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hum Feb 13. 2020

6. 편안한 목줄

'좋은 회사'의 기준은 자신


 베를린에서 돌아온 지 1년이 지났고 그 당시의 감정이나 기억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비슷한 시기에 멈췄다. 우선 늘 그렇듯... 내 게으름이 첫 번째 문제겠지만 두 번째는 그때의 기억을 시간별로 순차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내 강박 때문이다. 작년 1월 26일까지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의 글을 끝으로 베를린에서의 기록은 1년간 멈춰져있었다.
 
 그렇게 그 기억을 일단 미뤄두고 살아갔는데 그후로도 내 일상 속에서는 베를린에서의 사소하지만 강렬했던 기억들이 예고 없이 불쑥 솟아오르곤 했다. 그 낯설지만 반가운 기억들은 날 행복하게 했다. 그런 경험들을 갖고 살아가는 한, 내가 어디에 있던지 행복할 수 있겠다는 확신 같은 것이 생겼다. 그리고 얼른 글로서 그 기억을 형체화 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하지만 이내 “아 순서대로 기록을 해야 하는데...”하고 또 게을러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어디에서 막혔을까?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에서부터 2012년을 시작으로 회사 활동과 프리랜서 활동을 병행했던 2016년까지의 기록은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2017년의 기록 앞에서 내가 잠시… 아니 꽤 긴 시간 뜸을 들이게 되었던 이유가 있다. 그 해의 일들이 내게 끼친 영향력이 너무도 거대하고 강렬했던 것이다. 그 위력은 '내 삶이 왜 계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로 실로 거대한 것이었기에 내 나름대로 그 시기를 맛있게 꺼내먹기 위한 숙성의 시간 같은 게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이렇게 글을 다시 쓰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 숙성의 시간을 놓쳤다가는 세월 속에서 그 맛있고 값진 요리를 상하게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음식이 상했을 땐 버리면 되지만 기억이 상하면 버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말끔히 뇌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 사실은 나 같은 기록병 환자에겐 뼈아픈 일이다. 그래서 일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고 글을 쓰기위해 자리에 앉았다.


19년 1월 26일을 끝으로 연재가 멈췄다.





-


 2017년으로 거슬러 가본다. 회사생활 6년차. 나는 여전히 회사생활과 프리랜서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일만 마치면 어떤 회사원들 보다도 빨리 퇴근할 수 있었고 빨간 날은 쉬었다. 늘 그렇진 않았지만 거래처인 일본이 공휴일인 날에는 때때로 우리도 쉬게 됐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휴무가 주어지면 사실 그다지 기쁘지도 않고 얼떨떨하다.) 업무의 전체적인 흐름도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에 스스로 결정하고 진두지휘하는 편한 상태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좋은 사장님 밑에서 창작을 업으로 삼기에는 최적의 직장을 가졌다’고 부러워했다. 나도 늘 그 사실에 감사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런 환경의 직장을 다시 갖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천국에도 그림자는 진다고 했던가. 그런 편한 환경 속에서도 내 안에선 약간의 불만이 쌓였다. 충무로의 인쇄회사는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특히 우리 회사는 직원 셋 정도의 아주 작은 규모의 회사였다. 각자가 자기 고유의 포지션이 있었고 서로의 일을 해주거나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다 보니 평일에 휴가를 5일 이상 길게 갔다 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나처럼 연차가 쌓여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더욱 그랬다. 비슷한 시기, 저가항공사들이 조금씩 생겨나면서 평일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해외에 나갈 수 있는 항공편이 늘어났다. 빨간 날에만 쉴 수 있는 나로선 더욱 아쉬움이 커졌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유럽여행을 한 번 해보자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이미 지나가버린 뒤였다. 난 수년간 반복되는 패턴의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잠시라도 인현동 인쇄골목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나마 사장님과 협의를 통해 금요일 휴가를 내서 3일의 휴가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그 시간으로는 유럽을 갈 수 없었다. 6년간 거래처인 일본에는 출장 겸 여행으로 자주 갔었고 또 그것이 내 삶에 활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멀리 나가보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다. 그 당시에 휴가로 가장 멀리 나가본 곳은 대만이었다. 비행기를 2시간 넘도록 타본 것도 처음이었다.
 
  내 여행 패턴을 떠올려보면 워낙 싱겁고 밍밍한 느낌이라서 사실 글로 적기도 뭐하다. 그래서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자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행이 "시간도 없는데 여기서 뭐하자는거야"라고 구박받기 딱 좋은 타입이다. 어느 정도 지도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곳을 거점으로 정하긴 하지만 딱히 그곳을 가보고 싶다기보단 숙소에만 있을 순 없으니 일단 어디든 가보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그냥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서 콜라를 마시면서 앉아있기도 했다. 그때의 기억이 강렬하다. 콜라캔을 가만히 매만지면서 생각했다. ‘한국에도 있는 편의점에 콜라인데 왜 난 대만까지 와 여기에 앉아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그때는 정말 그 사실에 의문이 들었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니까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나는 회사라는 목줄에서 자유롭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회사가 좋고 딱히 불편하지 않으며 일찍 끝나더라도 전체적인 삶의 주도권이 내게 있지 않다면 그것은 누가 뭐래도 견디기 힘든 것이다. 적어도 나란 사람은 그랬다. 결국 난 그 목줄을 채운채로 최대한 멀리 나가보겠다며 대만까지 끌어당겨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캔콜라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목줄의 길이는 딱 거기까지였다. 절반이상 남은 콜라를 두고 편의점을 나왔다.
 
 유명한 문구가 떠오른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묶어 두려도 만든 것이 아니다.”
 
 너무 유명한 말이기도 하고 요즘엔 다양한 매체에서 ‘도전’, ‘모험’따위의 말을 앞세워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겁쟁이 취급하는 분위기를 만들 때 자주 언급하는 문구다. 그런 분위기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서 노파심에 덧붙이는 말이지만 모든 사람이 배는 아니다. 높은 자존감과 가치관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멋진 사람들을 난 많이 알고 있다.
 
  다만 스스로 파도에 뒤집힐 불안을 감수하더라도 다양한 삶의 맛을 보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겁 낼 시간에 항구를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물론 그에 따른 리스크나 불안도 딱 자신만의 몫이다. 그 크기나 방식 또한 전혀 상상 밖이다. 다음편에 그 이야기를 할 것이다.
 



( 그나저나 갑자기 대만여행 이야기를... )


매거진의 이전글 5. 내 작업, 내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