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호 Jan 25. 2018

슈프림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반항_2

평범함을 거부하다

도움이 필요해


앤톨리니 선생은 굉장히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었다.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중략) 그러고는 오고 싶으면 지금 당장 와도 좋다고 했다.
- 《호밀밭의 파수꾼》, 23장, 민음사


방황하던 콜필드는 좋은 선생님이라 생각했던 앤톨리니 선생에게 전화를 건다. 콜필드는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진단해 줄 사람을 찾는다. 반항의 캐릭터지만 아직 어린 청소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슈프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슈메이킹을 하는 힙한 브랜드지만 아직 규모는 작고 대중의 인지는 적었다. 콜필드처럼 슈프림도 친구를 찾는다. 패션에서는 콜레보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패션계에서 협업, 한정판, 컬래버레이션이라는 표현이 도심의 맥도날드처럼 흔해진 요즘이지만, 슈프림이 기개를 떨치기 시작한 90년대와 2,000년대에는 흔치 않은 시도였다. 당시 슈프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렌든 바벤젠Brendon Babenzien은 기존 패션 브랜드의 천편일률적인 상품 전개 방식을 벗어나고자 했다. 슈프림은 유명 브랜드와 더 유명한 브랜드,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와 의외의 브랜드, 라이징 스타와 호감이 아닌 인물들을 자신의 브랜드에 녹이면서 컬래버레이션 작업했다. 종교와 종교의 만남으로 회자되는 루이비통과 슈프림의 역대급 협업 또한 슈프림 방식의 연장선이었다.


<사진, 슈프림 컬래버레이션 브랜드들>


첫 컬래버레이션은 1996년 스케이드 보드와 서핑 콘셉트 브랜드 반스Vans와의 협업이다. 일부 마니아들의 선호 브랜드였던 슈프림의 가능성을 높게 본 글로벌 브랜드 반스는 슈프림과 함께 신발을 만든다. 당시 뉴욕에 단 1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슈프림과의 대형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은 패션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이후 장기 협업 파트너십을 맺은 반스와 슈프림은 매년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반스와 슈프림의 컬래버레이션에 꼼데가르송CommeDes Garcons까지 합세한 3자 협업을 이루기도 했다.


첫 컬래버레이션의 흥행 이후 현재까지 나이키, 리바이스, 노스페이스, 팀버랜드, 클락스, 오클리, 뉴에라, 스톤 아일랜드, 닥터마틴 등의 같은 유명 브랜드와 협업을 하는 한편 명품 브랜드 톰 브라운, 꼼데가르송, 루이비통과 협업을 했고, 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 데미안 허스트, 칸예 웨스트 등과 협업을 진행했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는 슈프림의 컬래버레이션은 약 700여 건이 넘는다. 이 협업들은 대부분 이슈를 만들어내며 성공을 거둔다.


컬래버레이션 상품은 오직 400벌만이 생산된다. 때문에 상품은 대부분 완판 되고, 희소성으로 이익을 얻고자 하는 리셀러Reseller(상품을 웃돈을 받고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진 사탕 주위 개미처럼 달라붙는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구입한 리셀러들은 세컨드 마켓인 이베이e-bay에비싼 가격으로 판매 공지를 올린다.


슈프림은 이런 희소성의 논리를 영리하게 이용했다. 브랜드가 가진 유통 채널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을 포함한 4개국의 10개 매장과 온라인 샵뿐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매주 극소량 생산하는 특별한 아이템들은 사람들을 매장 앞에 긴 줄을 서게 했고, 온라인 매장에서 광클릭을  유도했다. 매주 일부 한정된 물량을 공개하는 드롭Drop 시스템 판매 방식은 슈프림만의 문화가 된다.



평범함을 거부하다


많은 사람들, 특히 이 병원에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이번 9월부터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인지를 연신 물어대고 있다. 정말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질문이 있을까? 실제로 해보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이다.
- 《호밀밭의 파수꾼》, 26장, 민음사


홀든 콜필드는 방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주류 사회에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반항과 일탈의 기질이 남아있다.


슈프림은 루이비통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주류 패션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대중의 관심을 받아 브랜드가 확장되며 주류의 브랜드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콜필드처럼 본질은 비주류와 스트릿의 악동의 모습이다.  


패션계에서 슈프림은 헤겔이 말한 정반합의 논리로 반反의편, 안티테제의 자리를 지킨다. 주류를 대표하는 수많은 유명 명품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합合을 만들어 패션계를 리딩 하지만 본질은 여전히 반골이다. 뉴욕 뒷골목 보더를 한 곳에 모았던 애초의 정신을 잊지 않고 패션 브랜드에서 만들지 않는 쓰잘데기 없는 한정 상품을 만들어 낸다.


<사진, 슈프림 한정 상품들>


벽돌, 지하철 카드, 소화기, 자전거 체인, 쌍절곤, 쇠지렛대, 하모니카, 야구 배트, 망치, 계산기, 국그릇 수저 세트, 재떨이, 런치 박스……’


나열한 물건은 패션 브랜드와 하등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슈프림에서 진행했던 한정판 굿즈Goods들이다. 무인양품과 같은 토털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브랜드 조차 만들지 않는 잡다한 상품을 만들어 냈다. 시즌마다 장난기 넘치는 일탈적인 굿즈를 출시한다.


뉴욕 철도청과 협력해 지하철에 벤딩 머신을 설치해 슈프림 지하철 카드를 판매하는가 하면, 용도를 알 수 없는 공사장 벽돌에 슈프림 로고를 새겨 30달러에 내놓는다. 아무도 구입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신비의 로고답게 슈프림이란 딱지만 붙으면 순식간에 완판 되고 리셀러들은 기본 네다섯 배, 심지어 수십 배의 가격을 붙여 이베이에 판매 공지를 올린다. 그저 힙한 브랜드의 상품이라고 아무 의식 없이 구입하는 사람들을 퍽보이fuccboi(유행하는 것만 골라 사는, 자신의 취향이 없는 소비자들을 뜻하는 슬랭)라 욕하지만, 슈프림을 둘러싼 종교와도 같은 소비는 멈추지 않는다.


슈프림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처럼 기존의 주류 패션 브랜드들이 하지 않는 장난과 놀이를 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기호 가치'라는 표현을 사용해 소비를 설명했다. 소비란 '기호 소비'라고 정의했는데, 우리가 슈프림을 소비하는 것은 상품이 지닌 본연의 가치가 아닌 상징으로써 기호적 효과를 구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슈프림은 돈에 집착하지 않는듯한 쿨cool한 태도로 굿즈를 만들었지만, 난데없는 굿즈는 브랜드를 더욱 핫hot하게 만들었다.


슈프림은 알 수 없다. 앞으로 어떤 브랜드와 협업할지, 어떤 특이한 굿즈를 만들어낼지 가늠할 수 없다. 콜필드의 방향을 알 수 없는 일탈을 닮은 슈프림의 행보는 늘 호기심의 대상이다. 루이비통과 협업 다음의 슈프림이 기대된다. 재기발랄한 새로운 아이템의 드롭을 기다려본다. 콜필드를 닮은 슈프림답게.



슈프림SUPREME


<사진, 제임스 제비아>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

창립: 1994년, 뉴욕

콘셉트: 스케이트 보드, 힙합, 그래피티 문화 기반의 스트릿 브랜드

매장 수: 10점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연매출 및 브랜드 운영 상황은 정책상 비공개



호밀밭의 파수꾼


<사진, 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1년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1919~2010, 미국)가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그는 맨해튼의 맥버니 중학교에 입학하나 성적 불량으로 퇴학당한다. 15세가 되던 해, 펜실베니아 웨인의 밸리 포지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이 학교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퇴학을 당하는 펜시 고등학교의 모델이 된다. 1937년 뉴욕대에 입학하나 중퇴하고, 어시너스 칼리지와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예창작 수업을 받았다.


1940년 첫 작품인 《젊은이들The youngfolks》을 출판하며 문단에 등장한 그는 32살이 되던 1951년, 그의 대표작인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발표한다. 작품은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극찬받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스토리 요약

16세 소년 홀든 콜필드가 2박 3일 동안 겪는 방황의 기록이다. 뉴욕 맨해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콜필드에게는 대기업 고문 변호사인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 시나리오 작가 형 D.B와 착한 여동생 피비, 그리고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남동생 앨리가 있다. 콜필드는 작가 인형 D.B를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재능을 돈과 바꾼 변절자로 생각하고, 착한 여동생 피비를 불의의 세상에서 지켜줘야 할 순수함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콜필드는 세 번째로 전학한 펜시 고등학교에서 또다시 제적당한다. 명문 사립학교의 교육제도와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반항하며 공부를 하지 않아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 며칠이나마 쉬기 위해 뉴욕의 호텔을 전전한다. 하지만 콜필드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외로워하며 방황한다. 친구를 찾고, 전화를 하고 이리저리 방황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다고 느낀다. 실망감을 느끼고 호텔로 돌아온 콜필드는 매춘부와 포주에게 사기를 당해 돈을 뺏기고 폭행까지 당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옛 학교 선생님의 댁.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뭔가 깨달음을 얻는 듯 하지만, 콜필드가 자고 있을 때 선생님은 야릇한 스킨십을 한다. 충격을 받은 콜필드는 집을 떠나 서부로 갈 결심을 하지만 여동생 피비는 따라가겠다고 떼쓴다. 결국 그는 피비를 이기지 못하고 센트럴파크로 향한다.


집에 돌아온 콜필드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치료를 받는 요양소에서 형 D.B에게 2박 3일 동안 생긴 이야기를 전달한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거에요.


이전 07화 슈프림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반항_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