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 지수와 앵그리 지수의 상관관계
“인간은 충족되지 않는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우어의 말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소비 욕망을 끌어내야 하는 편집숍 MD의 일을 업으로 삼아 그런지 모르겠다만, 내 삶의 시계추 또한 욕망의 방향으로 꽤 기울어져 있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 권태의 틈은 비좁고 욕망의 기울기는 가파르다. 가파르게 기울어진 욕망의 시계추는 임계점에 다다르고, 높이 올라간 위치 에너지는 운동 에너지로 전환된다. 오른쪽으로 주욱 당겨진 추는 기울기에 비례해 빠른 속도로 카드결제로 연결. 장바구니 담기. 결제 완료. 추는 다시 권태의 방향으로 좌향좌. 통장은 텅장이 되고, 나의 자본은 자연스레 권태의 영역으로 입성한다. 텅장 덕분에 강제로 소비의 일상도 권태롭다. 소비 없이 몸은 잘 움직이지 않는, 소비를 늘 권장하는 MD의 실상이다.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욕망과 권태 사이를 왕복하며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간다. 충족되지 않은 욕망은 비단 물건을 구입하는 방향으로만 내리 꽂히지 않는다. 먹고 마시는 행위에도 마찬가지. 충족되지 않은 허기진 욕망은 실제 허기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헛헛한 마음을 식욕으로 채우는 것과 같다.
주말, 큰 맘먹고 선택한 한우. 오랜만에 마장동에서 구성진 한우를 구워 먹은 주말 저녁이었다. “우리 앵그리 지수 너무 높은 거 아니야?”란 말에 난 “앵그리 지수가 아니라, 엥겔 지수 아니야?”라고 말했다. 일상에서 헛 나오는 그저 그런 말실수지만, 불룩 부른 배 두드리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앵그리 지수와 엥겔 지수는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어 보였다. 사전 그 어디에도 ‘앵그리angry 지수’란 개념 없지만, 충분히 그럴듯했다. 행복하지 못해 성난 감정을 ‘앵그리 지수’로 치자면, 그 화로 인한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은 소득 대비 먹거리 소비로 이어지는 ‘엥겔 지수’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화 또는 스트레스 →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식욕의 고급진 발현 → 엥겔 지수 증가
총 가계 지출액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 독일 통계학자 엥겔 Ernst Engel은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먹을거리에 쓰는 비용의 비중은 줄어든다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맞는 말이지,라고 밑줄 치고 배웠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을 돌아보니 책과는 달랐다. 연차는 쌓이고 월급은 올랐는데 먹을거리에 쓰는 비중은 여전하다. 아니, 비중의 무게는 더 묵직하다. 혹자는 그럴 수 있겠다. 식욕이 나의 능력치를 넘어서며 진화하고 있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만, 나는 친구가 말한 ‘앵그리 지수’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충족되지 않은 욕망과 쌓인 화로 인해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는 그렇고 그런 말. 쇼핑도 그런 맥락이겠다.
난관에 봉착하면 욕망의 실체가 드러난다. 하고 싶은 일이면 문제를 해결할 궁리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문제를 핑계 삼아 그만둘 명분을 만든다.
- <쓰기의 말들>, 은유
은유 작가는 난관과 욕망에 대해 말했다. 그녀 말대로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난관과 압박은 욕망의 민낯을 보게 만들었다. 문제를 해결할 궁리 대신 쇼핑과 맛집을 찾게 했고, 생활을 핑계 삼아 계속 일 할 명분을 만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난관과 쇼핑, 월급과 명분 사이에 적절한 루틴을 찾았다는 점. 어찌 되었든 사회에 적절한 인간으로서 쇼펜하우어가 말한 시계추를 좌로 우로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
마장동에서 한우를 먹고 나오며 앞선 철학자와 통계학자를 떠올렸다. 의식의 흐름에 태클을 걸지 않은, 마음껏 뻗어나간 생각은 쇼펜하우어와 엥겔의 나라, 독일을 떠올리게 했다. 독일…독일.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때깔 좋은 갈색 빛의 시원한 맥주가 떠올랐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4개에 만 원짜리 독일 맥주를 집었다. 검은 봉지를 좌로 우로 흔들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엥겔 지수를 조금 더 높이는 저녁이겠다만, 적당한 진자의 운동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