작은 독특하다. 일반 회사의 광고 관련 업무를 하다가 스타일리스트가 되었다. 광고 스타일링을 담당하다가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가 된 것이다. 그 이후의 행보는 고무적이다.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 자국에서 인정을 받고 프랑스 파리에서 컬렉션을 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트 로고의 옷과는 거리가 있지만, 브랜드 꼼데가르송을 이끈 그녀의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역시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는 플레이Play 라인, 하트 로고가 친숙하다.

올해 12월에 선보인 꼼데가르송 플레이 '홀리데이 이모지Holiday Emoji',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다운 가능하다.


하지만 꼼데가르송을 좀 더 들여다보자면 아방가르드Avant-garde란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흔히 사용하는 단어지만 설명하자면 모르겠는 아방가르드. 아방가르드는 프랑스어로 군대 중에서도 맨 앞에 서서 가는 '선발대'(Vanguard)를 일컫는 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에서 예술, 문화 혹은 정치에서 새로운 경향이나 운동을 선보인 작품이나 사람을 칭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안티 패션의 선두주자이며, 매 컬렉션마다 독창적인 소재와 전위적인 의상들을 선보인 레이 가와쿠보. 그녀의 컬렉션 의상 몇 가지만 살펴봐도 앞단의 설명이 이해가 될 것이다.


왼쪽부터 2012 F/W, 2014 S/S, 2017 S/S (출처 : Vogue.com)



2012 F/W, 2014 S/S 그리고 가장 최근의 2017 S/S 컬렉션 의상들이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애매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오뜨꾸뛰르haute couture 의상답게 일상생활에서는 입을 수 없는 옷들이다. 대부분 어려운 패션쇼가 그렇듯 이도 옷을 매개로 하는 예술 장르 중 하나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오뜨꾸뛰르haute couture : 고급의’라는 뜻의 ‘오트’와 ‘재봉’ 또는 ‘맞춤복’을 뜻하는 ‘쿠튀르’를 합친 말로 영어에서의 ‘하이패션high fashion’과 동의어. 특히 여성복 제작과 관련된다. 오뜨꾸뛰르 개념만 다뤄도 몇 꼭지 나오겠지만 일단 패스.


레이 가와쿠보의 꼼데가르송 디자인은 새로운 재단법, 볼륨 있는 의상,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의상으로 기존의 패션계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일반인들에게도 어려웠던 옷, 패션 산업 종사자에게도 역시 큰 파격이었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컬렉션 의상 외에 꼼데가르송은 작품성과 상품성의 조화가 훌륭했다. 이는 브랜드가 성장해 나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첫 컬렉션 이후 레이 가와쿠보는 창조 영역을 제한하지 않고, 여성복 외에 남성복 그리고 다양한 라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트 로고의 플레이 라인도 그중 하나. 현재까지 꼼데가르송 산하, 모두 13개의 레이블이 전개 중이다. 산하의 디자이너들은 브랜드 내에 자신의 라인을 구축하거나 독립하여 패션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사실도 주목할 점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꼼데가르송과 이상의 작품을 함께 보자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 '난해함'. 난해 함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추상적 표현으로 두 가지의 접점을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 지금부터 좀 더 디테일하게 꼼데가르송과 이상의 「날개」가 닿아있는 부분을 찾고자 한다.



3. 「날개」와 꼼데가르송의 해체주의

#해체주의 #위트 #패러독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蛔배 앓는 배 속으로 숨이면 머릿속이 의례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가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공可恐할 상식의 병이오.

-이상, 날개



소설은 거짓말이다.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말로 시작된다. 천재가 아닌 박제가 된 이후의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또한 프롤로그에 명시한 '위트와 패러독스'라는 표현은 소설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부부지만 부부의 모습이라곤 상상할 수 없는 삶. 이 말은 표현 그대로 패러독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은 소설 내의 장치들은 매춘과 부부생활, 아스피린과 아달린 등의 구체적 단어들로 표현된다.


이러한 프롤로그는 당시의 문단에서는 볼 수 없던 도입이자 시작이다. 이야기의 바깥에서 작가의 목소리와 작중 화자인 '나'의 목소리가 일정 부분 공유되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작가는 글을 쓰면서 이야기 속 주인공을 이끌어가기도 단순 묘사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도입부터 쉽지 않다. 좀 만 더 힘 내보자.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만 소설은 작가 '이상'의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프롤로그를 통해 작가 '이상'은 작품 속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허구와 현실. 이를 넘나드는 구술 기법을 통해 삶의 모순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온갖 병리적 현상과 타락으로 '흐느적흐느적'거리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를 메타적 글쓰기라 표현하는데, 어려운 개념이니 일단 패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날개」는 기존 문단의 정형화된 틀을 해체시켜 버린 것이다. 기존의 문단이라고 하면 전형적인 플롯, 이야기의 인과 관계가 정형화된 일반적인 글이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상은 작품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드는 것이 글쓰기인 만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과 관계를 내세우면서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희미하게, 앞서 이야기한 꼼데가르송이 보일 것이다. 기존의 패션의 표현과 규칙을 해체시키고 뒤틀어 버린 레이 가와쿠보의 철학과 비슷한 점이 말이다.


1982 F/W, 일부러 찢어지고 구멍을 낸 스웨터.


“For something to be beautiful it doesn't have to be pretty.”

"아름다운 어떤 것을 위해 매력적일 필요는 없다."

-레이 가와쿠보



파리에서의 첫 번째 컬렉션. 파브르 패션Pauvra Fashion(가난한 패션)이다.

레이 가와쿠보의 첫 파리 컬렉션은 '가난한 패션'이 주제였다. 이는 전통적인 미적 개념에 대한 반기이자,  '아름다움'을 추구해왔던 서양의 패션 미학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를 '추醜의 미학' 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추한 것의 아름다움이란 것이다. 모순적인 표현이다. 추한 건 그저 추한 것인데... 이를 아름다움이라 하다니. 기존의 패션 철학에 반反하는 안티 패션Anti Fashion의 시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옷들은 블랙 컬러를 중심으로 온통 무채색을 사용. 낡고, 거칠고, 너덜너덜한 소재를 사용한 의상들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있고, 아무렇게 구겨지고 뒤틀려 있었다. 이러한 옷들로 인해 인체의 형태는 비대칭적이고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움과는 전혀 거리가 먼 얘기인 것이다.


이를 좀 더 주목하자면 패션을 패션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기존 패션계가 가지고 있던 패션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전복시킨 것이다.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마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 샘Fontaine과 같이 말이다. 아름다움 자체에 주목한다기보다 패션의 새로운 역사를 선도하며 이끌어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샘 (출처 : Pompidou Center)

옷의 다양한 형태와 공간감을 통해 옷의 구조를 실험했고, 소재의 다양성을 통해 옷의 상상력을 확장시켰다. 고무와 직물의 결합, 천연섬유와 인조섬유의 합성들을 통해 새로운 촉각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물론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다는 호평 일색은 아니었다. 독특한 실루엣에서 형태를 찾을 수 없다는 혹평도 있었으며, 어두운 컬러로 인해 장례식이나 독재자에 비하하는 저널리스트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분명했고, 패션계에서의 레이 가와쿠보의 이름은 회자될 수밖에 없었다. 1981년, 첫 컬렉션 이후 비대칭적이고 실험적인 그녀의 컬렉션은 계속되었다. 




이런 이 방이 가운데 장지로 말미암아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그것이 내 운명의 상징이었던 것을 누가 알랴?

- 이상, 날개



꼼데가르송이 보여준 패션의 해체주의적 요소들은 이상의 작품에서 보여준 문단의 파격과 기존 체제에 대한 해체와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단지 예술적 철학을 담은 의상만으로 지금의 꼼데가르송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넘나들며 아방가르드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까지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상의 작품과 맞닿아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둘을 함께 엮는 과정에서 점점 뚜렷해지는 지점들이 있었다. 이상과 꼼데가르송의 문학과 패션에 대한 철학과 기법들. 이는 그들의 도구이자 연장이다. 비슷한 연장으로 문학과 패션에서 그들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패션의 해체주의의 시작 꼼데가르송, 이상의 「날개」에서 보여준 해체주의.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뒤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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