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호 Jan 08. 2017

꼼데가르송과 이상의 「날개」#3

레이 가와쿠보와 이상李箱의 공간

4. 건축적 구조의 문학과 패션

#너와나의연결고리 #건축



'공간'이 있었다.

이상의 「날개」는 전후, 좌우, 상하가 맞물려 있는 건축물 같은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간의 건축적 구성을 통해 이미지들이 머릿속에서 종과 횡을 가로지른다. 이는 건축가였던 작가 이상의 삶이 녹아들어서가 아녔을까? *사소설私小說적 성향을 가진 작품이라 더욱 그러한 듯하다. 


*사소설 : 자신의 경험을 허구화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써나가는 소설. 기생 금홍과의 다방 운영을 하며 보냈던 경험들이 녹아든 듯하다.


이런 공간의 건축적 구성은 건축적 구조를 통해 메시지를 던진 꼼데가르송의 옷과 닿아있었다. 비대칭적으로 부풀린 옷, 의도적 확대와 축소 등을 통해 단순히 몸을 감싸는 의복의 공간을 재창조한다. 


문학과 패션을 가로지르는 '건축'이라는 공통점을 살짝 짚어보고자 한다.


목차

4. 건축적 구조의 문학과 패션

   4-1. 꼼데가르송의 건축적 구조

   4-2. 건축가 이상의 「날개」



4-1. 꼼데가르송 의상의 건축적 구조

#건축 #확장된의복


"There are no limits - I endeavor to make clothes that didn't exist before."

한계는 없다.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레이 가와쿠보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輕便하고 *고매高邁하리라.

-이상, 날개


*경편輕便 : 가볍고 편하거나, 손쉽고 편리함

*고매高邁 : 인격이나 품성, 학식, 재질 따위가 높고 빼어남




패션과 건축은 닮아 있다. 

패션과 건축은 형태적, 구조적 유사성으로 많은 관련이 있다. 인간 중심이 기본이니 말이다. 쉽게 얘기하면 옷은 신체에 근접한 건축물이며, 건물은 가장 확장된 의복이라 말할 수 있다. 둘은 모두 신체를 보호, 안전을 제공하며, 공간과 볼륨을 만들어 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라면 옷의 영속성은 짧고, 순간적인데 비해 건축은 견고하고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지속적인 실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옷을 만드는 사람들은 건축에,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옷에 관심이 많다.


꼼데가르송 또한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건축적 양식을 옷에 적용해 컬렉션 옷을 만들었다. 단순히 옷감과 소재를 이어 옷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니다. 동적인 힘을 주어 옷감과 패턴을 3차원적으로 만들어 마치 건축과 같은 옷을 만들어 낸다. 


역시 말보다 이미지가 이해가 쉽다. 사진으로 보자.

(왼쪽부터) Dancing House(1995), DDP(2013), Royal Ontario Museum(2007 증축)


위에 보이는 건물들은 앞단에 언급한 해체주의적 해석을 통해 지어진 건물들이다. 기존 형태의 왜곡, 변형을 통해 전통적인 규범과 형식, 기능을 부정하고 있다. 꼼데가르송의 해체주의적 의상의 난해함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보이는 건물은 댄싱 하우스Dancing house. 이는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작품이다. 체코 여행 책자에 대표적으로 나와 있기도 한 이 건물은 프라하에 위치해 있다. 프랭크 게리는 아카데미 수상자인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 와 그의 파트너 진저 로저스Ginger Rogers를 모티브로 설계했다고 한다. 유리타워를 지지하고 있는 기둥은 춤추는 남녀와 같아 보이며, 자유로운 창의 배치가 특징이다. 틀어짐과 비대칭은 춤을 추는듯한 리듬감 준다. 


두 번째 건물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동대문의 DDP다. 여성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DDP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다. 새벽부터 밤이 저물 때까지 변화하는 동대문의 역동성에 주목해 곡선과 곡면, 사선과 사면으로 이음새 없이 이어지는 공간을 구축한다. 딱딱하게 여기던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곡선과 이에 따른 운동성은 마치 옷의 풍만함과 비슷하다.


세 번째는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로열 온타리오 뮤지엄Royal Ontario Museum으로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작품이다. "위대한 건축물은 위대한 문학이나 시, 음악과 마찬가지로 영혼에 내재된 이야기를 들려준다."라고 말하는 그는 오래된 석조 건물의 영혼을 살린 상태로 크리스털 형상의 건물을 새롭게 조합한다. 이는 새로운 소재의 조합을 통해 옷을 창조하는 과정과 유사하지 않을까.



이제 건축물들을 보았으니 이와 같은 맥락의 꼼데가르송 컬렉션 옷들을 보자.

(왼쪽부터) 14 S/S, 17 S/S, 16 S/S 컬렉션 (출처 : Vogue.com)


앞서 컬렉션 옷을 보긴 했으나 역시 난해하다. '이걸 누가 입을까?' 싶다. 하지만 인용으로 뽑아내는 옷들은 가장 특징을 잘 담은 옷들을 보여주는 것들이고, 해당 컬렉션에도 나름의 커머셜 한 전형성을 지닌 옷들이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웃음) 우리가 접하는 꼼데가르송 매장에 가면 입고 다닐 수 있는 이쁜 옷들은 정말 많다!


다시 돌아와서, 전형적이지 않음은 앞선 이미지의 건축물들과 비슷하다. 신체 위에 지어진 건축물 개념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꼼데가르송은 형식이나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신체에 맞아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했고, 다양한 방식을 차용한다.


 앞서 건축물 설명이 있으니 간단히 설명하자면 첫 번째 14S/S 컬렉션의 옷은 구조의 비대칭성을 통해 리듬을 만들어 낸다. 춤을 추는 듯한 댄싱 하우스와 닮아 있다. 두 번째 17S/S 옷은 누에고치 같다. 모델은 얼굴만 빼꼼 꺼내 놓아 살짝 힘겨워 보이지만 작품으로써 접근을 해보자. 풍만한 부피감을 통해 곡선을 만들어내고 그 사이로 굵은 주름이 흘러내린다. 자하 하디드의 DDP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세 번째 옷은 16S/S 의상으로 박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메인이 되는 옷 위에 깃털과 털뭉치가 난데없이 조합이 돼있다. 소재와 소재의 기발한 조합은 로열 온타리오 뮤지엄Royal Ontario Museum의 그것과 느낌과 비슷하다.


번갈아서 건축물과 옷을 한 번씩 다시 보자. 

이제 건축물과 닿아 있는 점이 조금 느껴질 것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해체주의적 관점으로 건축과 옷을 바라봤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도 옷을 바라볼 수 있다 까지 느껴보자.


다시 돌아와서, 당대 문학의 문법을 해체한 이상의 작품과도 이들은 닿아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4-2. 건축가 이상의 「날개」

#건축가이상 #미쓰꼬시


"If you have total freedom to design, you won't get anything interesting."

"디자인의 자유가 충분하다면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레이 가와쿠보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이상, 날개



1929년,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다.

학교의 추천을 받아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을 받는다. 1933년 폐결핵으로 인해 기수직을 사직하기 전까지 건축가의 삶을 산다. 꼼데가르송의 건축적 구조와 건축가의 삶을 살았던 이상의 삶은 우연의 일치일까.


비단 이상의 삶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속에서의 문학적 구조 또한 건축이라는 키워드가 관통한다. 전후, 좌우, 상하가 잘 맞물려 있는 건축물과 같이 윗방과 아랫방, 미쓰꼬시 옥상과 회탁의 거리 등과 같은 공간들은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적 구조를 이루며 표현된다.


*이항대립 : 두 가지의 대립적인 요소가 한 짝을 이루는 것을 뜻함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 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그러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잘 참들 키웠다.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큰 놈은 큰 놈대로 다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리비치는 오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낸다. 나는 이 지느러미 수효를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허리가 따뜻하다.
나는 또 회탁의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비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회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들여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미스꼬시 : 1929년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 일제 치하의 서울에 진출한 '미츠코시 경성지점'으로 시작했다. 현재 서울 중구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전신前身이다.



위 대목은 인공의 날개가 돋기를 바라는 '나'의 모습 직전이다. 눈여겨볼 공간은 '미쓰꼬시 옥상'과 '회탁의 거리'다. '나'는 미쓰꼬시 백화점 위에서 회탁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미쓰꼬시 백화점은 수직적 공간이고, 회탁의 거리는 수평적 공간이다. 수직과 수평의 개념으로 바라볼 수 있다.

당시의 미쓰꼬시 경성점

미쓰꼬시 백화점의 옥상은 상징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방과 거리만을 헤매던 수평적인 직선 이동에서, 자신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수직적 이동으로써의 장소인 것이다. 미쓰꼬시 백화점은 4층 건물로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 중 하나였다. 이상은 건물의 높이를 미학적인 장치로 활용한다. 근대의 메커니즘을 조감할 수 있는 위치로써 말이다. 아내와 세상의 시선에 통제, 조절당하고 있는 '나'는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한 것이다. 이는 소설 마지막 부분으로 '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반전의 장소인 것이다.


매력적이면서도 난해하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주인공의 이동 동선이 방과 거리(수평)에서 미쓰꼬시(수직)에서 이동했고, 이는 상징적 기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려운 소설이라 해석도 생각이 조금 필요하다. 


건축적 공간 구조를 차용했다... 까지만 이해해보자. 해석의 방법론도 많지만, 건축이라는 키워드를 뽑아내기 위해 사용된 구조만 살짝 적용시켜 봤다. 



날고 싶었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열린 결말로 끝난 소설은 마지막 문장으로 왠지 모를 자살 혹은 건물에서 뛰어내림을 상상하게 만들기도 하다. 전문적인 연구자들 마저 주인공이 다시 한 번 날아보고자 외친 곳이 미쓰꼬시 옥상 위라고 생각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외친 것이 아니라 외쳐보고 싶어 했을 뿐이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또한, 미쓰꼬시 백화점 옥상이 아니라 다시 길을 '나서서' 생각을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소설을 읽어보면서 짚어보면 재미있을 부분이기도 하다.


옥상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가 말한 피투被投적 존재가 떠오르기도 하는 대목이다. 아무 의미 없이 어떤 사명도 부여받지 않고 그냥 이 땅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란 의미다. 물질도 정신도, 존재도 의식도 그 아무 것도 나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인공인 '나' 또한 어떤 결정도 외침도 실행하지 못했나 싶다.



건축가였던 이상은 「날개」에서 공간의 건축적 배치를 통해 소설을 풀어냈고, 당대 가장 근대적인 건축물인 미쓰꼬시 백화점을 소설 말미의 배경으로 삼는다. 이만하면 '건축'이라는 키워드로 꼼데가르송과 「날개」를 함께 엮을만하지 않았을까 싶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이상, 날개

  



「날개」의 마지막 문장이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라도 어딘가에서 인용되거나 스치듯 볼 수 있는 유명한 문장이다. 힘든 순간에 나 자신에게도 던지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의식의 흐름을 사용해 생각의 편린들을 이어 붙였고, 리얼리티를 제거하고 주관성을 담아 소설을 만들어낸 이상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큰 영감을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꼼데가르송의 디자이너인 레이 가와쿠보 에게도 '인공의 날개'가 있다. 그녀는 패션을 통해 그 인공의 날개를 실현시켰고, 해체주의의 특징들을 통해 전통적인 규범과 형식을 깨뜨리고 재창조했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꼼데가르송의 행보는 매 순간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이제 컬렉션 옷뿐만 아니라 매장에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옷과 브랜드를 볼 수 있길 바란다.


책 「날개」를 인용해 꼼데가르송을 조금 깊게 바라보았다. 우리가 알던 꼼데가르송이 이제 달리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브랜드 담당이었어서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담아봤는데, 이렇게 패션 브랜드를 해석하고 엮을 수도 있구나... 하고 좋게 봐줬으면 좋겠다.



"Fashion is only the right now."

"패션은 오직 바로 지금이다."

-레이 가와쿠보

매거진의 이전글 꼼데가르송과 이상의 「날개」#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