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호 Mar 08. 2018

샤넬과 <달과 6펜스>의 신화_2

샤넬 No.5의 탄생

명작의 탄생


“당신은 내 남자고 나는 당신 여자예요. 당신이 어딜 가든 나도 따라가요.”
스트릭랜드의 의연한 태도가 한순간 흔들렸다. 두 눈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이윽고 두 볼 위로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 《달과 6펜스》, 55장, 민음사


조력자을 잃은 스트릭랜드는 타히티로 떠난다. 그곳 현지에서 순수한 원주민 여자 아타Ata를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된다. 천연의 타히티 환경에 파묻혀 하루하루 그림을 그리며 생활하던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나병에 걸린다. 스트릭랜드는 아타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스트릭랜드를 곁에서 보살피며 병으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함께하고자 한다.  


마찬가지로 샤넬의 든든한 힘이 되어 주던 카펠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에 힘겨워하던 샤넬은 새로운 연인, 11살 연하 러시아 황족 디미트리 파블로비치Dimitri Pavlovich를 만나게 된다. 스트릭랜드를 챙기던 아타처럼 샤넬에게 든든한 조력자 디미트리가 나타난 것이다. 샤넬은 향수광이던 디미트리의 영향으로 향수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오늘날까지 향수의 대표 아이콘이 된 샤넬 N˚5 이야기는 샤넬의 새로운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진, 샤넬과 디미트리>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파리에 온 디미트리는 향수가 생활의 일부였던 러시아 궁전 이야기를 샤넬에게 들려준다. 샤넬은 향수가 단순히 나쁜 냄새를 감춰주는 눈가림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패션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향수를 만들고 싶은 그녀는 디미트리에게 러시아 황실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를 소개받는다. 샤넬은 에르네스트 보의 향수 전문성과 브랜드 자본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향수 개발을 시작한다.  


1921년, 샤넬은 디자이너의 이름을 단 첫 향수이자 최초의 인공 배합 향수인 ‘N˚ 5’를 출시한다.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가 만든 샤넬 N˚5는 꽃이나 동물에서 채취한 천연 향을 활용하던 당시의 향수와 달리 자스민 향기를 기본으로 83여 가지의 성분과 화학 약품인 알데하이드를 배합해 만든 최초의 인공 배합 향수다. 인공향 알데하이드는 다른 향과 함께 섞이면서 향을 더욱 도르라지게 하는 증강 효과가 있는 화학 성분이다. 이는 마치 딸기에 레몬즙을 살짝 뿌리면 딸기 고유의 향을 더욱 살려 달콤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누구나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뻔한 기존의 향수와 달리 인공향 알데하이드를 조합한 샤넬 N˚5는 구분하기 어려운 묘한 향기를 내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21년 5월 5일, 샤넬은 N˚5 향수 판매를 시작했다. N˚5란 이름은 에르네스트 보가 샤넬에게 제시한 5번째 샘플이란 의미에서 탄생했다. 숫자 ‘5’가 샤넬의 행운의 숫자였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는 설도 있으나, 샤넬사社에서는 조향사의 5번째 샘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납작한 직육면체의 단순한 병 모양은 1920년대의 화려한 향수병과 차별화된다. 파리 방돔Vendôme 광장의 각진 형태에서 따온 병의 모던한 세공은 아직까지도 원형이 유지되며 사랑받고 있다.  


N°5 향수 성공에 이어 1922년에는 N°22, 1925년에는 가드니아Gardenia, 1926년에는 브아 데 질Bois des Iles, 1927년에는 뀌르 드 루시Cuir de Russie 향수를 잇달아 출시한다. 1924년에 향수와 화장품을 제조·판매하는 별도 회사를 설립하며 샤넬 브랜드 왕국을 확장시켰다.  


<사진, 마릴린 먼로의 샤넬 N˚5>


1960년, 당시 미국의 섹시 심벌인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에게 기자는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는가” 묻는다. 이때 그녀는 “샤넬 N˚5를 입고 잔다”는 대답을 하게 된다. 이 발언은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샤넬 N˚5에 새로운 신화가 입혀졌다.



신화가 되다


거기에는 원시적인 무엇, 무서운 어떤 것이 있었다.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마법이 어렴풋이 연상되었다. 그것은 아름답고도 음란했다.  
“맙소사, 이건 천재다.”
이 말이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 《달과 6펜스》, 56장, 민음사


나병에 걸려 일 년간 앞을 보지 못했던 스트릭랜드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살던 오두막에 벽화를 그렸다. 스트릭랜드를 찾은 닥터 쿠트라는 오두막에서 벽화를 보고 창세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낀다. 삶의 마지막 시간 속에서 자신이 살던 오두막의 벽과 천장에 영혼을 쏟아부어 최후의 걸작을 그린다.  


죽기 전까지 걸작을 남겼던 스트릭랜드처럼, 가브리엘 샤넬 또한 마지막까지 패션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작업해 마스터피스를 뽑아낸다. 나치에 협력해 공작에 가담했다고 알려져 스위스로 망명 생활을 했던 샤넬은 1954년, 파리로 돌아와 자신의 복귀 컬렉션을 열게 된다. 파리 패션 전설의 복귀전이었다. 복귀 컬렉션은 1920~30년대 스타일을 복원해 일부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샤넬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패션계에서는 커다란 사건이 된다.  


<사진, 1954년 샤넬 복귀 컬렉션>


이처럼 기존의 관습을 깨고 시대적 변화에 맞는 여성의 복식을 제안한 샤넬은 신화가 된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시킨다. 앞서 언급된 모자와 저지 소재 드레스, 향수 등은 주 활동 시기였던 1920~30년대 샤넬의 대표작으로 여전히 복각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이어지는 몇 아이템 또한 패션 디자인에 있어 혁신적 의미를 갖는 명작으로 하나하나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사진, 리틀 블랙 드레스>


리틀 블랙 드레스

1926년, 샤넬은 상복을 상징하던 블랙 컬러를 활용해 ‘리틀 블랙 드레스’를 만든다. 다채로운 컬러가 넘쳐나던 1920년대에 대한 반기로 단순미와 기능성을 극대화한 디테일과 컬러를 사용한 것이다. 모두가 컬러일 땐 조용한 흑백이 눈에 띄는 법이다. 미국 보그Vogue 매거진은 리틀 블랙 드레스를 "The Chanel's Ford”라 소개한다. 대량생산의 상징이자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린 포드사의 자동차에 비유해, 불필요한 디테일을 생략한 우아한 드레스의 성공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리틀 블랙 드레스는 저지 소재를 활용해 여성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라인을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리틀 블랙 드레스는 당대 활동적이고 주도적인 여성성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시크함의 아이콘이 된다.  


<사진, 퀼팅 숄더백Quilting Shoulder Bag(일명 2.55 백)>


2.55 백

1955년, 샤넬은 길이 조절이 가능한 금색 체인이 달린 퀼팅 숄더백을 출시한다. 1955년 2월에 만들어져 2.55 백으로 불리는 이 백은 어깨로 멜 수 있는 최초의 여성용 가방이다. 가방엔 ‘마드모아젤 락Mademoiselle Lock’이라 불리는 네모난 잠금장치가 있고, 쇠사슬처럼 꼬아진 금속 숄더 체인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체인 스트랩이 달린 군인 가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2.55 백은 가방을 어깨에 걸칠 수 있어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억압된 여성성 해방의 상징으로 불린다.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당시 한쪽 또는 양손으로 가방을 무조건 들고 다녀야 했던 현실을 생각해보면 가방 개념의 전환인 셈이다. 현재도 2.55 백은 구매 대기 리스트를 적어야 할 정도로 여성들의 워너비 백이다.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샤넬은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하라'는 철학을 옷의 언어로 여성들에게 전파했다. 갑갑한 옷에 구속되어 있던 여성의 신체를 옷에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낸 가브리엘 샤넬의 삶과 브랜드 샤넬은 신화이자 하이엔드 브랜드의 상징이 된다.  


<사진, 샤넬 매장>


1971년 1월, 가브리엘 샤넬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세계 패션계의 선두에서 샤넬 하우스를 이끈다. 스스로가 모던한 여성의 전형적 모델로서 살아간 그녀의 삶과 브랜드는 시대를 아우르며 모던함과 스타일리시함을 보여줬다.  


그녀의 사망 이후 샤넬 하우스는 디올Dior에 있던 가스톤 베르텔롯Gaston Berthelot을 시작으로 수석 디자이너가 교체되며 짧은 기간 동안 그녀의 성공을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무던한 스타일로 브랜드는 침체기를 겪었고, 1983년 독일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를 수석 디자이너로 삼아 반전의 기회로 삼는다.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근본 정신과 동시대 트렌드를 섞어 다양한 연령층 여성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샤넬 수석 디자이너로 샤넬을 트렌드 한 명품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칼 라거펠트의 행보는 예술성과 상업성을 겸비하고 있다. 이는 작품 활동 외에 모든 것을 버렸던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필요한 자질이 아니었을까.  


신화는 이야기 그 자체보다 신화를 이어가는 사람의 몫이 크다. 샤넬에겐 칼 라거펠트가, 폴 고갱에겐 서머싯 몸이 있었다. 어떤 이가 신화를 발견하는가, 계승하는가에 따라 신화의 깊이는 달라진다.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신화는 다음 사람의 행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달과 6펜스》와 샤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으로 문학과 브랜드가 어떤 이들에게 이어질지, 다음 신화가 기대된다.  

  




샤넬CHANEL


창립자 :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

출생 / 사망 : 1883년 8월 19일 ~ 1971년 1월 10일, 프랑스

창립 : 1910년

수상 : 1957년 미국 패션 오스카상 수상 Fashion Oscar



《달과 6펜스》 


<사진, 윌리엄 서머싯 몸>


《달과 6펜스》은 1919년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1874 ~ 1965, 영국)이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 대사관의 고문변호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몸은 10살 때 부모를 잃고 목사인 백부의 집에서 성장한다. 성장 후 킹스 컬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에서 의학을 공부하지만, 문학에 뜻을 품고 1897년 첫 소설 《램버스의 라이자》를 발표했다. 첫 소설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몸은 소설과 희곡을 계속 발표했고, 1915년 장편소설 《인간의 굴레》를 출간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의관으로 근무하다 첩보원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19년 《달과 6펜스》를 발표하며 그의 작가적 지위는 굳건해지며 이후 단편과 장편, 희곡, 에세이를 출간했다. 1954년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명예 훈위 칭호를 받았다.


스토리 요약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에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려가는 40대 증권 중개인이다. 화자인 '나'는 첫 작품을 출판하면서 문학에 관심이 많은 스트릭랜드 부인과 친분을 쌓는다. 스트릭랜드 부인의 부탁을 받아 '나'는 어느 날 편지 한 통 남기고 떠난 스트릭랜드를 설득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 스트릭랜드를 만난 ‘나’는 그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집을 떠난 사실을 알고 놀란다.  


'나'는 스트릭랜드의 예술에 대한 열정에 놀라지만, 가족에 대한 무책임함을 질타하고 돌아선다. 5년 후, '나'는 파리에서 스트릭랜드와 절친한 네덜란드 화가 더크 스트로브를 만나게 되고, 더크를 통해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에 대해 알게 된다. 당시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조롱받고 무시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크는 스트릭랜드를 인정하고 친절하게 돌봐준다. 어느 날 스트릭랜드는 심한 열병을 앓게 되는데, 더크는 그의 아내 블란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와 간호한다.  


스트릭랜드를 돌봐주던 블란치는 그와 사랑에 빠지고, 이에 충격을 받은 더크는 아내에게 아틀리에와 돈 넘기고 집을 나간다. 그러나 3개월 후 블란치는 스트릭랜드에게 버림받고 음독자살을 하고, 충격을 받은 더크는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이후 스트릭랜드는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떠나고, '나'는 스트릭랜드가 죽고 나서 그가 최후에 머물렀던 타히티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지난 시간 동안의 스트릭랜드의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트릭랜드는 섬에서 그림을 계속 그리다 원주민 여자 아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평화로운 생활을 하던 그는 나병에 걸리게 눈이 멀게 되고 마지막으로 오두막 집 벽에 그림을 그린다. 사후 그의 그림은 걸작으로 인정받으며 미술계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나'는 스트릭랜드의 삶을 관통하는 글을 쓰게 된다.




연재를 마치며


위클리 매거진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에 이어,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 선정되어 매주 브런치와 다음 메인을 채웠던 시간 또한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신경 써 주신 브런치 팀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족함이 많은 콘텐츠이지만 잘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옷, 문학을 품다>는 패션 브랜드와 문학 작품을 함께 엮어본 글입니다. 없던 시도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연결고리를 찾으며 즐거웠던 작업이었습니다. 본 기획에 이어 <문장에서 꺼낸 옷>이라는 작업을 조금씩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학작품 속 등장인물이 입었던 옷의 맥락과 옷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합니다. 현업에서 옷과 관련된 일을 하며 콘텐츠 작업을 해 속도가 더디지만, 이제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 책을 손에 쥐는 일상이 익숙해지네요.

마지막이라 말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리며 <옷, 문학을 품다> 연재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novelandfashion


이전 13화 샤넬과 <달과 6펜스>의 신화_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