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호 Mar 10. 2020

우연히 바라본 시계의 오전 7시 7분 느낌

어쩌다 하루쯤은 그런 기분 좋은 날

밤 새 비가 퍼붓더니 아침해가 고개를 쓱 내민다. 꿈꾸지 않고 푹 잠들고 일어난 아침. 반쯤 열어놓은 창문에서 이제 막 뚜껑을 연 탄산수 같이 청량한 바람이 들어온다. 오랜만에 알람의 비명 소리를 듣기 전에 자연 기상이다. 일찍 일어난 자신이 대견스러워 오늘은 아침 시간 사치를 좀 부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새 푸석푸석해진 팔다리를 늘려 기지개를 켜고 냉장고 신선칸에 쌓여 있는 칡즙 한 봉지를 빈 속에 털어 넣었다. 일찍 출근길을 나서 회사 앞 카페에서 여유 부리고 가기 좋은 아침이다.

 

문을 나서며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 앱을 열었더니 애정 하는 아티스트의 새로운 노래가 기다리고 있다. 호다닥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둔다. 리스트를 든든히 채우고 회사 앞 카페에 앉아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으며, 시끌벅적했던 지난밤 사진과 글을 올린 SNS 친구들의 타임라인을 훑었다. 비가 내린 어제도 당신들은 신나는 밤이었군요. 좋아요 하트 몇 날려주고 댓글도 주렁주렁 매달았다. 절반 정도 남은 커피를 들고, 회사 정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 틈에 합류했다. 출근 전 커피 한 잔 여유에 나도 제법 나이스 한 직장인 같았다. 조기 기상의 여유 덕분에 아침이 기분 좋게 데워졌다. 오랜만에 입꼬리 올리며 출근.

 

오늘의 청량한 날씨, 트러블도 없고 푸석하지 않은 피부 상태, 딱 맞춰 도착하는 버스, 아침 출근 준비 시간 우연히 바라본 시계의 오전 7시 7분의 느낌, 바쁘지도 한가하지도 않은 적당한 업무, 왠지 잘 만져진 헤어스타일 등등. 이런 사소함은 그날의 기분을 결정짓는다. 여기에 점심 구내식당의 메뉴가 맛있는 메뉴라면 기분이 더 좋겠다.


그들은 말이 많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아무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

- <녹스빌: 1915년 여름>, 제임스 에이지



단체 카톡방 여기저기 빨간 숫자들이 떠있다. 다들 특별할 것 없이 하고 싶은 말 많은 오늘.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킥킥거리는 모습이다. 나도 그 틈에 몇 마디 더해본다. 매일이 이렇지 않지만 가끔 이런 날이 있다. 굳이 이렇게 적어보는 건 어쩌다 보내는 사소한 하루가 생각보다 귀해서다. 하루쯤은 그런 날이 다들 있겠다. 이런 사소한 기분 좋음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