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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Feb 14. 2020

7. 자유와 불안 (1)

'우울'이라는 감기의 시작

 2017년 봄, 회사 생활 6년 차로 접어들었다. 난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재정비를 할 필요를 느꼈다. 하지만 내게는 재정비의 시간은커녕 4일 이상의 휴가도 낼 수 없는 회사의 상황이 있었다. 내 안의 불만은 조금씩 쌓여갔고 그것은 종종 바깥으로 표출되었다. 난 업무에 심드렁했고 존경하는 사장님에게도 자주 불량한 태도를 내비치곤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불만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기에 악순환은 반복됐다. 이대로 사장님과의 관계를 망쳐버리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사장님께 언제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시기, 나는 문득 나의 자립 능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사무실 자리에 앉아 최근 내 통장거래내역서를 확인했다. 갑자기 가슴에 쿵하고 돌덩이가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최근 몇 달간의 통장 내역에는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제외하고는 프리랜서로의 수익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월급이 매달 들어와 내 생계엔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에 프리랜서의 돈이 얼마가 언제 들어오는지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말은 즉 회사 월급이 주는 안정감에 취해 내 본업에 대한 자립능력은 한동안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처음엔 무작정 자유를 갈구하면서 퇴사를 마음먹었는데 그 후엔 자립할 수 있는 내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의 내 계획은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안정될 때까지만 회사를 다니자'였다. 하지만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불안정한 그래프를 그리는 프리랜서의 삶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2015년을 정점으로 많은 상업 작업을 했던 나의 일은 조금씩 하향곡선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얼떨결에 시대적 트렌드에 맞닿아 상업용으로 잘 이용되던 내 작업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온갖 의문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이 회사에서 10년을 다닌다 한들 내가 내 프리랜서 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까? 설령 전업작가가 되어 대중의 요구에 맞춰 운 좋게 활용된다 하더라도 결국엔 버려지는 크레파스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내 일이라고 하는 이 일은 정말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그런 자문들 앞에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항상 꿈꾸는 삶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렇게 꿈을 쌓아 올려 가다 보면 언젠가 좀 더 높은 곳에서 더 편하게 넓은 세상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여태껏 확신에 차 달음박질하던 나의 길이 견고한 현실의 벽에 꽉 막혀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직장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회사를 다니던 친구들, 퇴근 후에는 소소하게 로또를 사거나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 예전엔 그저 한심하게 보고 틀렸다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의 삶이 떠올랐다. 그들은 현실적인 사람들이었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게 잘못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내 외모, 내 건강, 내 인생을 싸잡아 부정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이 우울이라는 감기의 시작이었다. 난 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왔는데 마음에 병이 생기자 그림을 그릴수도 없게 되었다. 그후로 약 반년간 개인 작업은 멈추다시피 되었고 자연스럽게 모든 커리어가 스톱되었다. '아 역시 이것은 정상적인 직업이 아니야’, ‘즐거운 창작이 아니라 그저 정신 노동이었어’ 하고 난 생각했다.


* 사진은 그 시기. 음악하는 동생이 앨범커버를 부탁해서 그린 그림이다. 노래가사가 사랑에 실패해 슬퍼하는 남자주인공의 이야기인데 그 감정이 당시의 내 무력감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사장님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카페에서 오랜 정적 속에 힘들게 대화를 이어갔다. 사장님은 내 퇴사 후의 계획을 물었다. 난 우선 유럽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뾰족한 계획도 일정도 없다고, 그림을 이제 그만둘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독일의 직업학교에 들어가 기술을 배울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절반은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내 활동을 늘 응원해주던 사장님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날 말없이 바라보았다.



"언젠가 너한테 여기보다 더 좋은 조건에 제안이 온다면 넌 이 회사를 떠나야 해,

그때는 널 웃으면서 보내줄 거야"


 사장님은 내가 입사하던 해부터 늘 이런 말을 했다. 연차가 쌓여가고 내 개인 일이 늘어날 때마다, 나도 사장님과의 이별이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안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 시기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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