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호 Jan 18. 2018

슈프림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반항_1

반항의 상징

반항의 상징



4발의 총알이 비틀즈 멤버 존 레논John Lennon의 등에 꽂힌다.

“남자는 들고 있던 총을 사뿐히 내려놨습니다. 또, 입고 있던 코트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는 코트 역시 바닥에 잘 개어 내려놨고요. 그가 꺼내 든 것은 책이었습니다.”
- 당시 다코다The Dakota 하우스 경비   


1980년 12월 8일 늦은 10시 50분, 뉴욕 맨해튼의 다코타 아파트 앞에서 38구경 리볼버 5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존 레논은 병원으로 이송 중에 숨을 거둔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태연히 책을 읽고 있는 마크 채프먼Mark David Chapman을 체포했다. 그가 읽고 있던 책은 J.D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의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1951년 출간된 《호밀밭의 파수꾼》은 출간되자마자 금서禁書로 여겨진다. 미국에서 출간된 도서 중 최초로 F로 시작되는 욕이 출연하고, 16세 주인공은 기성세대의 위선에 반발해 학교를 그만두고, 술과 담배를 하며 성매매를 시도하는 등의 비교육적 내용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소설로 평가되는 《호밀밭의 파수꾼》은 세상을 향해 억압된 자아의 목소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의 반항은 호소력을 갖는다. 책을 읽은 수많은 젊은이들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열광했고 콜필드는 그들에게 반항의 아이콘 역할을 했다.


패션에서도 반항의 아이콘 같은 브랜드가 있다. 바로 미국 스트릿 브랜드 슈프림Supreme이다.

2016년 2월 18일 오후 2시, 소호의 라파예트 스트리트에 있는 '슈프림' 옷 가게에서 21세 남성이 복면강도에게 피습을 당했다.   - NY중앙일보, 2016년 2월 19일 기사


범인은 21세 남성에게 슈프림에서 산 물건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이를 거부하자 범인은 오른쪽 뺨을 흉기로 그은 뒤 도망친다. 브랜드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욕심이 범죄로 이어졌다.


1994년, 뉴욕의 작은 매장에서 시작한 슈프림은 스트릿 패션계의 샤넬Chanel로 꼽힌다. 스트릿 패션Streetfashion은 기존의 패션계가 제시한 방식과 스타일에 저항하며, 트렌드와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패션을 의미한다. 메인이 아닌 서브Sub 컬처를 지향하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 중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브랜드는 바로 슈프림이다. 슈프림을 사랑하는 이들은 기존 패션계가 인정하는 옷 입기와 공식에 저항한다. 매니악Maniac한브랜드 고객의 특성은 신상품 출고일에 직접 목격할 수 있다.


<사진, 뉴욕 라파예트 슈프림 매장 행렬>


새로운 컬렉션이 출시될 때마다 슈프림 매장 앞은 진풍경을 이룬다. 라파예트 거리에 블럭을 아우르는 긴 줄이 생긴다. 발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마니아들의 행렬은 원시 공동사회 종교인 토테미즘Totemism 의식처럼 경건하다. 그들은 매장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음악을 틀어놓고 랩을 하고 춤을 추며 신상(신상품의 줄임말)을 영접한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골목을 쏘다니는 거리의 아이들만의 브랜드는 물론 아니다. 2017년 1월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2017년 1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2017 F/W 컬렉션에서 슈프림과의 콜라보레이션의상과 가방, 소품을 선보였다. 루이비통은 스트릿 패션의 아이콘 슈프림에게 협력의 손을 내밀었고, 협업으로 만든 아이템으로 파리 패션위크 컬렉션 런웨이를 꾸몄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슈프림이 침체된 루이비통을 살려 놓았다’고 하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사진, 루이비통과 슈프림의 콜라보레이션>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는 기성세대의 가치에 반항하는 캐릭터이자 아이콘이다. 평범함과 기존 가치를 거부하는 콜필드는 슈프림 옷을 입고 뒷골목에서 보드를 타는 슈프림 충성 고객과 닮아 있다. 콜필드가 살았던 시대에 슈프림이 있었다면, 콜필드는 슈프림을 입지 않았을까.


시대를 가로질렀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던진 반항 정신은 브랜드 슈프림의 이야기에 얹힌다.



문화의 옷


정말로 이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 《호밀밭의 파수꾼》, 1장, 민음사


《호밀밭의 파수꾼》은 펜실베이니아의 사립 펜시 고등학교에 다녔던 16세 홀든 콜필드가 2박 3일 동안 겪는 내용이다. 첫 문장부터 반항아의 냄새를 풍기며 등장한 주인공은 학교에서 빈번하게 사고를 치고,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아 학교에서 쫓겨난다.


홀든 콜필드는 물질적 풍요의 시대였던 1950년대에 기성세대의 가치와 문화에 저항하는 반反문화의 정신을 대표한다. 콜필드와 마찬가지로 주류에 편입되길 거부하며 스트릿 패션을 대표하는 슈프림은 철저히 서브 컬처를 대표한다. 그렇다면 슈프림은 어떻게 시작한 브랜드일까.


슈프림 창립자, 영국계 미국인 제임스 제비아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영국 서섹스Sussex로 건너가 성장한 제비아는 1983년 아버지를 따라 뉴욕으로 가게 된다. 1년 뒤 그는 뉴욕 소호Soho에 위치한 빈티지 옷 가게 파라슈트Parachute에서 5년 간직원으로 일을 했고, 이후 런던을 오가며 가져온 제품들을 뉴욕의 벼룩시장에서 팔며 돈을 모았다. 6년간 모은 자금으로 제비아는 1989년 뉴욕 스트릿 웨어 편집샵 유니언 뉴욕시티Union NYC를 오픈하게 된다. 이때 당시 스트릿 대표 브랜드 스투시Stussy 를 입점시켜 화제가 됐는데, 스투시 브랜드의 흥행과 더불어 매장의 인지도도 점점 높아졌다. 스투시의 창업자 션 스투시Shawn Stussy와 파트너십을 맺게 된 제비아는 1991년, 션 스투시의 제안으로 뉴욕에 스투시의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함께 오픈했고 이는 큰 성공을 거둔다. 제비아는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멤버로 일하며 자신이 스트릿 브랜드를 직접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을 갖는다.


"이봐, 그거 가게 이름으로 쿨한데! Hey, that’s a cool name for a store!"


1994년 4월 제임스 제비아는 1만 2천 달러(한화 약 1,500만 원)의 자금으로 슈프림 브랜드를 론칭하고, 뉴욕 소호 라파예트 거리에 슈프림 첫 번째 매장을 세웠다. 여자친구와 대화 중 우연히 나온 ‘최고’란 뜻의 슈프림을 그대로 브랜드명으로 사용한다. 슈프림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형용사로 상표 등록이 불가능했지만, 그저 맘에 든다는 이유로 브랜드명으로 삼는다. 브랜드가 유명세를 타고 인지도가 높아진 2013년에서야 브랜드명과 로고를 정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름의 탄생과 등록부터 보통의 패션 브랜드가 따르는 정석을 벗어났다.

제비아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들의 착장을 눈여겨봤다. 당시 뉴욕의 10대 후반, 20대 초반 스케이트 보더 대부분은 헬맷과 보호 장비를 갖추었지만, 보드 문화에 걸맞은 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 이 점에서 착안한 제비아는 보드와 힙합, 그래피티 문화의 영향을 받은 스케이트 보드 데크와 티셔츠, 모자 등을 제작해 판매했다.



아지트가 된 슈프림 매장


“이것 봐. 방 안에서 담배 피우지 마. 화장실에라도 가서 피우는 게 어때? 너야 어차피 여기를 나가면 그뿐이겠지만, 난 졸업할 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한다구.”
난 그의 말을 무시했다. 정말 그렇게 했다. 계속해서 뻐끔뻐끔 담배를 피웠다.
- 《호밀밭의 파수꾼》, 6장, 민음사


퇴학 처분을 받은 홀든 콜필드는 기숙사에서 금지된 담배를 피우며 마지막까지 비행한다. 공부하고 생활했던 학교의 체계와 기존 세대가 만든 규칙을 끝까지 거부했다. 학교를 떠나게 된 콜필드는 갈 곳 없이 뉴욕의 거리를 헤맨다.


콜필드가 살았던 시대 슈프림 매장이 있었다면, 콜필드는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슈프림 매장은 뒷골목에서 놀던 스케이트 보더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일탈의 아지트처럼 꾸며 놓는다. 보더들은 매장을 아지트처럼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잘 정리해 놓은 옷들을 흐트러뜨리는 순간 매장 직원으로부터 욕지거리가 날아들었다.


제비아는 스케이트 보더들이 백팩을 멘 채 스케이트를 타고 바로 매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했다. 매장 중앙에 움푹 파인 볼Bowl을 설치해 실내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한다. 다운타운의 스케이트 보더를 직원으로 채용했고, 보더 집단Crew을 초대해 매장에서 놀게 했다. 뒷골목에서 자라고 생활했던 직원은 매장 관리보다 노는 게 좋았고, 보더들이 즐기는 것은 허용했지만 자신의 일을 늘리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았다. “고객은 슈프림에 진열된 물건들을 볼 수는 있었지만 만질 수는 없었다.”란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과 매장 놀이 문화는 주목을 받았고 이를 통해 마니아층을 탄탄히 쌓아갔다.


매장은 늘 북적였다. ‘자연은 진공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는 반대로 슈프림은 ‘매장에 진공을 허용’했다. 그 결과, 매장의 진공(빈 공간)은 뉴욕의 보더들로 가득 찼다. 한바탕 그들만의 파티가 열리고, 맨해튼 소호에 위치한 슈프림 1호 매장은 어느새 보더들의 아지트이자 놀이터가 된다.  


<사진, 슈프림 매장 안의 볼>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놀이하는 인간’이란 뜻을 지닌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통해 인간의 본원적 특성은 사유와 노동이 아니라 놀이라 말했다. 즐거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활동을 통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비아는 지극히 호모 루덴스적인 보더의 특성을 꿰뚫어 봤다. 그는 스케이트 보더들이 재미를 위해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고, 슈프림이란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문화에 녹아들 수 있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힙hip 해 보이는 뒷골목 보더들은 슈프림 매장에서 놀았고, 슈프림 옷을 입었다.



속옷에 스티커를 붙이다


어쨌든 난 창녀가 모습을 나타내기만을 기다리면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얼굴이 예쁜 여자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일을 무사히 마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호밀밭의 파수꾼》, 13장, 민음사


매서운 추운 뉴욕 거리를 방황하고 호텔로 돌아온 콜필드는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성매매 제안을 받는다. 거짓말로 나이를 속이고 여자를 맞이하지만 몇 마디 대화만 나누고 방에서 보낸다. 체계에 불만을 느끼고 법률을 어기며 반항하고자 하지만 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제임스 제비아 또한 주류 패션에 불만을 가지고, 냉소적이었다. 슈프림도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처럼 10대스럽게 주류 문화를 공격하고, 자신을 홍보한다. 야한 걸 하고 싶었던 콜필드가 좋아했을 방식이다. 이 방식은 슈프림 로고 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이다.


<사진, 바바라 크루거 작품과 슈프림 로고>


빨간 박스의 사각 슈프림 로고는 슈프림의 상징이다. 이 심벌 로고는 1994년 브랜드 론칭 당시 만들어졌다. 어떤 제품이건 붙이기만 하면 값을 뛰게 만드는 신비한 이 로고는 미국 개념주의 예술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프로파간다(선전宣傳) 아트와 닮아 있다. 크루거는 기존 예술에 대한 비판과 사회 제도적 권력에 항거했던 아티스트로 단순한 이미지와 Futura Bold Oblique 폰트를 사용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제비아는 이 메시지와 표현 방법을 눈여겨본 것이다. 제비아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친구에게 보여주며 ‘이런 느낌으로 로고를 만들어줘.’라고 부탁했고, 지금의 유명한 빨간 박스의 슈프림 로고가 만들어졌다.


제대로 로고를 만든(베낀?) 슈프림은 로고 스티커를 제작해 주류 브랜드와 문화를 공격했다. 반항과 자유스러움, 일탈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의 브랜드 광고, 포스터, 기념물에 자신들이 만든 박스 로고 스티커를 마구잡이로 갖다 붙였다. 게릴라 마케팅 이슈는 이때 만들어졌다.


슈프림은 당시 인기 절정인 모델 케이트모스가 나온 캘빈 클라인Calvin Clain 속옷 광고에 자신의 스티커 로고를 노골적으로 갖다 붙였다. 조금은 선정적일 수 있는 속옷 광고 위에 선정성을 부각하는 특정 부위에 로고를 붙인 것이다. 결국 슈프림은 캘빈 클라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한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슈프림은 패션계에 회자된다. 주류 문화에 공격적이고 반항적 태도를 취한 슈프림의 방식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쿨cool함을 인정받았고, 단박에 스트릿 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사진, 케이트 모스 x 슈프림>


이슈 메이킹을 좋아하는 슈프림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홍보했고, 사골처럼 자신이 만들어낸 이슈를 다시 우려내기도 했다. 2004년, 슈프림은 브랜드 론칭 10주년을 기념하는 티셔츠를 찍어냈다. 이때 캘빈 클라인에게 고소를 당한 이미지를 끄집어낸다. ‘케이트 모스 사진 위 슈프림 로고 스티커를 붙였던 이미지’의 티셔츠를 출시한 것이다. 자신의 꼬리를 무는 그노시스파 신화 속의 뱀 우로보로스Ouroboros같은 이 상품 역시 마니아들의 소장욕을 불러일으키며 순식간에 완판 된다. 기념의 방식 또한 슈프림다웠다.


고소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2000년 슈프림은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패턴을 사용해 스케이트 보드 데크를 만들어 판다. 이를 발견한 루이비통은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한 슈프림을 고소해 판매는 중단된다. 이슈메이커 슈프림은 꾸준히 논란을 생성해 악동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한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7년, 루이비통의 파리 컬렉션에서 우리는 슈프림 로고가 새겨진 루이비통을 볼 수 있었다. 루이비통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던 슈프림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계속>


슈프림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반항_2편에 이어집니다.

이전 06화 알렉산더 맥퀸과 <데미안>의 구원자_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