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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Feb 04. 2018

<자기 앞의 생> 로자 아줌마의 기모노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꺼낸 옷

묵직하고 느릿한 문이 닫히면서, ‘쿵’ 하고 빈 공간을 울리는듯 한 마지막 문장이 있다.

<자기 앞의 生>의 마지막 문장이다.

 

“사랑해야 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파리의 빈촌,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에 사는 로자 아줌마와 아랍계 소년 모하메드(모모라고 불리는)의 이야기는 모모의 언어로 재생된다. 엉덩이로 벌어먹던 전직 창녀 로자 아줌마는 나이를 먹고, 더 이상 손님(?)이 찾지 않게 되자, 돈을 받고 창녀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한다.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는 생이 밀어내어 늙고 병들게 된다. 모모는 그런 로자 아줌마를 옆에서 보살피며 자기 앞의 생生을 살아간다.


읽는 내내 불편하고 힘든 이야기다. 그래도 읽으면서 수도 없이 페이지를 접고 밑줄 쳤다. 소설은 사회 규범이나 관습에 어떤 구속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위선적이고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위악적 행동을 하는 주인공 모모를 내세워 *피카레스크Picaresque문학의 양식을 따른다. 모모는 현실 세계에서 소외된 창녀, 흑인, 아랍인, 범죄자, 노인을 사랑하지만, 모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시선에는 인간의 체온이 느껴진다.

 

*피카레스크 문학: 스페인어로 ‘악당’을 의미하는 피카로Pícaro에서 유래해 16세기에서 17세기 초반까지 스페인에서 유행한 문학 양식의 하나로, 악한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녀의 옷장에는 괴상망측한 헌 옷가지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그녀에게 돈이 있을 때 벼룩시장에서 사들인 것들인데, 입으려고 산 것이 아니라 모두 환상에 젖어서 산 것들이었다. 그중에서 그녀의 몸이 제대로 들어갈 수 있는 옷은 새와 꽃과 떠오르는 태양이 그려진, 붉은색과 오렌지색이 배합된 일본 기모노뿐이었다. 그녀는 가발까지 쓰고 다시 한번 옷장의 거울을 보려고 했지만 나는 보지 못하게 했다. 보지 않는 게 나을 테니까.
- <자기 앞의 生>, 30장, 문학동네

 

로자 아줌마는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옷장에 화려한 옷들 채워 넣는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다리, 눈, 심장, 간, 동맥 따위의 기관들이 고장을 일으키고, 오래 산 사람들에게 보이는 여러 가지 증상이 로자 아줌마에게 덤벼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대한 환상은 묵직한 그녀를 옷장 앞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그런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집은 옷은 바로 ‘새와 꽃과 떠오르는 태양이 그려진, 붉은색과 오렌지 색이 배합된’ 일본 기모노다. 기모노라니. 파리의 향락과 쾌락을 채우는 역할을 했던 창녀의 죽기 직전 마지막 옷이 기모노라니. 그녀는 우아한 실크 원피스, 러플이 화려하게 장식된 드레스가 아닌 기모노를 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건물 지하 ‘유태인 동굴’로 향한다. 막걸리 잔에 보르도 와인을 마시듯 기묘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알다시피 기모노きもの는 일본의 전통 의상이다. 기모노는 헤이안 시대(8~12세기) 귀족이 입던 정장 속옷에서 시작해 에도 시대(17~19세기)에 이르러 정장과 같은 복장이 되었고, 현재 일본 전통 의복의 대명사로 인식된다. 우리 머릿속에 하나쯤 자연스레 떠오르는 기모노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서 장쯔이가 입었던 기모노의 실루엣이 떠오른다. (이 영화 역시 중국인 배우가 게이샤 역할을 했던 기묘한 영화다.)

 

<사진,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19세기 유럽의 귀족과 예술가들은 일본풍 사조, 이른바 자포니즘Japonisme 열풍에 빠지게 된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일본의 문화와 복식 스타일에 매혹되었고,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찍고, 일본 그림과 도자기를 감상하며 일본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사교계의 유행이 될 정도였다. 위대한 화가로 칭송받는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서도 기모노를 찾아볼 수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이런 문화적 흐름을 배경으로, 군 장교를 상대하며 고급문화를 향유했던 로자 아줌마는 젊은 시절 입었던 화려한 기모노에 대한 추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 그녀가 기모노를 입은 모습은 세 번 이상 묘사될 정도다. 그것도 매번 화려하게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하는 모습으로.

 

결론적으로, 기모노는 젊은 날 가장 아름다웠던 로자 아줌마의 모습을 기억하는 오브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기모노를 찾는다.

 

참, 내가 아직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로자 아줌마는 침대 밑에 히틀러의 대형 사진을 두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껴지거나 어떤 성인에게 의지해야 좋을지 모를 때면 그 초상화를 꺼내서 들여다보았는데, 그러면 큰 걱정거리 하나는 덜었다 싶은 생각에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근심 걱정까지 금세 잊을 수가 있다고 했다.
- <자기 앞의 生>, 5장, 문학동네

 

히틀러가 지휘한 독일 점령군 강압으로 프랑스 정부는 자국 내 유태인을 검거해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낸다. 소설 속에서 로자 아줌마는 단순히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고 묘사되지만, 1942년 일명 벨디브Vél d’Hiv 사건으로 불리는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녀는 힘든 순간마다 히틀러 사진을 바라본다. 그때 보다 더 나쁠 수 없다, 라는 의식을 되새기며 현재의 비참한 생을 견뎌낸다.

 

로자 아줌마가 죽기 전 입은 기모노와 히틀러 사진을 보는 그녀의 모습을 번갈아 떠올리다, 한 장의 사진이 스쳐 지나갔다. 2015년,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 기사 속 히틀러의 모습이다.

 

<사진, 기모노를 입은 히틀러(추정)>

 

1930년대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은 1936년 11월, 반코민테른 협정(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맺은 협정)을 위해 찍은 사진으로 추측된다. 나치는 다양한 선전 수단을 활용해 대중을 선동했는데, 이 사진도 선전 수단의 하나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찌 되었든 관계가 전혀 없어 보이는 로자 아줌마와 히틀러, 그리고 기모노의 연결고리는 소설 속 문장에서 옷을 꺼내다 발견한 재미난 사실이다. 사진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다른 문제로 치자.

 


이야기 초반,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란 모모의 물음에 마지막 문장으로 모모가 답한다. “사랑해야 한다.”라고.


모모는 죽으러 가는 로자 아줌마에게 사랑을 담아 마지막으로 화려한 기모노를 입힌다. 모모에게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었고, 그가 로자 아줌마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다면 우린 마지막 순간에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에밀 아자르, 아니 로맹 가리는 소설 속에 이처럼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 속 그래도 나에게 확실한 건, 아마도 기모노를 입고 마지막을 맞이 하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설마. 내가 기모노를?

 


 


Ps. <자기 앞의 生> 작가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 유태인인 그는 일생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두 차례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작품이 대중과 평단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자, 에밀 아자르라는 다른 정체성을 지닌 인물을 가공해 작품을 내놓는다. 신예 천재 작가의 탄생이라는 환호와 함께 콩쿠르 상을 수상하게 되고, 그가 죽고 나서야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가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밝히게 된다. 로맹 가리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프랑스 문학계를 넘어 전 세계 문단에 큰 파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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