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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Jan 15. 2018

문장에서 옷을 꺼내다

<문장에서 꺼낸 옷> 들어가며

소설이란 어떤 철학을 여러 가지 이미지들로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
좋은 소설에는 철학이 송두리째 이미지들로 변해 있다.
- 알베르 카뮈, 사르트르의 <구토>에 대한 서평

 

소설 속에는 다양한 군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인물이 아닌 동물, 사물일 때도 있지만. 우리가 읽는 주류 문학작품 속 주인공은 역시 사람이다. 카뮈의 말마따나 작품 속 배경, 시간, 등장인물은 작가의 철학이 송두리째 반영되어 있다. 그중 등장인물은 작가의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도구이자 뮤즈다. 우리는 소설을 보며 주인공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좇는다. 이야기의 중심은 거기에 있다.

 

문득, 소설을 읽다 등장인물이 입은 옷이 궁금했다. 책을 덮고 나면 주인공의 굵직한 행적과 대사들이 머릿속에 희미하게 흔적이 남지만, 무슨 옷을 입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왤까?


사람들은 <설국>의 배경인 일본 니가타를 여행지로 찾아가기도 하고,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라는 문장을 옮겨 적어보기도 하고,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과 팔씨름하던 검둥이가 마셨던 ‘럼주’를 마셔보기도 한다.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재즈 리스트를 따라 듣기도 한다. 작품과 작가가 언급하는 다양한 표상들은 어떻게든 일상에서 녹아드는데, 옷은 어떻게 독자들에게 기억되는가 궁금했다. (옷을 업으로 하는 내 집착 아닌 집착일 수도 있다.) 책을 좋아하는 일부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대답뿐이었다.

 

90:10.

독자의 삶 90, 글 쓰는 삶 10 사이에서, 9할이 독자인 나는 문장 속 빛나는 등장인물의 옷을 끄집어내어 글을 쓰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러스트화, 또는 영화화하며 옷을 끄집어내긴 했지만, 독서 리스트에서 어떤 책에 어떤 옷이 있었다… 라는 목록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지 않을까. 좋아하는 작품 속 등장인물이 입었던 옷, 그 옷은 어떤 옷인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왜 입었는지, 어떤 디테일을 가졌는지 등을 짚어가는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별거 아니지만 소설을 읽는 마이크로 방법론 중 하나로 여기면 좋을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무인양품에서 구입한 코튼 100% 블록 체크무늬의 ‘파자마’를 입고 등받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타자기를 팡팡 때리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아홉 살 소년 브루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담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파자마와는 차원이 다른 나의 ‘늙음’과 ‘편안함’ 속 옷차림이다. 작품 속 독일 나치 장군의 아들 브루노는 철조망 건너편에 있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아이, 쉬미엘과 친구가 된다. ‘파자마’는 인도 사람들이 평상복으로 입는, 품이 널따란 바지를 일컫는 말이었다. 유럽으로 건너가며 편안한 잠옷으로 의미가 통하게 되었는데, 철조망 건너편의 쉬미엘이 입은 줄무늬 파자마는 그저 수용소의 수감자를 상징하는 수단이다. 실은 수감복을 파자마라고 부르는 것은 아홉 살 브루노의 세계관을 오롯이 담은 표현이겠다.

 

암튼, 섬유유연제 잔뜩 머금은 파자마를 입은 나는 책 속 문장에서 옷을 꺼내려 한다. 내가 입은 옷들이, 어떤 작품에서 어떤 주인공이 입었는지를 좇아보려 한다. 이를 통해 책을 보는 재미를 1이라도 추가하는 계기가 되었음 한다.

 

문장 속, 옷에 밑줄 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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