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호 Apr 19. 2018

<인간 실격> 요조의 교복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서 꺼낸 옷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 <인간 실격>, 세 번째 수기, 민음사

  

도발적 제목이다. 

인간과 실격이라는 표현의 조합이라니. 인간이 되는데 일정한 기준이 있겠냐마는, 제목으로 이목을 사로잡는데 기준치를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일단 제목은 실격이 아닌 합격(감히 내가?). 

  

<인간 실격>의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무뢰파無賴派 작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세계 2차 대전 종전 후 경제적, 물질적 피폐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 구심점을 잃게 된 일본인들. 그들은 기성 가치관과 윤리의식에 비판의식을 갖고 기존의 삶의 방식과 문학 양식에 반발한 무뢰파 작가들에게 열광하게 된다. 그중 다자이 오사무, 그의 작품 <인간 실격>은 손에 꼽는 대표적 작가와 작품. 바다 건너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네 번의 자살 미수와 약물 중독, 다섯 번째 자살 시도의 성공(?) 끝에 39세에 생을 마친 다자이 오사무. 그의 소설은 본인의 사소설로 읽힐 정도로 작가의 삶을 반영한 작품으로 속사포 랩처럼 쉴 새 없는 자아비판과 자기혐오, 염세와 체념의 연속이다. 그런 그의 글이 최근 우리 독자에게 다시 읽히고 있다. 나 또한 왜인지 모르게 다시 그의 책을 잡게 되었다. 물론 책 표지의 에곤 쉴레의 자화상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 <인간 실격>, 세 번째 수기, 민음사 



작품은 화자인 ‘나’가 서술하는 서문과 후기, 그리고 주인공 요조가 쓴 세 편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 속 ‘나’는 “나는 그 사나이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라고 말하며, 사진에 대한 묘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석 장의 사진은 요조가 자라면서 찍은 사진으로 세 편의 수기를 상징하는 이미지다. 첫 번째 사진은 요조의 유년 시절,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때의 사진이다. ‘나’는 그의 사진을 보며 섬뜩하고 으스스함을 느낀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괴상한, 추하고 묘하게 욕지기를 느끼게 하는 표정’의 사진이다. 두 번째 사진은 교복 차림의 모습. 대단한 미남으로 보이는 주인공의 사진은 이상하게도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웃고 있지만 인간의 웃음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걸린다. 하나부터 열까지 꾸민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사진. 마지막 세 번째 사진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진이다. 쭈그리고 앉아 화로에 양손을 쪼이고 있는데, 그냥 그대로 죽어 간 것 같은 느낌의 사진이다. 표정도, 감정도, 특징도 없는 사진. 이 석장의 사진은 주인공 요조가 직접 써 내려간 수기 속 얼굴을 대표한다. 허나 도입의 강렬한 우울함에 책을 덮는 일이 부지기수. 첫 담배 한 모금 빨아 넘기기 어렵지만 그다음부터 중독으로 이어지듯, 그의 문장 또한 도입의 묵직한 우울함을 목구멍으로 넘기면 자연스레 중독으로 이어졌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참 나쁜(?) 중독이다. 

  

소설 속 문장, 대화의 상대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땅에 떨어진 사탕에 개미 꼬이듯, 마음 언저리에 떨어진 문장과 단어 방향으로 검고 작은 감정의 무리들이 꼬일 때가 있다. 작지만 격렬한 반응. <인간 실격> 속 익살을 연기하는 요조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든 이 소설을 보면 자신의 한 조각 파편을 만날 수 있겠다.  


그 중 요조의 두 번째 사진. 교복 차림의 그의 모습이 묘하게 잔상에 남았다. 잔상이 사라지기 전, 뜰채로 낚싯바늘 걸린 물고기 낚듯 문장 속 옷을 끄집어 내봤다. 오래된 문장이지만 읽는 순간 싱싱하게 불안한 감정은 살아있다.  

  


고교 시절 사진인지 대학 시절 사진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대단한 미남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이상하게도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교복 왼쪽 가슴에 있는 주머니에는 하얀 손수건을 꽂고 등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웃고 있다.  

- <인간 실격>, 서문, 민음사



주인공 요조가 입고 있는 교복 차림은 단순히 그를 감싸고 있는 피복의 개념을 넘어선다. 교복은 그의 신분, 환경의 제약을 의미한다. 그는 부잣집 자식이지만 마르크스주의의 모임에서 활동하고, 집안의 촉망을 받지만 도덕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살아간다. 교복 안에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아니다. 스스로 ‘인간 실격’이라고 단정 짓기 전에 이미 그의 사상과 행동은 ‘학생 실격’. 외면의 웃고 있는 모습 속에 불신과 불안이 숨겨져 있다.  

왼쪽 가슴에 행커 치프 용도로 꽂힌 하얀 손수건을 보면, 그의 옷이 디테일하게 묘사되지 않아도 빳빳하게 다림질된 교복의 모습이 연상된다. 멀끔 멀끔. 자신의 음울하고 나약한 감정을 가리기엔 교복만 한 표피가 없으리라.  

  

이 장면에서 옷을 꺼내보았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렸던 요조의 교복. 교복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문화일까.  

  

요조가 입었던 교복의 형태를 좇자면,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나라의 교복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검은색 교복의 목에 굵은 띠 모양의 빳빳이 올라온 칼라, 금장 단추와 하얀 셔츠, 그리고 모자. 지금은 교복의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과거 식민 시대 이어져 내려온 교복 문화와 의복 양식은 우리네 교복 문화에도 그대로 이어져내려왔다. 어렵지 않은 영화를 예로 든다면 권상우와 한가인이 주연했던 <말죽거리 잔혹사>의 모습.  

  

우리에게 얼마 전까지 남아 있던(아직 어딘가에 있을 수도) 일복식 교복, 권상우가 착용했던 모습의, 가쿠란 学ラン은 통일 독일제국 수립을 주도했던 19세기 프로이센 군복의 형태다. 프로이센은 비상시 10대 학생들을 전장으로 신속히 투입시키기 위해 교복을 군복과 유사하게 만든다. 메이지 유신 시절 독일식 군국주의를 수입했던 일본은 학생들이 입는 교복에도 이와 같은 사상을 주입하고자 했고, 그리하여 프로이센 군복 스타일의 교복이 만들어졌다.  


이는 식민 지배를 받던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우리 학생들은 식민 사관의 영향향으로 인해 가쿠란 스타일의 교복을 입게 된다. 해방 후에도 이러한 전통 아닌 전통이 이어졌다. 짧은 스포츠머리,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고 나란히 서서 애국 조회를 하는 모습. 일제 식민 시절을 먼 과거라 생각하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직 적당한 근력을 보여준다. 



 일어서서 소매에서 지갑을 꺼내어 여니 동전 세 닢뿐. 수치심보다도 참담한 느낌이 엄습했고 금방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센유관의 내 방. 교복과 이불만이 남아 있을 뿐, 이제는 더 이상 전당포에 맡길 만한 것 하나 없는 황량한 방. 

- <인간 실격>, 두 번째 수기, 민음사



애인 쓰네코와 함께 첫 자살 시도를 하기 전. 요조가 뇌리를 스친 장면은 황량한 자신의 방, 그리고 교복이다. 황량한 방은 자신의 텅 빈 내면을, 남아 있는 교복은 외부에서 주어진 자신의 신분과 역할을 상징한다 할 수 있겠다.

교복은 유니폼 종류의 하나로 일정한 기준에 의해 정해진 양식의 복장이다. 집단과 조직의 소속 인원임을 밝혀주며, 타인과 구별 짓는 역할을 한다. 피에르 부르외디가 말한 ‘사회적 구별 짓기’의 복잡한 양태까지 짚고 넘어가지 않더라도, 교복을 입었던 우리 세대는 직관적으로 교복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교복을 통해 어느정도 신분을 구별지었다.

  

이렇게 우리에게 당연한 교복. 하지만 한때 이러한 교복을 벗게 되는(?) 시절이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1980년대다. 1982년 1월 4일, 문교부는 교복과 두발 자유화 지침을 내린다. 전국 중·고교에 머리카락의 길이와 형태를 학생 자율에 맡기라는 공문을 내려 보낸 것. 문교부는 학생들의 심리적 위축감과 소외감을 없애고 개성과 책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명분을 밝힌다. 이는 1898년 배재학당에서 처음 교복을 입은 후 85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교복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교복자율화 시행 3년이 지난 1986년, 문교부는 복장 자율화 보완조치 지침을 전달한다.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교복을 입거나 자유복을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것. 획일적으로 강제된 ‘자율화’의 역설은 교외 생활 지도의 어려움과 탈선행위 조장, 가계 부담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낳게 되었고, 이는 교복 부활의 신호탄이 된다. 그리하여 일부 학교가 교복을 선택하기 시작, 봄에 터지는 꽃망울 막을 수 없듯 여기저기서 터지는 학교장의 교복 부활 열망은 막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새로 등장한 교복은 디자인의 제한을 두지 않아 학교마다 개성 있는 교복이 탄생하게 된다. 

결국 교복 자율화는 실격. 

  


여자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 <인간 실격>, 두 번째 수기, 민음사



요조는 애인 쓰네코와 함께  가마쿠라 바다로 뛰어든다. 쓰네코는 죽고, 요조는 살아남는다. 

요조의 운명과 같이 결국 교복은 살아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성당> 로버트의-쓰지 않은-검은 안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