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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Mar 01. 2018

샤넬과 <달과 6펜스>의 신화_1

샤넬을 만든 조력자

패션과 미술의 신화

  

“나는 패션을 하지 않는다. 내 자체가 패션이다.”  
-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현대 여성의 롤모델로 불리는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이 만든 브랜드 샤넬Chanel은 전 세계 여성들이 가장 선망하는 패션 브랜드다. 초록 스타벅스 로고를 보면 자연스레 커피 향이 느껴지듯, 흰 바탕에 검은 샤넬 로고가 새겨진 어떤 것이든 묵직한 가격의 무게와 명품의 향기가 느껴진다. 물론 아무 곳에나 로고가 붙지 않는다. 샤넬에서 선정한 기준에 따라 공방 장인이 한 땀 한 땀 작업한 결과물에만 로고가 붙는다. 기준에 따른 엄격한 관리와 브랜딩 결과로 샤넬의 브랜드 가치는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세계 100대 브랜드에 매년 빠지지 않고 랭크되고 있다.  


샤넬은 의류, 가방, 향수, 주얼리, 시계 등 패션 소품까지 다방면에 걸쳐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커리어 우먼의 롤모델로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성 디자이너로서 지금보다 열악했던 패션계 환경에서 20세기 여성 복식에 혁신을 불러일으켰고, 시대적 흐름에 부응한 아이템으로 패션계의 신화가 되었다.


신화가 된 디자이너와 같이, 신화가 되어버린 미술가를 그린 소설이 있다. 소설 《달과 6펜스》다.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전설적인 사건들은 주인공을 불멸의 세계로 들여보내는 가장 확실한 입장권이 되어준다.  
- 《달과 6펜스》, 1장, 민음사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을 모델로 한 소설이다.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은 폴 고갱의 실제 삶을 빌려 화가의 광기 어린 예술 편력과 보헤미안Bohemian적인 삶을 그려냈다. 실제로 《달과 6펜스》를 통해 폴 고갱의 삶은 재조명되었고, 고갱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더욱 빛을 발했다.


소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Charles Strickland는 폴 고갱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을 때 이름 없는 화가였다. 그가 죽고 난 뒤 작품들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재평가받게 되고, 스트릭랜드의 작품성과 천재성을 인정받아 그의 삶은 신화화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죽고 난 뒤 스트릭랜드의 흔적을 좇으며 신화를 재조명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샤넬의 시작은 어떨까.


샤넬은 파리의 작은 아틀리에Atelier에서 시작해 여성들에게 의복의 자유를 선사했다. 여성의 몸을 꽉 조여 억압하는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고, 땅에 끌릴 만큼 긴 롱 스커트를 무릎 기장으로 자르고, 활동이 자유로운 여성용 바지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패션 스타일의 탄생은 그녀의 손길에서 부터였다.  

샤넬 N˚5 향수, 여성용 슈트,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 트위드Tweed 재킷, 2.55 퀼트 백, 슬링백Slingback 구두 등은 아이폰이 스마트 폰의 대명사가 되듯 패션 아이템의 품목을 구분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아이템 뿐만 아니라 샤넬 룩look, 샤넬 라인line(무릎 아래 5~10cm 정도 내려오는 길이)등 샤넬 관련 용어는 일반 사전에도 등재될 정도로 브랜드의 영향력은 문화계 전방위적이다. 샤넬은 세계 패션의 역사가 되었고, 샤넬의 삶은 신화가 되었다.  


<사진, ‘달과 6펜스’ 모델이 된 폴 고갱의 자화상>


샤넬과 소설은 ‘신화’를 중심으로 묶인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형성처럼 소설과 브랜드에서도 반복적 특성을 지닌 클리셰 포인트가 있었다.  



신화의 불씨 


에이미 보시오.
집 안은 다 잘 정돈되어 있으리라 생각하오. 앤에게 당신이 말한 대로 일러두었으니 돌아오면 당신과 아이들 식사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오. 하지만 나는 당신을 보지 못하오. 당신과 헤어지기로 마음먹었소. 내일 아침 파리로 떠날 작정이오. 이 편지는 그곳에 도착하는 대로 부치겠소. 다시 돌아가지는 않소. 결정을 번복하진 않겠소. – 찰스 스트릭랜드  
- 《달과 6펜스》, 10장, 민음사

런던에서 아내와 두 아이의 가장으로 평범한 40대 증권 중개인의 삶을 살고 있던 찰스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파리로 떠난다. 사람들은 젊은 여자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가정과 안락한 삶을 포기한다.  


떠난 사람이 있으면 남겨지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스트릭랜드가 떠나는 쪽이면 가브리엘 샤넬은 남겨지는 쪽이었다. 샤넬 어머니는 그녀가 12세 때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 알베르 샤넬은 이곳저곳을 누비며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었는데, 아내가 죽자 외가에서 받은 돈을 유흥가에서 흥청망청 날리고 가브리엘 샤넬을 수도원 부속 고아원에 맡긴다. 떠남과 남겨짐이 있는 이별의 장면에서부터 신화의 불씨가 지펴진다.  


샤넬의 시작으로 들어가 보자.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프랑스 남서부 소뮈르Saumur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어머니를 여읜 샤넬은 오바진Aubazine에 있는 수도원 부속 고아원에서 생활한다. 고아원에서 직업 교육으로 바느질을 통한 재봉 기술을 익혔고, 이때 습득한 기술은 훗날 그녀가 패션 디자인 감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뒷받침이 된다.


청소년기 대부분을 보낸 오바진 수도원은 샤넬 디자인의 주요 원천이 된다. 고아원 생활 당시 그녀가 입었던 블랙 앤 화이트 컬러의 수녀복은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의 모티브가 되었고,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의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커브, 해와 달과 같은 문양들은 디자인의 재료가 되었다.  

20세 성인이 된 샤넬은 수도원을 나와 낮에는 봉제 회사 보조로 일했고, 저녁에는 캬바레에서 노래를 불렀다. 당시 샤넬의 별칭은 '코코Coco'였다. 이는 캬바레에서 샤넬이 주로 불렀던 노래 '누가 코코를 보았니Qui qu'a vu Coco'에서 유래한 별명이다. 이 별명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녀가 세계적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도 그녀의 애칭은 코코 샤넬로 불릴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이름을 코코 샤넬로 알고 있지만, 샤넬은 사실 코코라는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불우했던 과거가 묻어 나는 애칭이었기 때문이다.  


샤넬 로고의 유래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다. 두 개의 C자가 대칭으로 겹쳐진 로고는 자신의 별명 코코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자신이 싫어한 애칭이지만 로고로 사용했다고 구전되는 이야기는 뭔가 모순적이다. 하지만 이는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말한 ‘시지프 신화’의 내용처럼, 자신의 부조리한 운명을 직시하는 것이 인식의 출발점이자 운명을 넘어서는 계기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녀는 자신의 불우한 과거를 로고에 묻는다. 마주 보며 대칭한 ‘C’와 산세리프체로 적은 CHANEL로 조합된 엠블럼으로 자신을 대표한다.  

<사진, 샤넬 로고>


샤넬이 일했던 캬바레 주변에는 기병 부대가 주둔해 있었고, 그녀는 노래 솜씨와 분위기 있는 외모 덕분에 기병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그 기병들 사이에는 장교로 파견된 재력가 에티엔느 발상Etienne Balsan도 있었다. 발상을 만나며 샤넬의 운명은 변곡점을 맞이한다.



조력자


“스트릭랜드가 큰 병이 났어요. 죽을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더러운 다락방에 혼자 누워 있어. 돌봐줄 사람 하나 없이. 우리 집으로 데려왔으면 하는데.”  
그의 아내는 두 손을 얼른 잡아 빼면서 – 그처럼 날쌘 동작은 처음이었다 – 얼굴을 붉혔다.  
“싫어요.”
- 《달과 6펜스》, 25장, 민음사


가난에 쪼들린 스트릭랜드가 굶주림과 질병으로 쓰러졌을 때 그를 구해준 사람은 더크 스트로브Dirk Stroeve라는 네덜란드 화상畫商이었다. 스트릭랜드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스트로브는 아내 블란치Blanche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 간호하고 보살펴준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조력자의 도움으로 스트릭랜드는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가브리엘 샤넬에게도 스트로브와 같은 조력자가 나타난다.  


기병 장교 에티엔느 발상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대저택에 정원에 경주마까지 보유하고 있는 재력가다. 샤넬은 발상과 연인 관계(정부)가 되어 그의 저택에서 생활하며 캬바레에서의 생활을 청산한다.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발상은 그녀에게 별다른 간섭 없이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게 한다. 그녀는 발상의 저택에서 어떤 의무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독서를 즐기고, 말을 타고, 경마장을 찾으며 상류 사회 매너와 교양을 익힌다. 이때 익힌 상류 사회의 문화는 샤넬이 주 소비층인 부유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디자인할 수 있게 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집단에서 공유하는 취향과 성향 체계를 아비투스Habitus라 칭하고 분류했다. 샤넬은 발상의 저택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상류층이 경험과 교육을 통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취향과 성향 즉 아비투스를 익혔고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생존 전략을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  


샤넬은 연인 발상의 옷장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옷을 자유롭게 꺼내 입었다. 말을 탈 때는 기존의 긴 치마 형태의 여성 승마복 대신 남자들이 입는 재킷을 걸쳤고, 발상의 승마 바지를 자신에게 맞게 수선해 입었다. 지금은 유니섹스 복장과 여성의 바지 착용이 자연스럽지만 당시는 남성과 여성의 옷은 확연한 차이를 갖고 있었다. 남성복을 모티브로 한 품위 있으면서 편안한 디자인을 추구한 샤넬의 패션관은 이때부터 형성되었다 할 수 있다.


<사진, 가브리엘 샤넬과 에티엔느 발상, 아서 카펠>


호기심 많은 샤넬은 상류층 생활에 곧 지루함을 느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모자 디자인을 시작한다. 그녀는 당시 발장의 또 다른 애인(?)이었던 가수 에밀리엔 달랑송Emilienne d’Alencon의 모자를 만들어 주었고, 모자가 사교계에서 이슈가 되는 모습을 본 샤넬은 자신의 재능을 깨닫는다. 당시 여성용 모자는 얼굴을 가릴 정도로 챙이 넓고 과장된 레이스 장식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샤넬은 장식을 과감히 없애고 챙도 거의 없는 담백한 모자를 만들어 남들과 다름을 추구하는 귀족의 사랑을 받는다. 이때부터 그녀는 화려하고 과장된 요소를 과감히 버리고 자신만의 단아한 스타일을 고수한다.
 

“제발 저를 조용히 보내주세요, 더크”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모르시겠어요? 제가 스트릭랜드 씨를 사랑한다는 것을? 저이가 어디로 가든 전 저일 따라갈 거예요.”  
- 《달과 6펜스》, 28장, 민음사


스트릭랜드의 병을 간호하던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는 스트릭랜드의 이상理想에 매료되어 사랑에 빠진다.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는 스트로브는 돈이 없는 블란치를 위해 자신의 스튜디오와 돈을 그녀에게 넘기고 집을 떠난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을 도와준 스트로브에게 죄책감과 미안한 감정 없이 블란치와 동거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샤넬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지원해주던 발상을 떠나 새로운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꿈에 힘을 싣는다.  


샤넬은 발상의 영국인 사업가 친구 아서 에드워드 카펠Arthur Edward Capel(‘보이’라는 애칭으로 불림)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발상의 저택에서 지원을 받으며 모자를 만드는 꿈을 키웠던 샤넬은 발상과 함께 여가를 즐기던 일행 카펠을 만나 감정을 싹 틔운다. 연인이자 경제적 조력자였던 발상과 만남을 정리하고 자연스럽게 그의 카펠과 교제한다.  


카펠은 샤넬의 후원자가 되어 그녀에게 매장을 열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주었고, 1910년 파리 캉봉 거리rue Cambon에 샤넬 모드Chanel Modes라는 모자 매장을 열 수 있게 도와준다. 27세 샤넬은 모자 사업을 통해 정식으로 패션 산업에 발을 내딛게 된다.  


모자 매장 오픈 초기에 샤넬이 선보인 수수하고 간편한 모자는 부르주아 여성들에게 외면 당한다. 샤넬은 자신의 모자를 흥행시키기 위해 당시 유명 연극 배우였던 가브리엘 도르지아에게 연극 ‘멋진 친구들Guy de Maupassant’s Bel-Ami’에서 자신의 모자를 써줄 것을 부탁했다. 도르지아가 연극에서 샤넬의 모자를 착용한 것을 계기로 상류층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매장은 본격적인 흥행 궤도에 오르게 된다.  


샤넬의 야심은 모자에서 그치지 않았다. 1913년, 연인 카펠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샤넬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위치한 휴양 도시 도빌Deauville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이란 의상 부티크를 열게 된다.  


<사진, 자신의 첫 부티크 앞에 선 샤넬>


샤넬은 휴양지에 어울리는 단순하고 편한 옷을 디자인했다. 남성들이 스포츠웨어로 착용하던 스웨터에서 착안해 날씨가 차고 습한 도빌의 해양 기후에서 입을 수 있는 여성 카디건을 만들었다. 카디건은 기존에 거추장스럽던 코르셋과 페티코트Petticoat(여성용 속치마)를 착용할 필요 없이 느슨하고 헐렁하게 디자인된 점이 특징이었다. 뿐만 아니라 어부들이 착용했던 작업복에서 영감을 받아 옷을 만들었는데, 칼라가 넓고 네모 각진 세일러 블라우스Sailor Blouse를 여성용으로 개량했다. 또, 남성 노동자의 옷에서 볼 수 있는 패치 포켓Patch Pocket(바깥에 덧붙이 호주머니)을 여성 재킷에 적용해 여성의 손을 자유롭게 했다.  


샤넬은 폴로 선수인 카펠이 운동하면서 주로 입었던, 남성 속옷용으로 쓰이던 저지Jersey 소재를 눈여겨봤다. 그녀는 여성복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저지 소재를 활용해 투피스 드레스를 만들었고, 드레스는 프랑스 파리인 엘레강스les Elégances Pariennes 매거진과 미국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 보그Vogue에 소개되며 호평을 받는다.  


샤넬은 기존의 의복 질서와 관념에 도전해 편안하고 실용적인 여성복을 디자인했고, 여성의 몸을 억압된 옷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아이콘으로 등극하기 시작한다. 활동의 자유를 주는 옷은 남성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그녀였다.  


스트릭랜드와 블란치의 관계가 결국 불행하게 끝나리라는 것은 나도 스트로브 못지않게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 일이 이처럼 비극적인 형식을 취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중략)
스트로브는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와서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을 향해 다가왔다.  
“자살해 버렸네.” 쉰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 《달과 6펜스》, 34장, 민음사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는 스트릭랜드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버림받고 자살한다. 스트릭랜드는 블란치가 자살한 이유는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제대로 균형이 잡히지 않은 인간이어서 자살했다고 차갑게 말한다.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스트로브는 파리를 떠나고,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조력자 모두를 잃고 만다.


1919년, 샤넬의 후원자이자 연인이었던 보이 카펠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스트릭랜드와 마찬가지로 샤넬 또한 조력자를 잃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1914년 ~ 1918년 동안 샤넬은 자신이 만든 의상과 특유의 사교성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샤넬은 당시 저명인사들의 이목을 끌었고, 당대 없던 여성복 스타일을 선보이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여성들의 노동력이 적극 요구되는 사회에서 화려하게 치장된 기존의 여성 복식보다 우아하면서 편안한 샤넬의 옷은 시대의 부름을 받았다.


<사진, 샤넬과 카펠>


성공의 크기만큼 불행도 준비되어 있었다. 세계대전 종전 후 사업을 확장하던 1919년, 샤넬은 연인 카펠의 교통사고 소식을 접한다. 소식을 들은 샤넬은 새벽시간 깐느에 도착하지만 이미 카펠의 시신은 입관해 있었다. 샤넬은 다음날 치러지는 장례식장 참석을 거부하고 카펠의 사고 현장으로 간다. 사고가 난 카펠의 차를 더듬으며 그녀는 몇 시간을 머물렀다. 샤넬은 패션 디자이너로서 삶을 이끌어준 애인이자 후원자 카펠의 죽음에 슬퍼하며 힘든 나날을 보낸다. 집안의 벽과 천장, 양탄자와 침대 시트까지 검은색으로 바꿀 정도였다.



<계속>


샤넬과 <달과 6펜스>의 신화_2편에 이어집니다.


PS.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한 등장인물의 의상을 탐구하는 새로운 매거진 <문장에서 꺼낸 옷>도 연재 중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noveland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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