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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Feb 22. 2018

주름의 다른 의미, 이세이 미야케와 <은교>_2

주름이 만든 리듬

주름을 구조화한 가방,

바오바오BaoBao


어떤 주름은 실개천같이 흐르고 어떤 주름은 강같이 깊다. 소나무 그늘인 듯, 온화하고 아름답고 섹시한 주름이다.
다시 보니, 오호라, 아무래도 여자는 은교의 나이든 얼굴이다.
-《은교》, 시인의 노트; 꿈,호텔,캘리포니아, 문학동네


이적요가 사랑하는 은교의 상상 속 늙은 모습과 주름은 야릇하게 묘사된다. 늙음을 상징하는 주름이지만 사랑하는 이의 주름은 그마저도 관능적이다. 마찬가지로 고객에게 관능적으로 다가가는 이세이 미야케의 주름은 실개천 같이 얕은 은교의 주름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이세이 미야케는 구조화된 주름을 가방으로 표현한다.


<사진, 바오바오 가방>


중저가 가방계의 샤넬로 불리는 바오바오BaoBao다. 2010년, 이세이 미야케가 새롭게 선보인 브랜드, 바오바오는 가벼운 메시 원단에 삼각형의 구조화된 플라스틱을 이어 붙여 만든 가방이 메인이다. 옷의 주름에서 파생된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의 구조적 형태는 도형 구조의 가방으로 이어졌다. 인체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브랜드 특성처럼 가방도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추구한 것이다.


가방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접으면 종이처럼 납작해지지만, 물건을 넣으면 부피에 따라 자유자재로 3차원의 입체적인 표정을 만들어 낸다. 저렴한 소재를 사용해 가격대도 일반 명품의 가죽 브랜드보다 저렴해 실용적인 엄마들의 잇it백으로도 불린다.


주름진 옷과 가방은 감각적인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의 명품을 지향하는 고객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는다. 《은교》의 이적요가 감내하는 묵직한 주름의 의미와 다르게 이세이 미야케는 자신만의 가치를 담은 주름을 패션계에서 만들어가고 있었다.



주름의 다른 의미


어떤 주름은 동굴처럼 깊고 어두웠으며 어떤 주름은 신생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 시절 너나없이 준수한 얼굴이라고 칭송하던 젊은 날의 내 얼굴은, 거기 없었다.    
-《은교》, 시인의 노트; 나의 처녀, 은교에게, 문학동네


은교를 만난 이적요는 자신의 늙음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은교의 젊음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만든 주름은 이적요가 스스로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 제자 서지우가 은교를 탐하는 순간에도 이적요는 자신의 주름(늙음)때문에 은교 앞에 나서지 못한다.


<사진, 영화 은교>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저서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를 통해 주름은 이질적인 제도와 생각의 체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세계에 대한 은유의 표현이라 말한다.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세계 앞에서 한 인간은 순응하게 된다. ‘순응하다, 따르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 Compliant안에 주름을 뜻하는 단어 Pli가 자리 잡고 있음은 흥미롭다. 물리적인 힘에 의해 천이 구겨져 주름을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체제와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게 되고 주름이라는 흔적을 남기게 된다는 것이다.


《은교》에서 주름은 물리적 시간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순응의 흔적이다. 이와 달리 이세이 미야케는 주름의 의미를 순응이 아닌 자유로 풀이한다. 주름이 가진 조형성을 통해 몸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고 활동적이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제2의 피부인 옷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통합된 대상이라는 것을 설파한다.


이세이 미야케는 오리가미おりがみ를 통해 몸의 자유를 제공하는 주름의 완성형을 구축했다. 일본의 전통 종이 접기인 오리가미는 칼과 가위로 종이를 자르지 않고, 접기만으로 형상을 구현하는 기술이자 놀이다. 오리가미 방식을 이용해 원단의 끝을 잡아당기면 한 벌의 옷이 나오도록 디자인했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입체적 디자인으로 모델링 된 이 옷은 ‘132.5 이세이 미야케’란 이름을 갖는다. 이름은 한 장의 천(1)이 3차원의 옷(3)의 형태를 띠게 되고, 그 옷은 다시 2차원인 평면(2)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마지막 숫자는 옷이 사람의 몸을 감싸게 되면 공간과 시간의 차원을 넘어서 궁극적인 5차원의 존재가 된다는 의미의 5다.


<사진, 132.5 이세이 미야케>


이세이 미야케는 한 장의 천A-POC에서 플리츠 플리즈, 바오바오를 거쳐 오리가미 방식의 132.5 이세이 미야케로 주름의 의미를 보여줬다. 신체를 감싸는 원단의 변주로 자신만의 브랜드 세계를 구축해낸 것이다.


1999년 이세이 미야케는 브랜드 수장에서 은퇴, 나오키 다키자와를 거쳐 현재는 다이 후지와라가 수석 디자이너를 맡아 브랜드를 이끌어 가고 있다. 미야케의 은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는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옷이 아닌 사람을 위한 옷을 만들고자 했던 의지를 담고 있다.


꾸준히 소재와 디자인을 개발한 이세이 미야케는 다른 어떤 브랜드보다 진보적이다. 그가 창조한 옷의 주름은 계속 진화 중이며, 그 주름은 리듬을 가지고 있다. 주름이 만든 리듬 위에 어떤 옷들이 춤을 출지, 이세이 미야케의 컬렉션은 언제나 기대할 만하다.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사진,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창립자: 이세이 미야케

출생: 1938년 4월 22일, 일본

창립: 1971년

매장 수: 30여 개국 250점

소속 브랜드 : 이세이 미야케, 이세이 미야케 맨, 플리츠 플리즈, 옴므 플리스, 하트, 미 이세이 미야케, 바오바오, 132 5. 이세이 미야케, 인-엘 이세이 미야케, 이세이 미야케 퍼퓸, 이세이 미야케 워치



은교


《은교》는 2010년 작가 박범신 (1946~ )이 발표한 소설이다.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난 그는 전주교육대학교를 거쳐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다작 작가로서 2016년 기준으로 56권을 책을 냈고,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수상 경력 또한 화려하다. 2012년 정지우 감독의 연출 하에 개봉한 영화 <은교> 외에 10여 편의 소설이 영화화되었다.


스토리 요약

위대한 시인이라고 칭송받던 이적요가 죽은 지 일 년이 되었다. 시점은 그가 죽고 난 1년 뒤의 시간부터 그려진다. 절친한 후배 시인이자 변호사인 Q변호사에게 그의 유서와 마지막 기록인 노트가 남겨진다. 그가 죽고 난 1년 뒤 이적요의 유언대로 노트를 공개하려 한다. 하지만 Q변호사는 노트를 읽고 공개를 주저한다. 노트의 내용은 이적요가 17세 여고생인 한은교를 사랑했으며, 애제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서지우를 죽였다는 고백이었다. 또한, 서지우의 저서 「심장」 또한 그가 집필했다는 사실도 적혀있다.


이적요 기념관 설립 및 행사 준비가 한창인 지금, 노트의 공개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훤하다. 고민을 하던 Q변호사는 한은교를 만나고, 서지우의 일기 파일을 그녀를 통해 건네받는다. 이적요의 노트와 서지우의 일기를 통해 그들 사이에 있었던 전말을 알게 된다.


70대 나이의 이적요는 자신의 늙음과 대비되는 은교의 젊음을 보며 관능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녀를 통해 자신의 '청춘'을 되돌아보게 되고, 젊음과 욕망에 대한 불길이 지펴진다. 제자 서지우는 이적요가 은교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은교에 대한 집착이 커져간다.


문제없는 사제지간이었던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는 은교를 중심으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열등감과 질투, 모욕이 엉키며 관계가 위태롭게 유지된다. 서지우가 이적요의 작품을 훔쳐 단편소설을 게재하고 갈등은 극에 달한다. 서지우는 자동차 사고로 죽고, 이적요는 스스로 고통을 주며 죽음을 끌어당긴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거에요.


PS.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한 등장인물의 의상을 탐구하는 새로운 매거진 <문장에서 꺼낸 옷>도 연재 중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noveland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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