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란 표현은 어디서 왔을까
입구를 들어서자 훅 느껴지는 마트 특유의 냄새.
오랜만에 마트에 갔다. 동백꽃 더미로 쓰러지며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에 고만 아찔해지는 김유정의 <동백꽃> 속 철없는 주인공처럼, 나도 아찔했다. 오늘은 철없이 돈 좀 쓰겠다. 그나저나 바구니가 어디 있더라. 공간의 구석을 살폈다. 저기 있다. 합성 플라스틱 재질의 퍼렇고 각진, 가로 세로로 빗살 내어져 위아래 옆에서 물건을 확인할 수 있는, 마트 바구니를 들었다. 카트를 끌고 올 걸 그랬나.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바구니에 물건들을 담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대중없이 담다 보니 바구니가 꽤나 묵직하다.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계산대에서 결제를 마치고 챙겨 온 장바구니에 거듬거듬 물건을 옮겨 담았다. 장바구니를 챙겨 오면 환경부담금으로 내야 하는 봉투 값을 아낄 수 있고, 사용한 봉투를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다. 게다가 짜임 좋은 장바구니는 봉투보다 더 든든하게 담을 수 있어 좋다.
유용하지만 딱히 쓸데없는 물건이 담긴 장바구니를 품에 안고, 낮게 경사진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물건을 옮겨 실으며 장바구니를 챙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장바구니 (場---) [장빠구니]
[명사] 같은 말 : 시장바구니(장 보러 갈 때 들고 가는 바구니).
[유의어] 장망태, 장망태기, 시장바구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집으로 도착해 산 물건들을 털어내고 빈 장바구니를 고이 접으며 또 생각했다. 장바구니… 장바구니. 그러다 내가 밥을 벌어먹고 사는 업業까지 생각이 다다랐다. 마트와 시장을 오고 갈 때뿐만 아니라 우리는 온라인상에서도 장바구니를 사용하는구나. 장바구니라니. 새삼스럽다. 0과 1의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삭막한 온라인 환경에서, 특히나 상업적인 온라인 쇼핑공간에서 ‘장바구니’라는 물성을 가진 곰살맞은 표현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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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 떨어진, 만질 수 없는, 삭막하고 형태가 없는 표현이 난무하는 온라인 쇼핑 공간. 그곳에서 ‘장바구니’란 표현은 제법 구체적이며 실체가 그려지는 유일한 단어다. 누가 처음 이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참 정감 가는 표현. 태초에 장바구니란 단어를 온라인 공간에 데려온 그분에게 박수를 보낸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가 알겠지만 다시 한번 짚자면, 온라인 쇼핑에서 ‘장바구니’는 구입 예정의 상품을 일시적으로 보관해 두는 기능을 말한다. ‘장 보러 갈 때 들고 가는 바구니’의 의미를 가진 ‘장바구니’는 온라인의 공간에서 한계 없는 거대한 그릇인 셈. 게다가 ‘장바구니’는 값을 치르기 전까지 한계 없는 허탈한 만족감 또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용량은 무한대. 용도를 위해 형태를 변형할 필요가 없다. 온라인 편집숍 MD의 삶을 사는 우리네는 실물로 만져지는 장바구니보다, 가상의 물건을 가상으로 담는 장바구니가 더 친숙하고 익숙한 개념이겠다. 그래서 같은 반 옆자리 친구처럼 하루에도 수십수백 번 단어를 마주한다.
놀러 간 강가에서 눈에 들어온 매끈한 조약돌 주워 만지작거리듯, 마트에서 주워온 ‘장바구니’란 단어를 멍하니 만지작거렸다. 퍽 재미난 표현이라 생각했다. 단어를 만지작거리다 문득 다른 나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장바구니’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잽싸게 구글링.
영미권은 카트Cart, 쇼핑백Shopping bag 또는 백Bag.
이탈리아는 쇼핑백Shopping bag.
프랑스에선 바구니를 뜻하는 파니에Panier.
일본은 카트 또는 손수레를 의미하는 카토カート, 장바구니 카이모노카고かいものかご.
중국은 쇼핑카트를 뜻하는 고우처购物车.
지구는 둥글구나. 나라별로 특수성이 반영되긴 했으나 표현의 방식은 비슷했다. 바구니라는 물적 특성을 지닌 표현을 전 세계에서 함께 사용하는 언어의 공시성共時性을 장바구니에서 발견했다는 기쁨. (참 별거 없지만 새삼스러웠던 편집숍 MD의 시선이라 여겨주세요.) 이곳에 사나 저곳에 사나 사람들의 생각 양태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일은 설레는 일이다. 물론 결제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 그런 의미로 사고 싶은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무턱대고 담았다. 결제를 안 할 터라 집으로 배송되진 않으리라. 하지만 기대감은 공짜니까, 담는 행위로 충분히 설레어 본다.
오늘도 누군가의 장바구니에 내가 준비한 상품들이 담기겠지.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을 마주할 고객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대들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좀 설레셨는지. 자자, 충분히 설렘을 즐겨주시고, 그렇다면 결제도. 집에서 택배를 받는 기쁨을 누려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흔한 MD의 자그마한 바람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