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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Feb 01. 2018

JUST DO IT, 나이키와 <노인과 바다>_1

승리의 여신을 만나다

노인과 나이키


노인은 줄을 놓고 한쪽 발로 그것을 딛고 서서 작살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마지막 힘을 다 짜내어 고기 옆구리에 콱 꽂았다. 바로 가슴지느러미 뒷부분이었다. 그 부분이 노인의 가슴 높이만큼 물 위로 떠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뾰족한 쇠가 고기의 살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 《노인과 바다》, 문예출판사


84일째 고기를 낚지 못하던 늙은 어부 산티아고Santiago는 멕시코 만류灣流로 낚시를 하러 떠난다. 조각배를 타고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은 배보다 큰 5.5m 청새치를 낚게 된다. 노인은 청새치를 끌어올리기는커녕 청새치가 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틀 밤낮에 걸친 드잡이 끝에 물고기를 잡고 항구로 향한다. 하지만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덤벼드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낚은 고기를 지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싸울 도구 조차 없는 희망 없는 상황에서도 상어와 끝까지 맞선다.


‘Just do it’

 

《노인과 바다》의 상어와 사투 장면은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나이키Nike 광고가 떠오르게 한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 강인한 스포츠 정신을 연상시키는 소설은 나이키의 정신과 슬로건을 닮아 있다.


우리말로 ‘일단 해봐’, ‘그냥 해봐’, ‘그냥 한 번 해봐’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Just do it’은 1988년 공개된 나이키의 슬로건이다. 승리와 도전의 정신을 담은 브랜드 나이키는 나이와 성별, 인종을 떠나 모든 사람들이 변명과 포기 대신 실천을 요구하는 슬로건을 제시한다. 나이키의 슬로건은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가진 도전 정신으로 봐도 무방하다.


나이키 광고 대행사 위든 앤 케네디Wieden&Kennedy는 ‘Just do it’ 캠페인 영상을 매체에 발표했다. 80세 할아버지 월트 스택Walt Stack이 출연한 30초 분량의 영상은 이른 아침에 상의를 탈의하고 골든 게이트 다리 위에서 조깅을 즐기는 노인의 건강함과 유머러스함을 표현했다.


<사진, 나이키 Just do it 광고>


월트 스택은 달리며 말한다. "나는 매일 아침 17마일을 달린다. 사람들은 묻는다. 겨울에 추워서 이가 덜덜 떨릴 텐데 어떻게 하냐고. 나는 그냥 이를 락커에 두고 달린다고 말한다.” 고 하며 치아가 없는 상태로 미소를 띤다. 마지막에 ‘Just do it’ 슬로건이 삽입된다. 고령의 나이에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나이키 광고는 산티아고가 망망대해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과 닮아있다.


‘Just doit’ 캠페인은 매 시즌 다양한 버전으로 진행됐고, 캠페인이 진행된 10년 동안 나이키의 미국 내 스포츠 신발 산업 점유율은 18%에서 43%로 신장했다. 더불어 글로벌 매출은 8억 7천 달러(약 9,000억)에서 92억 달러(약 10조)까지 성장했다.


《노인과 바다》와 나이키는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과 의지를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와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의 만남이다.



트랙 밖의 도전


“난 할아버지와 함께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어요. 돈을 좀 벌었거든요.”
노인은 지금까지 소년에게 고기잡이를 가르쳐왔다. 그래서 소년은 노인을 무척 따랐다.
- 《노인과 바다》, 문예출판사


늙은 어부 산티아고와 소년 마놀린Manolin은 멘토와 멘티,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산티아고는 삶의 터전인 바다에서 낚시하는 법과 자연의 거대한 섭리 속에서도 인간은 패배할 수 없다는 강인한 긍정의 의식을 소년에게 가르쳐준다.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인물의 관계처럼 나이키 창립자 오리건 대학교University of Oregon 육상 ‘코치’ 빌 바워만BillBowerman과 육상 ‘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의 관계에서 나이키 탄생 스토리는 시작한다.


<사진, 나이키 창립자 빌 바워만과 필 나이트>


나이키 창립자 빌 바워만과 필 나이트는 미국 오리건 대학The University of Oregon 육상팀 코치과 소속팀 선수로 인연을 맺는다. 빌 바워만은 오리건 대학 육상 선수들이 더 나은 기록을 낼 수 있게 하는 러닝화 개선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기존의 스포츠 웨어 회사들은 바워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바워만은 운동화를 직접 개발하는 것을 구상한다.


같은 기간 동안 중거리 육상선수였던 필 나이트는 오리건 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 경영대학원Stanford Graduate School ofBusiness에 진학한다. 그는 저렴하면서도 기능이 우수한 일본 러닝화가 미국 시장을 점령한 아디다스와 같은 독일 회사의 아성을 꺾고 미국 운동화 시장을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며, 스포츠웨어 시장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한다.


학위를 마치고 일본 여행을 하던 필 나이트는 논문에 언급했던 운동화 회사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를 무작정 찾아간다. 혈혈단신으로 오니츠카 타이거 본사를 찾아가 브랜드의 미국 수출권을 협상한다. 당시 제대로 설립한 회사도 없었지만, 회의 석상에서 ‘블루리본Blue Ribbon’이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회사를 만들어 미국 내 독점 판매권을 획득한다.


샘플이 실린 화물을 받은 나이트는 두 켤레의 운동화를 육상 코치였던 빌 바워만에게 보냈다. 운동화 개발과 제작에 관심이 많던 바워만은 오니츠카 타이거의 미국 내 성공 가능성을 알아봤고, 필 나이트와 동업을 추진하게 된다. 빌 바워만과 필 나이트는 각각 500달러씩 투자해 1964년 나이키의 전신이자, 협상 회의에서 가상으로 존재했던 블루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를 설립하게 된다.


그들은 가장 먼저 오니츠카 타이거 운동화 300켤레를 주문했다. 회계 법인에서 일하던 필 나이트는 집 지하실과 자동차 트렁크에 운동화를 쌓아두고 저녁과 주말에 육상 선수와 코치들을 직접 찾아가 운동화를 판매했다. 동시에 빌 바워만은 운동화의 기능성을 높이기 위해 오니츠카 타이거 운동화를 해부해 분석했고, 자신이 디자인한 운동화를 오리건 대학 육상 선수들에게 신겨 시험해본다.


<사진, 블루 리본 스포츠의 첫 번째 매장>


1천 달러의 자본으로 시작한 블루 리본 스포츠는 설립 첫 해 약 8천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각자 생업과 병행했던 그들의 업무를 덜기 위해 1965년에 스탠퍼드 대학원 동기이자 육상 선수였던 제프 존슨Jeff Johnson을 첫 직원으로 고용한다. 그는 블루 리본 스포츠의 마케팅, 홍보, 유통 등 회사 전반의 업무를 담당했고,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Santa Monica에 블루 리본 스포츠 1호 매장 오픈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듬해 웰즐리 지역에 두 번째 매장을 열게 됐고 블루 리본 스포츠는 미국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승리의 여신과 스우시Swoosh


노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열 번이라도 외겠습니다. 만일 잡기만 한다면, 코브레 성당의 성모님들께 참배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건 진정입니다.”
노인은 기계적으로 기도문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 《노인과 바다》, 문예출판사


산티아고의 낚싯대에 거대한 청새치가 걸린다. 낚싯줄을 끌어올릴 수 없는 노인은 청새치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줄을 잡고 기다린다. 낚싯줄에 눌려 고통스러운 노인은 믿고 있는 종교가 없었지만, 고난의 순간 자신을 도와줄 신을 떠올리며 도움을 요청한다. 기도로 육체적 고통이 지워지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지며 청새치와의 사투를 포기하지 않게 된다.


《노인과 바다》 속 노인은 위기의 순간 신을 찾고 정서적 구원을 받는다. “나에게 신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말하지만 노인은 주기도문을 암송한다. 노인이 역경의 순간 신을 찾듯 블루 리본 스포츠도 경영의 변곡점이 다가오는 순간 신(여신)을 찾는다. 그 신은 승리의 여신 니케Nike다.


1971년, 블루 리본 스포츠의 직원 제프 존슨은 어느 날 꿈을 꾼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그리스 여신 니케에 대한 꿈이었다. 니케는 티탄Titan 신족인 팔라스Pallas와 저승에 흐르고 있는 강의 여신 스튁스Styx 사이에 태어난 여신으로 등에 큰 날개가 있고, 종려나무 가지와 방패를 가진 모습을 하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43.195Km를 달린 그리스 병사가 기도드린 대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연히 제프 존슨의 꿈에 니케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존슨은 스포츠 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승리의 여신에 대해 주주들에게 설명한다.


블루 리본 스포츠는 오니츠카 타이거 운동화를 미국 내 독점 판매하며 성장했는데, 오니츠카 타이거에서 미국 공급사를 확대하며 블루 리본 스포츠에 공급하는 운동화를 물량을 줄이려 했다. 블루 리본 스포츠는 어쩔 수 없이 자사에서 직접 운동화 개발을 해 제품을 만들 것을 기획한다.


필 나이트는 직접 만든 운동화에 팰콘Falcon(매), 디멘션 식스DimensionSix(6 차원) 등의 이름을 붙일 것을 고민했는데, 제프 존슨의 꿈에 나온 여신 니케Nike까지 네이밍 후보에 오르게 된다. 멕시코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기 바로 직전까지 브랜드 명을 고민한 나이트는 결국 나이키(니케의 미국식 발음)란 이름을 택한다. 그리하여 1971년, 블루 리본 스포츠에서 만든 최초의 운동화는 나이키란 이름을 갖게 되고, 1976년에는 공식적인 회사명으로 사용하게 된다.


<사진, 나이키 로고 스우시>


승리의 여신 니케는 등에 날개를 갖고 있다. 필 나이트는 포틀랜드 주립대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에게 니케의 영혼과 날개를 떠올릴 수 있는,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동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로고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데이비슨은 니케의 날개를 옆에서 본모습을 형상화해 스우시Swoosh(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로고를 만들었고, 이에 대한 보수로 35달러를 받는다. 2017년 기준, 약 170억 달러(약 19조)의 가치를 지닌 나이키 브랜드 로고의 탄생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이는 승리의 여신이 나이키를 보우한 덕분일 것이다.


<계속>


JUST DO IT, 나이키와 <노인과 바다>_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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