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톱만한 게 뭐라고
자판기와 마우스 소리만 공기 중에 떠다닌다.
한동안 그 누구도 말이 없다. 모니터 너머의 실제 상품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지러진 숫자와 튀어다니는 이미지를 가공하는 시간. 네모진 사무공간에서 일하는 우리네 MD는 왼편에 자판 키보드와 오른편에 마우스를 두고 각자의 상품에 주어진 일을 한다.(왼손잡이라면 그 반대겠지요.) 양손에 쌍검을 들고 대륙을 평정하려 했던 유비처럼,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키보드를 내려치고 마우스를 전방위로 휘두른다. 업業의 영역에서 내달렸던 자아를 거두어 현실로 돌아오면 모니터 속으로 들어갈 듯 어깨와 고개를 주욱 뽑으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 맞다. 이 자세는 건강에 좋지 않다던데. 현대사회 사무 인력들이 고질적으로 갖고 있는 안 좋은 자세의 총합이 바로 나였다. 어깨 힘을 풀고 허리를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모니터에 던졌던 시선을 거뒀다. 내쉬는 호흡에 눈길이 손끝에 툭, 하고 걸린다. 새삼스럽게 엄지손톱이 눈에 들어온다.
엄지손톱, 영어로 썸네일Thumbnail.
작고 아담한 엄지손톱에 우리네 MD의 업이 매달려있었다.
썸네일?
일상에서 입으로 소리 내어 잘 표현하지 않는 단어지만 활자로는 은근 익숙하다. 굳이 MD의 일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표현. 상품의 메인 이미지를, 영상의 하이라이트를 소구하는 장면을 작고 아담한 한 컷에 담아 놓은 것을 썸네일이라 부른다. 글이나 영상 옆에 붙어 있는 네모난 이미지, 모니터 상 실물로 잡히지 않는 조그마한 이미지를 전문적으로 이렇게 표현한다.
썸네일 : 인터넷 홈페이지나 전자책(e북) 같은 컴퓨팅 애플리케이션 따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줄여 화면에 띄운 것
우리는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말, 글, 표정, 몸짓을 쓴다. 그럼 상품과 정보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까.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첫 시작은 썸네일이다. 온라인에 둥둥 떠 있는 콘텐츠와 영상, 상품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이해를 돕기 위해, 정보를 전달하는 페이지로 초대하기 위해 썸네일을 사용한다. 정보의 바다, 아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상품과 콘텐츠는 자신을 어필하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이다. 물론 기가 막힌 카피나 문구로 소구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미지와 함께한 텍스트는 더욱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웹상의 모든 정보를 볼 수 있게 해 줄 뿐 아니라 하이퍼텍스트 문서 검색을 도와주는 응용 프로그램을 브라우저라 부른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크롬, 사파리, 파이어폭스 등등. 이름은 익숙지 않아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세월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모뎀으로 PC통신을 하던 시절 사용했던 새롬 데이타맨 프로를 떠올릴 수 있겠다. 이런 툴을 브라우저라 부르는데 브라우저라는 단어를 뜯어보면 ‘(가게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다.’라는 뜻을 지닌 브라우즈Browse란 표현이 눈에 띈다. 브라우저Browser는 말 그대로 둘러보는 도구인 셈이다. 우리는 ‘둘러보는 도구’를 사용해 웹상에서 이런저런 정보와 상품을 구경할 수 있다.
이렇게 따져보면 둘러볼 수 있는 하나의 웹 사이트를 매장 또는 백화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의 매장 안에 다양한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고, 각양각색의 매력을 뽐낸다. 브라우저를 통해 매장을 둘러보던 우리는 매력 있는 상품에 발길을 멈춘다. ‘어머, 저건 사야 돼!’ 마음속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상품 앞에서 고민하다가 우리는 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서 상품을 들어보고, 만져보고, 점원에게 묻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매장 앞에서 최초의 ‘어머, 저건 사야 돼’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바로 썸네일의 역할이다.
사각의 자그마한 썸네일을 다듬는 일, 우리네 MD의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품이 아닌 손품을 판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MD는 어떤 이미지가 상품을 가장 도드라지게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세페이지를 클릭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다.
영미권 속담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말이 있다. 놓치기 쉬운 세부사항 속에 문제점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작고 애틋한 사각의 썸네일에 일희일비하는 우리네다. 어떤 상품의 클릭률, 클릭에 따른 구매 전환율, 체류시간 등등 알 수 없는 숫자를 0.1% 단위로 발라내고 분석하는 일. 의미 없어 보이는 숫자와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는 자못 손품이 많이 든다.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 있어." 그러나 놀랍게도 이 꼬마 심판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한 건 바로 이거야! 이 양을 먹이려면 풀이 좀 많이 있어야겠지?"
- <어린 왕자>, 생 텍쥐페리
일하다 말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바라본 손 끝 엄지손톱에 생각이 빵 반죽 부풀듯 부풀었다. 부풀어진 생각 속에 소설 <어린 왕자>에서의 양이 떠올랐다. 알다가도 모를 썸네일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어린 왕자>에서 조종사가 어린 왕자에게 그려준 양, 기실 상자 속 양을 바라보는 일과 닮아있다 생각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그렇다고 영 모르겠다는 것도 아닌.
나를 비롯해 우리네 MD들 또한 <어린 왕자> 속 조종사에게 부탁하고 싶을 것이다. 고객이 왕창 구입하고 싶어 하는 매력 넘치는 썸네일을 그려달라고. 그러면 그는 멋진 썸네일 대신, 빈 상자에 구멍을 몇 개 그려놓고 말할 것이다.
"이 구멍을 들여다볼래?"
Ps. 빈 상자에 구멍 몇 개,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